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중의 기이한 현상

♣ 구도문답

2008-01-27     관리자

1. 인구와 본성

문 : 세계는 지금 인구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읍니다. 사람의 영혼이나 중생의 성품도 늘어나고 줄어듬이 있는지요?

답 : 지구상 인구가 는다고 하지만 본성을 미혹한 중생의 영혼(영식)은 인간에게만 있어서 그것이 미국이나 영국이나 박씨나 김씨의 집으로 뱅뱅 도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영식은 지옥. 아귀. 축생 내지 천상에 이르는 육도에 널려 있읍니다. 다만 자성을 깨달아야 중생경계를 벗어나고 육도윤회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인구절대수가 는다는 것은 인간 외의 다른 중생이 인간으로 올 수도 있고 천상이나 귀신계에 있던 중생도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므로 거기에 모순은 없읍니다. 영혼은 본성을 깨달을 때 중생성을 벗어나는 것이며, 중생의 본성에는 늘고 줄어듬이 없는 생각 밖의 "무한성" 이라는 것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2. 목탁이 의미하는 것

문 : 목탁은 불교의 상징이라 하리만티 절에서 많이 쓰는데 그 내력이 어지된 것입니까?

답 : 오늘날 절에서 대강 3가지 의미를 담아 쓰이고 있읍니다. 첫째는 목탁을 울려서 사람을 모이게 하는ㄷ,ㅇ 신호하는 도구요, 둘째는 독경. 불공등 의식에 소리를 맞추는데 쓰이고, 셋째는 혼침에 들었을 때 정신을 차리라고 깨우치게 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읍니다. 또한 목탁의 원형이라 할 목어는 종루(종. 북. 운판. 목어등을 장치한 누각) 에 걸어놓고 울리는데 이것은 수중중생들을 깨우치고 편안하게 하는 뜻이 있으니 목어는 의식에 쓰인다고 할 수 있읍니다. 원래 목탁은 고기형상으로 만든 목어를 변형한 것입니다. 또 목탁에는 2마리의 용머리를 손잡이로 하고 몸은 하나인 형상으로 만들 때도 있읍니다. 이런 때는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것처럼 범부에서 성인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탁은 고기형상을 그리지 않고 있지만 이것은 편의에 따른 것뿐이라 하겠읍니다. 그런데 목탁에 물고기를 새기게 된 내력에는 다음 2가지 설이 있읍니다. 하나는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읍니다. 그래서 혼침에 빠지지 않고 말끔히 깨우친 상태를 뜻합니다. 또 한가지 설이 있는데 이것은 망인을 천도하기 위하여 부처님께 공양할 음식을 장만하다가 먼저 먹은 과보로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 등에 나무가 나서 고통이 심하므로 물고기가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서 자기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두들겨 달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우치를 거울 삼아 세간 사람들을 경책케 하고 그렇게 한 공덕으로 자기가 해탈을 얻는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읍니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목탁은 원래 혼침과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원래의 뜻이라 하겠고 그 다음에 집단생활에서 집합신호나 의식도구로 쓰이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사회의 경종이 되는 행위를 사회의 목탁이라 이르게 된 것도 이런데서 온 것이겠지요.

3. 3천배 한 힘

문 : 저는 이제까지 예불하여도 108배나 5백배 이상 한적이 없읍니다. 또 그이상 할 자신이 없는 건강 상태입니다. 그넌데 이번에 단체로 해인사 참배를 가서 3천배할 계획을 세우고 미리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읍니다. 3천배 할 힘을 주십사 하고요. 그런데 실지 해인사 가서 절을 해보니 5백배 이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읍니다. 부처님 존상을 쳐다 보니 하소연인지 원망인지 하는 생각이 들자 "부처님 저에게 힘을 주십시요" 하는 생각이 들고 무조건 절을 하였읍니다. 그러는 중에 뜻밖에 힘이 생겨서 마침내 가볍게 3천배를 마쳤읍니다. 꼭 부처님께서 붙들어 일으켜 즈는 것 같았읍니다.

답 : 부처님께 예경하고 염불하며 착하고 바른 일을 하는 모든 일은 부처님의 신력입니다. 거기에는 막강한 위력이 있읍니다. 의심하지 말고 부처님 위신력을 많이 내어 쓰시기 바랍니다.

4. 공부와 기이한 형상

문 : 참선이나 염불을 하면 기이한 상서가 있다고 들었읍니다. 저에게는 염불을 해도 그런 일이 없으니 공부의 진척이 없기 때문에 그렇읍니까?

답 : 염불공구도 참선공부도 부처님 공덕세가 들어나는 점은 같다고 할 수 있읍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공덕세계는 원래가 이것이 일심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일심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읍니다. 일심은 원래로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하는데도 아무 기이한 형상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이한 형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공부하는 중에 비록 상서가 나타나더라도 결코 집착하지 말고 일심에 본래로 상이 없음을 알아 오직 공부를 할 줄만 하는 마음자세가 요긴 하다고 하겠읍니다.

5. 최상의 심지법문

문 : 어떤 것이 최상의 심지 법문입니까?

답 : 부처님의 12부 경전의 말씀은 말할 것도 없고 개울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그 모두가 최상의 법문이라고 옛조사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