불광다실

2008-01-29     관리자

 ♣ 근일 노인에 관한 사회의 관심이 사뭇 드높다. 언론계에서 이것을 들고나와 문제를 삼은 것은 오래전부터 일이다. 노인에 대한 문제는 여러 가지다.
생활, 요양, 오락, 건강, 용돈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인에 대한 보살핌과 생활의 보람이다. 노인에게서의 외로움과 적막을 덜어주고 생활의 보람과 취미를 보태주며 건강과 안락을 지켜주는 일이다.

 우리의 국가와 역사와 사회가 우리의 조상의 노력과 봉사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오늘의 젊은이의 활동에서 새역사는 엮어져간다. 그래서 끊임없는 새로운 젊은이에 의해서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이와같이 우리의 조국과 겨레의 역사는 젊은 활력의 축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거기에는 끊임없는 젊은 힘의 누적이 있다. 역사를 지켜온 어제의 젊은 힘 ㅡ 이것이 오늘의 노인이다. 따라서 오늘의 젊은이는 바로 내일의 노인인 것이다. 노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관심은 바로 오늘의 젊은 힘을 지켜가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노인이 어제의 젊은이며 오늘의 젊은이의 육성자며, 오늘의 젊은 힘의 연장이라고 보아올 때, 우리가 노인에 대한 관심을 특별히 환기하고 봉양을 대책할 길은 열린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의 노인이 의지하고 있는 처소에 눈을 돌릴 때, 하나는 가정이요, 하나는 사회적 시설이며, 그밖에는 극소수다.
이런 점에서 노인의 문제는 바로 부모를 봉양할 효도의 문제가 된다. 오늘의 노인은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시다. 우선 개인적인 부모님은 효로써 받들것이요, 봉양 할 자손이 없는 사회적 부모는 사회와 구가 우리 모두가 받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효가 근본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효의 문제가 올해들어 사뭇 우리주변에 그 목소리가 커온다. 그만큼 오늘날의 우리사회가 효를 필요로 하고 효가 부족하다는 뜻일 것이며, 위정자나, 사회지도층의 새로운 관심의 표시이리라.
과연 너무나 당연하고 시기에 적합한 말씀이다. 光室子도 우리사회에의 견실화와 국민정신의 함양을 위해서 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본다.
효를 단순히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라거나 자식된 도리라거나 사회적 책임이라고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그러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효의 의미는 보다 깊은 곳에 있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효를 높은 소리로 다시 외치는 것은 또 다른 깊은 시대적 공허에 근거한다. 그것은 인간 개별화의 거부이며 인간 연대성의 환경이며 정신적 공동세계의 긍정이며, 나아가 인간정신의 안정과 성숙에 연결 되는 것이다.

 ♣ 현대사회는 인간의 개별화를 불가피하게 촉진한다. 사회의 복잡화, 기술의 발달, 기능의 다양화, 산업의조직화, 대형화는 불가불 인간을 거대한 산업기술사회의 한 부속이 될 것을 강요한다. 여기서 어차피 핵가족화와 개별화 촉진 될 수 밖에 없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대가족제도는 오늘의 공업사회에 있어서는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개인주의적 사조의 범람과 이기주의, 물질주의의 경합은 거듭 거듭 자그마한 감각의 핵 속으로 인간을 몰아 넣는다. 그러나 하나의 조상과 더불어 한가족을 이루고 있는 인간가족이 천쪽 만쪽 났다고 하여 실로 그것이 나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익과 능률과 자유를 위해서 아무리 찔길대로 찢기고, 나뉠대로 나뉘더라도 인간 밑바닥에 나눌 수 없는 정신 생명은 원래의 하나임을 이루고 있음을 어찌하랴. 몸은 비록 독립된 개아라 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은 가족과 함께 있고 부모형제와 함께 있고, 나아가 조국과 겨레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진실한 존재 양태를 어긴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몸은 비록 헤어져 있더라도 한 생명 속에 함께 있는 부모형제와 조상 ㅡ 이것이 우리의 가슴을 뿌듯한 행복으로 채워준다.
「효」는 만고의 생명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