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城선사와 3.1 정신

2008-01-27     관리자
 

1)용성선사의 불법


불법은 원래로 법 그대로 영원한 것이다. 다시 이루어질 것이 없고, 변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원래로 모자랄 것도 남을 것도 없는, 원만구족한 채 영원히 자존(自存)하고 숨김없이 전체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법은 오직 깨달음에 있는 것이요, 다시 말이나 이론이 붙을 여지가 없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보리수하에서 먼저 깨달음을 보이시고 다음에 중생을 위하여 자비방편의 8만4천 언설을 벌리시지 아니하였던가. 이것으로 보면 우리들의 불법수행도 믿음 - 깨달음 - 자비행이 그 방식이 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 뜻은 사뭇 달리 표현되고 있다. 이해 - 깨달음의 방식이다. 표현의 차이라고 이해는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이 말하듯이 먼저 교를 배우고 그 다음에 교에서 뛰어나와 실천적 선수행을 한다는 수행에서는 교학적 이해가 있고 또한 선의 실천적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래서 교학자가 있고 또한 선자가 있게 되고 한편 율사도 있게 된다. 불법수행하는 자에게 그 모두는 본래로 갖추어야 하는 것인데 나누어지는 것만큼 온전한 것을 잃고 말았다. 이래서 오늘도 왕학자 왕선자 등 나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용성선사는 불자 행도의 길의 전형적 형태를 보여준다. 먼저 선으로 마음을 밝혀 도를 깨쳤고 다음에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고 그 다음에 전등(傳燈) 염송등 선적(禪籍)을 열람하고 그다음에 법화(法華) 기신(起信) 화엄(華嚴) 치문(緇門)등 여러 경전을 수학하엿던 것이다. 이와같이 용성선사는 명심견성한 다음에 경전과 어록을 열람하고 평생을 본분일착자(本分一着子)로 후래를 제접(提接)하고 대중을 교화하였던 것이다.

어찌 오늘날 교학에 매어달려 수행도 믿음도 계율도 오불관언하는 일단의 학구배(學句輩)의 경책이 되고 거울이 되지 아니할까.


용성선사의 오도행법은 한국불교를 이미 쓰러진 데서 다시 일으킨 느낌이 잇으며, 불자가 수행하고 불법과 조국과 세계에 이바지할 방법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용성선사는 오도 후 기연따라 제방을 두루 다니며 종승(宗乘)을 크게 선양하여 많은 선납을 배출하였고 다시 포교.전법. 역경에 힘을 기울여 일찍이 다시 없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 한국불교가 일체불법을 원융하게 희통하여 불심을 정점으로 하여 현밀(顯密) 선정을 걸림없이 전개하며, 청정한 계율을 숭상하여 교단의 규모가 번듯하게 세워진 데는 용성선사의 철저한 안목과 실천으로 보인 유덕이 절대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을 행하는 불자가 조국과 겨레에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인가는 나라를 잃은 후 항일운동과 3.1운동의 전개와 다시 허다한 전법, 교화활동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경운동은 세종대왕조에 연원하지만 근세 역경.포교운동의 비조는 용성선사다.용성선사는 전법과 호법이 청정불자의 진실한 행도의 길임을 확신하고 1912년 선종포교당을 서울에 설치하고 포교에 힘써왔다.

특히 3.1운동 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1921년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역경과 포교서적출판에 전력을 기울여서1927년 11월까지의 출판목록은 다음과 같으니 당시의 사정으로 어찌 놀라움에만 그치랴.



귀원정종.능엄경. 불교찬가. 팔상록. 신조만유론(新造萬有論) 신역대장경(新譯大藏經). 금강경. 대장경주해. 상역과해금강경. 능엄경주해. 원각경주해. 입교문답. 선문촬요. 정심다라니경. 금비라동자경. 의식요집. 화엄경. 대각원류.

수심정로. 능엄경합부. 교리대전. 불교아동교과서.기신론. (그 이후의 것은 번거로와 생략한다.)


(2) 선사의 독립정신


선사가 열렬한 민족주의자요 탁월한 종교지도자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3.1 운동 당시 33인의 민족대표로 추앙되지마는 선사를 단순한 민족주의자이거나 종교지도자로만 안다면 선사의 편면만 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선사의 뛰어난 행적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선사를 단순한 도를 깨친 종교지도자이거나 민족지도자로 보아넘기지 말고 선사의 깊은 깨달음의 자세에 착안하여야 하겠다.

선사가 중국 북경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방을 다니며 그곳 장노들과 문답한 것은 어록에 잘 보이지만 그중에 통주 화엄사에서의 문답은 선사의 자세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스님은 어느 절에서 계를 받았소?]선사 대답이다.[우리본국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받았소이다] [우리나라의 청정계맥이 언제 당신네 나라에 들어갔소? 내가 듣자하니 당신네 승려들은 다만 사미계만 받고서 중이 되고 대계(大戒)를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이때 선사는 한바탕 크게 웃고나서 말하였다.

