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보람-불교 전문 통신강원을 운영하면서

통신강원

2008-01-26     관리자

   나는 요즘 혼자 앉아서 빙긋빙긋 웃는 자신의 모습을 가끔 발견한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는 월운이가 요즘 실성을 했나 할지 모르겠으나 꼭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 변명할 자료 또한 분명하지 않다.
   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소지품들을 정리하다가 사부님(운허스님)께서 74년도에 강의하신 능엄경을 녹음해 두었던 카세트 상자를 열어보게 되었다.
   잠시 조용한 틈을 내어 들어보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회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생각하기를「사문의 육화에는 이화동균(利和同均)이 있는데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천하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우리의 통신강원이다.
   이 일을 놓고 몇몇 뜻있는 이에게 상의했더니 의외로「그것 좋은 생각이요.」하면서「이왕이면 강원에서 공부하는 사미과 사고과도 강의해서 새로 테이프를 만들고, 또 일반교양에 관한 부문도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이런 조언에 힘입어 지난 4월 1일자로 봉선사 불교 전문 통신강원이란 현판을 걸고 그 개원식을 가졌었다.
   이 소식은 차츰 차츰 알려져서 현재 2백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기타 교도소 군부대 등지에서도 상당수 요청이 있어, 실질적인 수강자는 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첫째 빈 방에 홀로 앉아 녹음을 하면서「여러분!」하고 외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고,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이런 것을 만들어 놓고는 「모두들 이걸 갖다가 공부 하시오.」하는 꼴이 그렇다.
   더구나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변변치 못한 사업을 무슨 천재일우의 좋은 인연이라도 베풀어 준 것처럼 고마워하는 수강자들의 알뜰한 사연이 나를 더욱 실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7월말, 수강자 집체수업(연1회 실시) 때에 어떤 수강자는 내가 강의 중「끅」「끅」하고 트림을 한다고 걱정스러워서 그것을 가지고 한의사에게 물어 소화제를 지어다 주는 이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런 사연들로 인하여 누가 흉을 보건, 손가락질을 하건 용기를 내어 약속한 3년의 기한을 잘 마칠 생각이다.
   하기야 이 넓은 땅 위에는 불경을 배우고 싶어도 강원이나 학교에 갈 형편이 못되는 승니, 법문을 듣고 싶으나 역시 매인 데가 많아서 생각뿐인 불자도 없지 않으리라.
   그런 분들일수록 자신이 자유로운 시간과 장소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고들 한다.
   어떤 주부는「온 가족이 함께 듣고 공부할 수 있어 좋다.」고 했고, 어떤 거사는「앉아서 일을 하면서 귀 만으로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우리들 봉선사 주변의 스님들은 지난 78년 가을에 자리를 같이 하고 다음과 같은 일을 다짐한 적이 있었다.
   말법에 태어난 우리들이 선각자에게서 물려받은 이 불국토를 보다 잘 호지하는 방법으로서
   첫째 모든 불자들은 그 가족을 불자로 만들도록 이끌자!
   둘째 모든 불자들은 신앙을 활성화 하자.
   셋째 모든 불자들은 일선 포교사가 되자.
   그러기 위하여 단 한 구절의 법문이라도 분명히 알고 지니는 불제자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생활하는 불제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하려고 노력하는 불제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궁리하던 끝에 기초 교리를 수록한「삼화표월지」와 우리말을 섞어서 편집한 의식집으로서「삼화행도집」을 만들었다.
   그래서 금번 통신강원의 교과에 넣어 활용키로 하였으니, 교양반은 삼화표월지를 토대로 한 기초교리와 간단한 불교사, 삼화행도집을 대본으로 한 의식 등을 강의하기로 하였으니 일차적인 포교사업이나 일반적인 교양을 얻으려는 이를 대상으로 하였고, 전문반은 강원교과를 그대로 강의하여서 강원을 이수한 것과 똑같은 수준에 이르게 하도록 시도하였다.
   이 가운데서 사미과와 사집과는 내가 직접 강술하고 있으며 사고과에서 능엄경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 운허 노사의 강의녹음을 재생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그 테이프를 몽땅 사자면 얼마면 되오?」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는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다. 
   그 이유는, 나는 테이프 장사가 아니라고 자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성불은 뒤로 미루더라도 중생들의 윤회를 먼저 구제하리라는 보살의 서원에야 견줄 수 있으리요마는 말법에 태어나 부처님의 은총 너무나 깊으심에 감사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생각만은 알뜰하기 때문이다.
   내게 깊은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지난날 한 마디의 낱말, 한 구절의 이치를 알 수 없어 초조해했던 나날을 생각하여 내가 알고 있는 부분만이라도 이렇게 펴 놓으면 지난날 나의 답답해하던 처지에 있는 분에게는 다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불사를 강원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종합적으로 널리 공부하기를 원하는 이, 명석하게 깊이 얻기를 바라는 이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익히고, 익힌 것은 내 것을 만드는, 이른바 80노인이 돌탑을 세워 올리는 기분으로 임해 주는 이를 기다린다.
   수강자들이 모르던 것을 내가 깨우쳐 주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수강자들의 모니터에 의해 바로잡는 동학도반의 관계에 있을 뿐이고, 결코 테이프 장사는 아니다.
   그런 까닭에 수강자 전원은 입학한 뒤 3개월마다 소정의 시험을 치르게 했고, 매년 7월 중에 한 번씩 집체수업을 받도록 마련했다. 그리하여 소정의 점수에 미치지 못한 이는 좀 더 공부에 힘써서 3년의 전 과정을 마치면 강원에서 직접 수업한 졸업생과 꼭 같은 자격을 인정받도록 제도화했다.
   그러노라면 일도 많고 때로는「구질구질한 짓을 하고 있구나!」하고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테이프의 우송이 1, 2일 만 늦어도 문의전화가 빗발치는 데는 다시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조그마한 보람이다.
   더구나 어떤 수강자는「집에서 테이프를 자주 듣고 있노라니, 불교에 부정적 심리를 갖고 있던 시누이가 불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하기도 하고 어떤 수강자는「나는 개인택시를 모는 운전사인데 테이프를 틀고 일하면서 공부를 하노라면 어떤 손님은 불교 방송국이 언제 생겼던 모양이지요?」하면서 좋아하더란다.
   어쨌든 부처님의 말씀을 일정한 기획에 의해 음향화해서 전파한다는 데서 방송국을 갖지 못한 서러움을 달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조그마한 보람이다. 여기에서 더 발전하여 지면을 통한 지상강좌 같은 것이 생겨서 불교수업 인구가 부쩍 늘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이것이 모체가 되어 불교를 전파하는 방송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먼 뒷날을 바라보는 미래의 보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