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촬요연의] 전심법요(傳心法要) (5)

선전촬요연의 9

2008-01-26     석주 스님

  사람마다 갖추어 있는 불성은 이것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다. 많이 닦거나 고행 하였다 하여 공능이 더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한다.

  [부처님이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밖에서 들어온 것이 있거나 안에 새로 생긴 것이 있는 것이 아님은 앞서의 역사(力士)의 이마구슬의 비유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랜동안 힘써가며 구슬을 찾느라고 고생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본래로 갖추어 있는 본심불을 아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아뇩보리를 얻었다 하지만 실로는 얻은 것이 없다.」 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육안, 천안, 법안, 혜안, 불안의 오안으로 보시는 바를 말씀하시고 다시 「부처님은 참말을 하는 자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라 하시어 얻을 바 없이 얻는 본심불을 의심하는 자에게 밝게 말씀하신 것이다.]

  세존 당시의 스님들 중 성문은 소리를 인연해서 깨달음을 얻나니 그러므로 성문이라고 한다. 자기 마음을 요달할 줄 모르고 말씀에 따라 생각을 일으키며 혹은 신통을 의지하고 혹은 서상이 있거나 말씀에 의지해서 보리 열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삼아승지겁동안 힘써 닦아서 불도를 이룬다고 하니 이는 성문도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성문불이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직하에 자기 마음이 본래로 부처인 것을 요달하고 한 법도 얻을 것이 없고 한 행도 가이 닦을 것이 없는 것, 이것이 무상도(無上道)다. 이것이 진여불(眞如佛)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만 한 생각이라도 있으면 곧 도와 더불어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 생각 상이 없고 생각 생각 함이 없어야 이것이 부처인 것이다.

  聲聞者 因聲得悟故 謂之聲聞 但不了白心 於聲敎上起解 或因禪通 或因瑞相 言語運動 聞有菩提-槃 三僧袛劫 修成佛道 皆屬聲聞道 謂之聲聞佛 唯直下頓了自心 本來是佛 無一法可得 無一行可修 此是無上道 此是眞如佛 學道人 祇怕一念有 即與道隔矣 念念無相 念念無爲 即是佛

  생각 생각 상이 없고 생각 생각 함이 없어야 이것이 부처인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를 이루고자 할진대 일체 불법을 배울 것이 없고 다만 구함이 없고 집착이 없음을 배울지니라. 구하는 것이 없으면 곧 마음이 멸하지 않나니 이 불생불멸이 즉시불이니라. 팔만사천 법문이 팔만사천 번뇌를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범부를 교화하고 인도하는 문이다. 본법에 있어서는 원래 한 법도 없는 것이다. 일체 집착을 여읜 것이 곧 법이니 여임을 아는 자는 이것이 불이니라. 다만 일체 번뇌를 여의면 여기에는 가이 얻을 법이란 없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요결을 알고자 하거든 다만 마음에 한 물건도 집착하지 마라. 부처님의 진법신은 마치 허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 것을 비유한 것이다.

  범부들은 법신은 허공에 두루하여 허공 가운데서 법신을 포함하고 수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법신이 곧 허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말할진대 허공은 법신이 아니며 만약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말할진대 법신은 이것이 허공이 아니니 결코 허공이라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법신이 곧 허공이니 허공과 법신은 다른 상이 없다. 부처와 중생이 다른 상이 없으며 생사와 열반에 다른 상이 없으며, 번뇌와 보제(菩提)에 다른 상이 없다. 일체 상을 여임은 이것이 불이니라.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하나니 마음과 경계를 쌍으로 잊으야사 이것이 진법이니라. 대개 경계를 잊는 것은 오히려 용이하거니와 마음을 잊는 것은 지극히 어려우니 사람들은 감히 마음을 잊으려 하지 않고 마음을 잊음은 손대볼 수 없는 공에 떨어진다고 두려워 한다. 이것은 공에는 본래로 공이 없으며 오직 한 진법계 뿐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學道人 若欲得成佛 一切佛法 摠不用學 唯學無求無著 無求即心不生 無著即心不滅 不生不滅即是佛八萬四千法門 對八萬四千煩惱 秪是敎化接引門 本無一切法 離即是法 知離者是佛 但離一切煩惱 是無法可得
學道人 若欲得知要訣 但莫於心上 著一物 言佛眞法身 猶若虛空 此是喩 法身即虛空 虛空即法身 常人 謂法身徧虛空 處虛空中 含容法身 不知法身即虛空 虛空即法身也 若定言有虛空 虛空不是法身 若定言有法身 不是虛空 但莫作虛空解 虛空即法身 莫作法身解 法身即虛空 虛空與法身 無異相 佛與衆生 無異相 生死與涅槃 無異相 煩惱與菩提 無異相 離一切相 即是佛 凡夫取境道人取心 心境雙忘乃是眞法 忘境猶易 忘心至難 人不敢忘心 恐落空 無撈摸處 不知空本無空 唯一眞法界耳.

  이 영각(靈覺)의 성은 무시이래로 허공과 더불어 수명을 같이 하나니 일찌기 난 바가 없고 일찌기 멸한 바 없으며 아직 일찌기 유가 아니며 일찌기 무가 아니며 일찌기 더럽지 않았으며 일찌기 깨끗하지 않았으며 일찌기 시끄럽지도 않았고 일찌기 고요하지도 않으며 일찌기 젊지도 않았고 일찌기 늙지도 않는다. 방소(方所)가 없으며 내외가 없으며 수량이 없으며 형상이  없으며 색상이 없으며 음성이 없어서 찾을 수도 없고 구할 수도 없고 지혜로 알 수도 없고 말로 잡을 수도 없고 경계나 물건으로 알 수도 없으며 공덕을 닦으나 조화를 부려 이룰 수도 없나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일체 고물고물한 중생들과 더불어 대열반의 성품을 함께 하고 있느니라.

