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존재

2008-01-24     관리자

단 한번의 삶.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자명한 이치를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하면서도, 마치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습관처럼 간단하게 넘겨 버린다.  오히려 이러한 일을 늘어놓는 사람이야말로 허풍스런 사람의 실담(失談) 처럼 여겨지기가 일쑤다.

그러는 데에도 일리는 있다.  그게 어디 모처럼 겪는 일이어야지 말이다.  전에도 귀가 싫도록 들어 왔고 지금도 하루에 몇번씩은 듣는 말이다.  그리고 또 그러한 죽음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문병을 위해 어쩌다 병원에라도 들리려면 으례껏 느끼게 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겠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다.  어쩌면 죽음을 이기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만나려고 오는 것 같이도 느껴진다.  이러한 감정은 큰 병원에 갈수록 더해지기 마련인데, 실제로 병원에 딸려 있는 영안실에 가보면 그러한 사실은 입증된다.  영안실에 싸늘한 시체가 없는 날은 하루도 없을 것이다.  병원 뿐만이 아니라, 어쩌다 산책을 위해 갈가다가도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는 것이 상가집니다.  대문 앞에 매달린 조등(弔燈)은 잠시나마 우리를 섬뜩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도, 그 곳을 지나치고 나면 언제였더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왜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방관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언젠가, 스승 한 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분의 장지에 따라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장례 예식을 주도하던 분의 말씀이 이채로왔다.  그 분은 스승의 관을 무덤자리에 내려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이란 필시 교만해서 잔치집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상가집을 찾습니다.  상가집에 가면 언제나,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렇다. 사람은 분명 다른 동물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겐, 사람만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스스로 할 일과 책임을 회피한다.  어쩌면 그러한 일엔 관심조차도 없다.  물론 사람의 속성이란 이기주의적이고 교만하기 이를데 없어서 편하고 즐겁고 기분 좋은 일만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으로부터 칭찬받고 우쭐거리기를 좋아 한다.  그런 터라서, 친지나 이웃이 병이 났다든지 또는 죽었다든지 하는 자리엔 참석하기를 꺼려 한다.  그 곳에 가서 만나게 되는 것이란 기껏해야 약냄새나, 송장이 썩는 악취 뿐일 텐데, 그것들이 역겹다는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분위기 좋고 흥청대는 잔치집에는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것이다.  마시고 취하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그리도 좋은 모양이다.  아마도 잔치집에서 초청받은 사람치고 선뜻 거절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설혹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 곳엔 참석치 못했을지라도, 마음 속으로나마 내내 그 집 생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가집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그와 반대의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정말 피치 못할 사이가 아니고서는 그 곳에 참석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죽음이라는 사실과 만나는 일이 두려워서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은 지혜를 가진 영물(靈物)이기 전에, 지극히 자만스런 속물이기 때문이다.  편하고 즐겁고 기분좋은 일에만 미친 속물.  그러나  사람이라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잔치집엔 못 갈지라도 상가집엔 꼭 찾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치고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는 일은 없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도 그러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마치 살아 있는 성자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는 것을 목격한다.  그렇다고 따르는 사람 모두가 그 분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지혜로운 사람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먼저는 그 분과 같이 지혜로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을 지혜로운 척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단 한 번만의 삶.  그렇다, 모든 생물의 신(神)이라고까지 일컽어지기도 하는 사람은, 그러기에 유유자적하고 흥청거릴 수만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분명 여타의 짐승이나 생물과는 다른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삶이야말로, 단 한 순간이라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마음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