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늘은 얼마만한 것일까

2008-01-24     관리자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데, 뒷자리에 앉은 두 남자가 계속 말을 주고 받았다.  한 쪽은 노년이고 다른 한 쪽은 중년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이장을 하고 온 여자의 무덤과 그 분의 행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노년 쪽으로서는 어머니요, 중년 쪽으로서는 할머니인 셈이었고, 그들은 서로 삼촌 조카의 사이였다.

"동네 안이나, 문중 안에 손톱만치도 서운한 사람이 없게 살림을 해 왔다면서요? 흉년이면 종을 시켜서 굶어 죽지 않도록 양식을 나누어 주고, 동네 사람들이나 문중 사람들 가운데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또 초상이 나거나 제사를 지낼 때는 그에 알맞도록 다 마음을 쓰고, 들일을 할 때는 일꾼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갖추갖추 장만해서 내고-----"

"그런데 당신은 살림을 늘리시지는 못하셨네.  당신의 시어머니는 얼마나 맵고 짜고 똑똑하셨는지, 해마다 전답을 늘리고, 동네 사람들이나 문중 사람들이 수틀린 짓을 하면은 불러다가 코가 납작해지도록 나무래고, 수절과부로 살아오면서 남자 못지 않게 집안을 일으키셨더라네.  당신은 아마 그러한 시어머니 밑에서 살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으셨던 모양이여."

"그런데 증조모님은 여장부라는 말은 들으셨지만 덕이 없으셨던 모양이어요."

"자고로 부(富)하고 덕(德)하고는 공존하기가 어려웠어."

"좌우간에, 김 면장네가 우리 할머니 비석 세우는데 쌀 한 가마니 희사하는 걸 보고 저는 놀랬어요.  그 밖에도 근처 마을에서 들어온 자자부러한 희사들이 좀 많었습니까?"

"김 면장네어무니가 그 김 면장한테 늘 이른다고 그러지 않던가?  우리 어무니 은공 잊어버리면은 저승에 가서도 죄를 받을 것이라고."

나는 그들의 아야기를 들으면서 한 친지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전라남도 구례읍에 사는 나의 한 친지는 이때껏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큰 그늘 덕을 보면서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이후, 여순 반란사건과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찰서장을 지냈다.  구례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데다 험한 산들이 많다.  여순 반란사건에 가담한 반란군들이 모두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6.25 때는 북쪽으로 퇴각하지 못한 군인들와 부역자들이 또한 그 산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에 그 땅의 치안을 맡은 경찰서장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이고 어떤 사람을 살려야 할 것인가.  이 사람을 죽여도 안될 것 같고 저 사람을 죽여도 안될 것 같고--- 요 사람도 살려야 할 것 같고, 조 사람도 살려야 할 것 같고--- 그리하여 그런 정도의 일을 저질렀으면 죽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경찰서장의 손에서 수없이 알게 모르게 풀려 나갔다.  풀려나간 사람들 덕택에 그 경찰서장은 공비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자수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들 덕택에 치안이 훨씬 쉽고 편해졌다.  이후로 그때 틀림없이 죽었어야만 할 사람들이 살아 그 땅 이 구석 저 구석에 박혀 있게 되었다.  면서기도 되고, 농협에도 들어가고,  큰 장사를 하기도 하고, 학교 교사가 되기도 하고, 군대에 들어가 드높이 되기도 했다.  그 경찰서장은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를 않고 그 땅에서 옷을 벗고 살다가 죽어갔다. 그의 장례식에는 장바닥처럼 인파가 들끓었고, 만장이 줄을 이었다.

그때 그의 아들은 아직 젊었고, 철이 없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그 아들은 불량배들 하고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그 아들은 사고를 저지르고 유치장엘 들어가기도 하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아버지의 은공을 입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 아들을 곤경에서 구해내곤 했다.

이제 그 아들도 40대 후반으로 들어섰고, 그는 오래 전에 정신을 차리고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가족들 하고 단란하게 살면서, 그 땅의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그 지방의 유지다.

칠 팔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 속에 앉으면 나는 늘 보리수 아래 앉은 석가모니를 생각하곤 한다.  석가모니는 바로 그 나무의 그늘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류를 감싸 덮어주는 큰 그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도 누군가를 위하여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할 일이다.  한데 나는 얼마만한 그늘을 만들 수 있을까.  손바닥만한 것일까.  아직 늦지 않았다.  내가 늘어뜨릴 방석만한 것일까.  차일만한 것일까.  그늘이 더 넓고 크고 아늑하고 웅숭 깊어지도록 부지런히 공덕을 쌓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