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내가 죽던 날(2)

2008-01-24     관리자

대왕께서는 "불교란 너 혼자만 믿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일러주고 다른 사람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혼자만 믿는 것도 죄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5. 저승으로 가는 길
 얼마를 갔는지 어느덧 양 길가에는 참외'수박'도마토'고추 그 밖의 과실들이 탐스럽게 열린 밭 사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마냥 심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저만이 아니였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길가 밭에 심어 있는 무우를 뽑아서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배추밭에 들어가 배추 속을 빼어 입에 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를 안내하고있는 명부사자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당신은 먹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왜 그것을 먹어요. 농사짓는데 얼마나 힘든다고. 나는 남의 곡식 손 안댑니다.」 이런 사이를 지나 어느덧 큰 대문 앞에 나섰습니다.

6. 지옥문
 
문의 높이는 지금 생각에 서울중앙청 앞에 있는 광화문의 二배 정도로 보였고 문의 장식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문지기가 서있었는데 나를 안내하고 간 사자가 뭐라고 말을 하니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뒤에도 말씀하겠습니다만 이곳 사람들과 염라사자와는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를 하였습니다. 문안으로 들어가서 저는 놀랐습니다.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몸서리치는 정경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지옥이거나 세상에서 잘못된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받는 곳임엔 틀림이 없었습니다. 산사람의 몸을 톱질을 하니 그 정경이 어떻겠습니까. 온 몸에 피가 흐르고 주위에 피를 뿌렸습니다. 제가 가까이 간 한곳에는 풍체가 당당한 큰 사나이를 뉘어놓고 그 키가 굉장히  큰 우악스럽게 생긴 사람이 큰 사나이의 옆구리를 밝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는 마치 누룩지거미 같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저사람은 웬일입니까?」
 「술장수 하던 사람인데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 물을 타서 팔았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속이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면 저런 과보가 있는가 하였습니다. 술에 물을 탔으니까 저정도이지 만약 오늘날과 같이 유해식품을 팔았을 때는 어떠한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여튼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게 생각에 남는 것은 뱀에 몸을 감긴 한 여자의 경우입니다. 얼룩얼룩한 독사가 한사람의 몸을 감고 있는데 뱀이 목을 쳐들고 그 사람의 입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자가 하는 말이 「저 사람은 생전에 거짓말 잘하고 이간질 붙여서 저꼴을 당합니다. 저 사람은 곧 뱀에게 혀를 물림니다. 저사람은 곧 죽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서 영혼이 되어가지고도 또 죽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여러 대문을 지나서 본 것인데 이 대문은 다른 대문보다 특히 높아보였습니다. 둘러싸인 성도 쇠로 된듯 했고 대문은 바로 철문이였습니다. 이곳에서도 사지가 주문인듯 한 말을 지껄이니 어디서인지 사람이 나타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이 무시무시한 지옥이었습니다. 큰 가마솥에 기름이 펄펄 끓어 있었고 형용할 수 없이 험상궃은 사람이 마치 튀김감이라도 집어넣듯이 한 여자를 덥석 집어 가마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포크같이 생긴 연장으로 건져내어 주문인듯한 말을 하니 그사람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고 기름가마 속에서 까맣게 탔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람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정경은 참혹하기가 무엇으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몇번이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사연인즉 딴 것이 아니였습니다. 남편과 자녀를 가진 사람이 생전에 부정을 저지른 과보라는 것이고 이런 고초는 열두겁 동안 계속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일은 그 광경을 설명해 주던 사람이 하는 말이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밖에 많은 고초받고 있는 형상을 차례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만 고초를 받을 뿐 사죄를 받을 사람도 없었고 그저 끝없이 고통만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경을 보고나니 저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도저히 더 계속 볼 수가 없었습니다.