[공중의 해와 달이 당신네 나라 해와 달이요? 대개 불법은 천하의 공도(公度)가 아니겠소. 어찌 천하의 공도를 당신네 나라에 국집하오. 보아하니 나라인즉 대국이나 사람인즉 소인이로다. 그리고 중(中)이라 하는 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 당신네 나라를 남에서 보면 북이 되고, 북에서 보면 남이니 동서도 또한 그러하거늘 어찌 중을 내세우는거요. 사람을 가벼이 여기면 곧 큰 죄가 되는 것이요. 알겠소?

'해가 동방나라를 비추니 강남의 천지가 붉더라.

이 사이에 동(同)별(別)을 묻지마라. 신령한 광명이 고금을 통했느니라.'

 

우리나라 계법이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해오는데 백여년 전에 금담(金潭). 대은(大隱) 두 장노가 동국제일선원에서 서원을 세워 7일 기도를 하니 한줄기 서광이 대은장노 정수리에 부어지므로 이로서 대소계단을 설(設)하게 된 것이요. 이것은 중국의 고심율사의 예와 같소]하였다


선사는 율사로서 또한 한국계단을 지켰지만 그 계맥은 지리산 칠불계맥이다.

이른바 동국계맥이었던 것이다. 여기 문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사의 독립정신은 바로 오도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이 국토의 자유와 자주와 독자적 발전을 철저히 추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바는 선사가 민족지도자로 추앙을 받으면서도 정치적.사회적 항쟁운동에 몸바치는 것보다 오히려 겨레의 독립정신을 근본적으로 붙들어가는 종교운동에 전념한 것이다.  민족의 전통을 배양하고 민족정신을 키워갈 정신적 기지(基地)를 상실할 때 거기서는 겨레도 국가도 문화도 없는 것이다.

민족정신을 키어온 한국불교의 순수한 전통을 지키고 이를 통한 민족정신 만년대계를 추구해온 것이 바로 선사의 독립정신이다.


(3) 공약삼장과 세간오계


일본은 우리나라 합병 후 무단 탄압과 함께 문화말살정책을 썼다. 특히 민족정신의 기초가 된 한국불교를 자멸시키고자 한국불교에 일본식 대처승제도를 도입케 하고 권장하였다. 이것은 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말살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천하가 악의 탁류에 도도히 말려듬을 보고 선사는 이를 향하여 온갖 항거를 폈다. 심지어 [대처승이 승이라니 나는 선생이라고 불러라] 하였던 것이다.


기미년 독립선언서는 그 주문은 최남선씨가 기초했고 공약삼장은 만해 한용운사의 작이라고 전해온다. 그런데 공약삼장 중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효하라.]의 제2장은 선사가 주장하여 만해사에게 권한 것이었다. 또 한가지 알려지지 아니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선사의 세간오계다. 이것은 만암 송종헌 선사의 비망록에 있는 것을 전북 순창 대모암에 계시는 박명석 스님이 추려서 적은 용성비망록에 적혀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나라잃은 이 겨레의 젊은이들이 세간을 살아가는데 의거할 기본적인 강령을 보인 것이었으니 조국을 잃은 생명이 마땅히 일상생활에서 생명을 바칠 것을 보여주어 꿈에도 나라를 생명과 같이 지켜야 할 투철한 행정지표를 보여준다. 

이 세간오계는 선사를 따르는 젊은 후생들에게 밀밀히 전해져 간 것을 알 수 있다. 세간오계의 첫째는 조국에 생명바쳐 충성하라. 둘째, 어버이에게 생명바쳐 효도하라. 셋째, 스승에게 생명다해 공경하라. 넷째, 벗에게 생명과 함께 믿음으로 사귀어라. 다섯째, 싸움에 임하여 생명걸고 이겨라 이다.

이 오계는 신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바쳐] 또는 [생명다해] 또는[생명걸고]라는 특징이 있다. 이 세간오계와 앞서의 공약삼장에서의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효하라]한 것은, 소신에 대하여는 세력도 권위도 생사도 천지도 안중에 없는 도에 사무친자의 기백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4) 悟道와 구국정신

선사의 독립정신은 오도에 근거한다. 그리고 구국정신으 발휘는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중점을 두느니 보다 굳건한 민족정신을 지키고 키우는 것으로 기본 방향을 삼았다. 불법이 민족정신을 키우는 근원적 자원임을 믿고 민족적 불법정신의 순수성을 보존하는데 온 생애를 다했다.

그것은 산중 선당(禪党)에 앉아 좌선에만 치우치거나 소수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데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나라잃고 곤욕을 받는 겨레의 생활마당에 뛰어들어 법을 전하고 가르침을 펴며 저들의 의지가 되고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 나라를 잃고 나라를 되찾는데서나, 나라를 찾아 영광된 조국을 건설하는데 있어서나, 세계를 향하여 겨레의 영광을 펴가는데 있어서 선사가 보인 독립정신은 만고의 귀감이 아니될 수 없다. 오늘날 사회의 발전은 정신적 혼란의 빛을 띠기 시작하였고 불교의 하산(下山)을 요구하며 사회참여의 소리도 드높다. 이때에 있어 우리는 용성선사가 보인 총림설치. 포교. 역경. 선농(禪農)과 함께 종교를 통한 독립정신은 영원한 우리의 전통적 사상 배경이 되고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