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뵈온 관세음보살

수행수기

2008-01-25     관리자

     [1] 나의 보물을 찾아

   나의 행각시절의 일이다. 입선(入禪)을 하려면 우선 신심(信心)이 돈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기도를 성취하기로 하였던 것이 나의 첫 행각의 출발이었다.
   통도사 강원에서 화엄경을 볼 때였다.「다른 이의 보배를 헤아려도 너에게는 이익이 없다」는 글귀를 읽다가 문득「이 불가사의 경계도 부처님의 것일 뿐 나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졸업을 하면 곧 선방(禪房)에 들기로 하였던 것이다.
   때는 납월팔일(臘月八日) 무렵이라 해제하기 전이고 강원 졸업도 한 달 남짓 남았으므로 그간 행각준비를 끝내고 극락암 경봉 노스님을 뵈오러 갔다. 졸업 후에는 선방에 들 것을 말씀드렸드니 스님께서 일대시교를 마치고,
『입선하는 것은 마치 용의 뿔을 가진 것과는 같은 것이다.』
하시며 입선하기 전에 우선 기도를 하여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처음 마음먹은 대로 기도를 성취 못하면 절대 입선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졸업하기가 바쁘게 관음전에서 첫 기도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매일 한 끼만 먹고 냉수욕을 하면서 칠일 간을 철야정진으로 몸부림쳐 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준비하여둔 걸망을 지고 남해 보리암으로 갔다. 백일기도를 정하고 일종식을 하며 철야정진에 들어갔다.

     [2] 첫 번째 서광

   21일이 경과할 무렵 어느 날 새벽이었다. 정근을 하는데 갑자기 온 몸에 서물서물하는 전율이 왔다. 몸이 점점 텅 비는가 하더니 갑자기 후련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순간적 일이라 계속 정진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이상하게도 내가 8살 때부터 앓아 20여 년 동안 고름이 나고 냄새는 물론이요 머리가 무겁고 통증이 심하여 적지 않은 시달림과 고생을 하였던 귓병이 신기하게도 깨끗이 나아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무겁던 머리도 시원해졌고 기분 상쾌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그로부터 나는 기도에 자신을 얻었지만 그 후로는 자주 몸이 텅 비고 기도가 냉랭하여 재미가 없었다.
   내가 본래 목적한 바는 성인을 친견하기는 일인데 이런 것으로 좌절할 수 없다 하고 자리를 옮겨서 기도를 다시 계속하기로 하였다. 낙산사 홍련암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길을 떠났는데 가는 길에 쌍계사 육조스님 성탑에 들려서 3일간 꼬박 뜬 눈으로 앉아 서원을 세우고 있었는데 온 몸이 꽁꽁 얼어서 죽을 뻔하였다.
   이러다가 기도도 성취 못하고 죽게 되겠구나 하고 일어나려 하는데 온몸이 굳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시장기와 현기증까지 겹쳐서 한참동안 애써 몸부림친 끝에 겨우 일어나 문을 열고 밖에 나와 보니 마음이 그럴 수 없이 황홀하기만 했다. 백설이 자욱이 내려있고 인적이란 없었다. 다시 멍청히 서 있다가 기다시피 하여 큰절에 가서 밥 한 그릇 먹고 나니 좀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눈길을 걸어서 하동읍내로 향했다. 어떻게 하든지 기도를 쉬지 않으려고 재촉했던 것이다. 며칠 후 홍련암에 당도하였다. 암주를 찾기 무섭게 법당에 들렸더니 몇 사람의 기도손님이 있었다. 나는 목탁도 없이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7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저 기분만 좋을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기도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또 걸망을 지고 설악산 오세암으로 향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와서 못 간다고 하여 다시 오대산 적멸보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중대(中臺)에 짐을 풀었는데 노진이란 스님이 무척이도 인정 없이 쌀쌀했다. 나는 곧장 보궁으로 올라가 일주일간을 몸부림쳐 보았으나 역시 별 신통한 일이 없었다. 날씨도 춥고 하여 남방으로 내려가서 인적이 없는 곳에 틀어박혀 계속 기도할 것을 마음먹고 내려오는데 몸이 공중 헤쳐 오는 것 같았다. 오는 도중 통도사 백운암 생각이 났다. 그곳은 평소에 인적이 없는 곳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통도사에 도착하여 물었더니 마침 비어 있다고 하여 큰절에서 쌀 한 말을 얻어 가지고 곧장 백운암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만약 성취를 못하면 내 목을 달고 가지는 않으리라 맹세하고 무한정 기도에 들어갔다. 37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3] 관세음보살 진신(眞身) 나투다

