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냄새 피우지 마라

■ 노사의 운수시절

2008-01-25     관리자

 1.그리운 오대산 시절

내가 불교정화 이후 부터는 주로 이곳 문수암에서 지내고 있다. 그래서 높은 산봉우리에 사는 셈이다. 그러나 생각은 언제나 흰구름 덮히고 깊은 골짜기 물소리 듣는 저 젊은 시절에 산중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저 수려했던 금강산 그리고 정들은 오대산의 이골짝 저골짝 특히 상원사와 보궁 그리고 중대에서 비로봉을 잇는 산의 풍경은 언제나 나의 마음의 고향이다.

고요히 복잡한 생각 다 놓고 있노라면 오대산 생각이 난다. 어떤 때는 눈에 덮힌 뜨락 산둥숭이 봉우리가 눈앞에 휜히 나타나는가 하면 때로는 짙은 숲속에 맑은 소리 읊조리는 흐르는 개울을 보기도 한다. 상원사 뒤곁에서 낫을 휘두르며 베어 왔던 향기 높은 나물들, 내가 버섯을 따 오면 기뻐하시고 꼭 나와 보시던 우리 스팀 조실스님, 이런 생각이 뭉개구름처럼 피어 오를때는 내가 어느듯 소년이 되고만다.

 

아 , 정말 그리워라 그 시절이여. 나는 저때에 주먹을 불끈쥐고 오직 한물건 화두 타파만을 생각하고 전후 좌우 돌보지 않고 돌아쳤었지. 그 때는 자신도 있었거니와 주변 사람들이 나를 기대했고 우리 스님의 은근한 기대를 느꼈었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오늘의 이몸에 생각이 와닿고 그 사이에 세월들로 해서 다시 복잡한 생각들이 들곤한다. 아무튼 나는 생리가 반쯤은 산 사람이 되어 버렸는가 한다. 오대산 시절을 생각하다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EJ 오른다. 두서없는 이야기지만 오늘은 그때의 한토만을 생각 나는대로 적어 보기로 한다.

 

2. 석공장궁 법문

그때는 병인년 하안거중 반산림이 지난 때라고 생각한다. 역시 상원사의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五십五년 전이 되는가 한다.

 

그날도 조실스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양후에 차를 마시며 대중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은 저 유명한 석공장궁(石鞏張弓) 법문을 하셨다. 석공장궁 이야기는 선법문을 들은 사람이라면 대개가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여기에 그 줄거리를 적어본다.

 

당나라 마조스님 문하의 석공(石鞏)선사의 오도인연에 관한 것이다. 석공은 본시 활을 쏘며 사냥하는 것이 본업이었다. 한번은 사냥을 나왔다가 사슴을 쫓는 중에 어느 절에서 마조스님을 만났다. 활을 쥐고 있는 석공에게 마조스님이 묻기를 화살 한 개를 가지고 한번에 사슴 몇 마리를 쏘아 맞히는가? 물었다.

 

『한번에 한 마리씩 맞힙니다.』

 

마조스님이 말했다. 『당신은 활 쏠 줄 모르는 구마.』

 

석공이 물었다.

 

『스님은 한번에 몇 마리나 쏘아 맞힙니까.』

 

석공은 이 말에 뜻을 알아 들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스님은 너무 잔인합니다.』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너 자신을 쏘지는 않는고?』

 

석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만일 스스로를 쏠 때는 무하수처(無下手處)입니다. 』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마조스님이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놈의 광겁 동안 지은 무명이 단번에 빙소와해(氷消瓦解)하였다.』하니 석공이 즉시 가지고 있던 활과 화살을 뿌질려 던져버리고 마조 스님에게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조실스님RP서 석공스님에 대한 이러한 오도출가인연을 말씀하시고 나니, 곁에 있던 장설봉(張雪峰) 스님이 조실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실스님은 살 하나에 사슴 몇 마리를 쏘아 맞힙니까?』 이때 조실스님은 설봉스님을 향하여 활을 당기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니 설봉스님은 곧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는데 조실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불시불시(不是不是)』하시며 틀렸다고 한즉 설봉스님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조실스님은 이번에는 곁에 있던 운정(雲頂•금오스님) 수좌를 보고 말하였다.

 

『정수좌 활솜시;는 어떠하오?』정수좌가 곧 조실스님을 향하여 활을 당기는 행세를 지으니 스님은 벌렁 나자빠지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보고 정수좌가 크게 웃으니 조실스님이 일어나시며 말씀하시길 『대중은 빨리 송장을 치우라.』고 말씀하셨다. 정수좌는 즉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 설봉수좌가 조실스님께 말씀드렸다. 『소승의 불시처(不是處)를 다시 말씀하여 주십시오.』 조실스님 왈 『재범(再犯)은 불용(不容)이다.』하니 봉수좌는 노기 띠여 말하기를 『스님은 남의 법을 깍아내리지 마십시오.』하고 훌쩍 일어났다.

 

이를 지켜보던 대중이 숙연히 관망하고 있었는데 내가 조실스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설봉스님의 마음에 맞도록 다시 좋은 말씀을 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하였더니 『더러운 냄새를 더 피우지 말아라. 』하고 결연히 말씀하였다.

 

그날 다화에 나왔던 문답의 대답은 조실스님은 둘다 불시(不是)라고 평하였는데 당시에 대중의 분위기가 진지했든만큼 일장에 웃음거리로 끝날 수는 없었다. 설봉스님은 불만을 품고 새벽에 걸망을 싸 짊어지고 떠나고 말았다. 그처럼 인자하셨던 조실스님은 수행인의 행지에 관한 일이나 법문에 이르러서는 서릿발과 같이 엄정하여 참으로 범할 수 없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조실스님의 일화에 관하여는 언젠가 기회를 보아 정리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