  도를 배우고자 하거든 다만 마음에 한 물건도 집착하지 말라.

  성품이란 곧 마음이요 마음은 곧 불이요 불은 곧 법이니 한 생각이라도 참됨을 여의면 모두가 망상이 되느니라.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을 구하지 말지며 부처로써 다시 부처를 구하지 말지며 법으로써 다시 법을 구하지 말지니라.
  그런고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직하에 무심하여 잠잠히 계합할 뿐이니라. 조금이라도 마음을 헤아리면 곧 어긋나느니라.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이것이 바른 견해가 되는 것이니 부디 밖을 향하여 경계를 좇으며 경계를 인정하여 마음을 삼는 것을 삼가하라. 이것이 도적을 가져 자식을 삼는다고 하는 것이니라.

  此靈覺性 無始已來 與處空同壽 未曾生未曾滅 未曾有未曾無 未曾穢未曾淨 未曾喧未曾寂 未曾少未曾老 無方所 無內外 無數量 無形相 無色象 無音聲 不可覓不可求 不可以智慧識 不可以言語取 不可以境物會 不可以功用到 諸佛菩薩與一切蠢動含靈同此大涅槃性 性即是心 心即是佛 佛即是法 一念離眞皆爲妄相 不可以心 更求於心 不可以佛 不可以法 更求於佛 不可以佛 更求於佛 不可以法 更求於法 故學道人 直下無心 默契而已擬心即差以心傳心 此爲正見 愼勿向外逐境認境爲心 認賊爲子.

  중생에게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계ㆍ정ㆍ혜를 세우거니와 본래 번뇌가 없거니 어디에 깨달음이 있으리요. 그러므로 조사가 이르기를 「부처님이 일체법을 설하심은 일체심을 제하기 위함이니 나에게 일체심이 없거니 일체법을 무엇에 쓰랴?」하신 것이다. 본원 청정불 위에는 다시 한 물건도 붙일 것이 없나니 비유하면 허공을 무량한 보배로 장엄하고자 하더라도 마침내 장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불성은 허공과 같아서 비록 무량한 공덕 지혜로 장엄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장엄하지 못하나니 다만 본성을 미하여 더욱 더욱 보지 못할 뿐이니라.

  爲有貪嗔癡 即立戒定慧 本無煩惱 焉有菩提 故祖師云 佛說一切法 爲除一切心 我無一切心 何用一切法.
本源淸淨佛上 更不著一物 譬如虛空 雖以無量珍寶莊嚴終不能住佛性 同虛空 雖以無量功德智慧莊嚴終不能住但迷本性 轉不見耳.

  이른 바 심지법문은 만법이 다 이 마음에 의하여 건립된다. 경계를 만나면 곧 있고 경계가 없으면 곧 없으나 그러나 청정한 성품 위에 이것을 잡아 경계의 결해를 짓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정과 혜를 밝게 씀은 또렷하고 고요하고 다시 말끔하다. 보고 듣고 깨달아 안다는 것은 이 모두가 경계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다. 이들은 중근기(中根機), 하근기인(下根機人)을 위해서 잠시 말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청정 성품을 친히 증(證)하고자 하거든 이런 견해를 지어서는 아니된다. 이들은 모두가 경계를 상대한 법인 것이다. 대개 무엇이고 그를 잡고 인정하면 그에 빠지는 것이며 결국 유에 떨어지고 만다. 다만 일체법에서 유무의 견해를 짓지 않는 것이 이것이 곧 법을 봄인 것이다.

  所謂心地法門 萬法 皆依此心 建立 遇境即有 無境即無 不可於淨性上 轉作境解 所言定慧鑑 用歷歷 寂寂  惺惺 見聞覺知 皆是境上作解 暫爲中下根人 說 即得 若欲親證 皆不可作如此見.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시어서 오직 한 마음을 설하고 오직 한 법을 전하였다. 불을 가지고 불을 전하고 다른 불을 말하지 않았으며 법으로써 법을 전하고 다른 법을 말하지 않았다. 법은 즉 말할 수 없는 법이며 불은 즉 잡을 수 없는 불이다. 이는 바로 본원 청정의 마음인 것이다. 오직 이 한 사실만이 진실이요 그 밖에는 모두가 참이 아니다.

  일체법에서 유무의 견해를 짓지 않는 것이 곧 법을 봄이다.

  반야는 혜를 말한다. 혜는 곧 일체 상이 없는 본심의다. 범부는 이러한 무상대도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육근 육진등 식성을 함부로 놀려 육도를 헤맨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설사 한 생각이라도 생사를 계교하면 곧 마도에 떨어진다. 설사 한 생각 견해를 일으켜도 곧 외도에 떨어진다. 생이 있다고 보고 그 생을 없애고자 한다면 곧 성문도(聲聞道)에 떨어진다. 생이 있다고 보지 아니하고 오직 멸만이 있다고 보면 곧 연각도(緣覺道)에 떨어진다. 그러나 법은 본래로 남이 없으니 지금 또한 멸도 없는 것이다. 생사의 두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하고 또한 싫어하지도 아니하며 좋아하지도 아니한다. 일체 제법이 오직 이 일심이다. 이래야 비로서 불승이다.

  自達磨大師到中國 唯說一心 唯慱一法 以佛傳法 不說餘佛 以法傳法 不說餘法 法即不可說之法 佛即不可取之佛 乃是本源淸淨心也 唯此一事實餘 二則非眞 般若爲慧 此慧即無相本心也 凡夫不趣道 唯恣起諸見 即落魔道 一念起諸見 即落外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