   하루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쁜 날이 계속되었는데 이른 새벽에 문득 앞뒤가 꽉 막혀 전후가 막막하였고 온통 관음보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갑자기 내가 텅 빈 허공에 있음을 느꼈다. 분명히 나는 있는데 내가 없었다. 희귀한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온 천지가 적적한데 홀연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서와 더불어 원광을 나투며 내가 그렇게 목타게 찾으시던 분이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직시했다. 그 분도 나를 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 분은 합장하며 사라졌다.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마치 백천근의 무거운 짐을 풀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고 통쾌한 기분을 어찌 말로써 표현하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모두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의 깨끗한 시야에는 멀리 보이는 천성산 허리에 흰 안개가 흐르고 그 너머 수평선만 보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글귀가 나왔다. 
 『홀연원광선서중(忽然圓光禪瑞中)에 관음성자현진신(觀音聖者現眞身)이라.』
   나는 단숨에 극락암으로 내려갔다.
   노스님을 뵈었더니 스님께서, 
  『요즈음 기도를 한다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하시기에 나는, 
  『뵈옵기는 하였으나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노스님은 웃으시면서
  『말이 있으면 그르친다.』
하시고 이제부터 정진을 하도록 해라 하시었다. 경으로만 알고 상상했던 그 이치를 내가 직접 피부로 체험할 줄이야. 나는 비로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새롭고 정답기만 했다. 숲속길을 오르는 동안 엉덩이 춤이라도 아니 추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4] 건곤밖에 드러난 몸

   이제 생각하니 그때가 바로 나의 초발신심(初發信心) 시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후 나는 2년 동안 그곳에서 목에 칼을 대고 정진했고 죽비로 무릎을 쳐서 멍이 꺼멓게 들기로 했다. 노스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바람쐬러 노구를 이끄시고 오신 적이 있다. 그때 노스님께서 처음 올라 오셔서 나에게 주신 글이 지금도 있다.
  「지산지수 겸지인(知山知水 兼知忍) 백운암재 작주인(白雲庵在 作主人) 약파건곤 번일전(若破乾坤 翻一轉) 인천출격 장부인(人天出格 丈夫人)」
   그때 나의 이름이 지인이니까 내 이름을 따서 지었음에 틀림없었다. 글을 보고 있다가 나는 노스님께,
  『작주인(作主人)이면 되었지 약파건곤(若破乾坤)은 또 무엇입니까?』
하였더니 다음에 좋은 글을 써주마 하셨다.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월인천강(月仁千江)을 써주셨고 세 번째는 이제 백운암 길도 마지막길이 되겠다 하시었다. 아마도 내 일생을 두고 심중깊이 남아 있을 분이 있다면 달리 있을 분이 없을 것이다. 내가 포교당에 나가겠다고 하였을 때도 노스님은 측은한 눈으로 금의환향하라는 한 말씀뿐이었지만 내 생활에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 후 나는 다시 2년 동안을 그곳에 있으면서 소위 미치광이가 된 적도 있다. 세상은 무인천하라 어찌 자신을 감출 곳이 있는가. 아니 뛸 수가 없고 아니 웃을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렇듯이 미친놈이 되었는지 모른다. 대낮에 등불 들고 사람 찾는 그 심정을 누가 겪어봤었던가!
   나는 해제날을 기다렸다가 다시 걸망을 지고 제방에 이름난 큰 스님을 뵈오려 길을 떠났다.

     [5] 한 중생이 한 부처

   제방선지식을 두루 뵙고 나는 다시 백운암으로 돌아 왔다. 그로부터 나는 한가로이 지내면서 결제가 되면 극락암 선방에도 오르내리며 정진을 계속했다. 틈나는 대로 허물어진 집도 손질하고 건강을 돌보며 지내다가 원효암으로 자리를 옮겨 보려고 하였는데 마침 큰절에서 마산교당에 잠시 가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곳에 나온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에 나의 생활은 무어라 말할 수도 없겠으나 한 중생이 한 부처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할까. 그리고 간혹, 문수성자가 만행중인 보현성자에게 보낸 시구를 새롭게 음미할 뿐이다. 
 「구재진로중 매각본말사(久在塵勞中 昧却本末事)
    직수만행졸 속환청산래(直收萬行卒 速還靑山來)」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확신이 있어야 하고 확실한 신심을 얻으려면 우선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은 기도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