7. 저승의 별당과 창고
 
그런데 다시 대문을 들어서니 이곳은 이제와는 딴판인 별세계였습니다. 큰 대궐같은 기와집이 고요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은 한식 문살에 한식 단장을 하였고 방마다 시원스러이 문이 열려 있었으며 큰 청 한군데에서는 도포를 입은 노인들이 한가롭게 바둑을 두는 것도 보였습니다. 장식과 치장이 담박하고 깨끗했으며 또한 궁궐에 비교하리만치 호화스러웠습니다.
 이 안에서는 이것 밖에도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음식 만들고 길쌈도 하고 물레를 돌려서 실을 뽑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곳간입니다.
 한 곳에 이르니 곳간이 즐비하였는데 곳간은 거기서도 쓰는 말이었고 오늘날의 창고입니다. 곳간에는 쌀이 가득한 곳, 옷과 비단이 가득한 곳, 또는 책이나 일용잡화가 가득한 곳도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자 하니 여기 곳간에 쌓인 물건들은 모두 임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상 어디어디에 살고 있는 아무개인데 그가 가난한 사람이나 불우한 사람에게 곡식이나 물건이나 돈을 도와준 것이 현세에서는 흩어져 없어진 듯 하여도 기실 그 모두가 고스란히 이곳에 와 쌓였다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준 것은 저승창고에 들어와서 그의 복으로 돌아간다 하였습니다.

8. 텅 빈 창고
 
여러 창고를 둘러보는 동안에 느낀 것이 참 많았습니다. 물건이 가득 쌓인 창고도 있었고 반이나 찬 것도 있었지마는 아주 텅빈 창고가 더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짚 한 단밖에 없는 곳간도 있었습니다. 빈 창고들은 아마도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베풀어 주거나 그밖에 복을 짓는 일이 적은 것을 말해주는듯 하였읍니다. 짚 한단 밖에 없는 곳간은 어느 마을 아무개의 곳간이라고 이름까지 들었는데 그는 부자소리를 들으면서도 남에게 아무 것도 베풀어 줄줄 모르는 아주 인색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짚 한 단도 사정이 만부득이해서 준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생전에 복을 짓지 않는 사람은 다음 생이 어떻게 벌어질까를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금생에 무엇을 하였는가 하고 스스로 되묻기도 하였습니다.

9. 대왕님과의 문답
 
드디어 열두대문을 마지막 지나고 큰 궁궐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거기 큰 대청 마루를 저는 가고 있었습니다. 대왕님을 뵈온다고 하였습니다. 저를 안내한 사자는 문밖에 있었고 저는 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의관이 엄숙하고 살결이 백옥같이 희며 위엄있는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대왕님 앞에 저는 엎드렸습니다. 합장하고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왕님의 나이는 아마도 백살정도로 보였고 그런 풍골을 선풍도골이라고 하는지 눈부셔 쳐다볼 수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절을 하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절은 그만 두어라. 나하고 이야기나 하자.」 저는 이 말씀을 들으니 대왕님이 할아버지와 같이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대왕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세간 일을 중도에 폐하고 왔구나. 먼저 생엔 나라의 장군이었다만 그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폐하고 말았었지........
 너는 불법을 믿고 수도를 한다고 하면서 어찌해서 그렇게도 불법을 모르느냐. 불도란 너 혼자만 믿는 것이 도가 아니다. 남에게 일러주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 불도니라. 불법을 믿는다고 혼자만 믿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는 것도 죄가 된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자하시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대왕님 말씀과 같았습니다. 저는 할머님에게서 불법이 최고라는 것만을 배웠고 안다고 하는 것은 천수경 외우고 관세음보살 염불하며 잘해봐야 남 해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대왕님 말씀처럼 남을 깨우쳐 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글을 못 배웠으니 경을 못 보았고 어떻게 남에게 설법할 것을 엄두나 내겠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얼결에 할아버지라고 불러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무식해서 글을 모릅니다. 경을 못배웠는데 어떻게 남을 일러줍니까?」
 대왕님은 그 말을 듣더니 바른쪽 손으로 땅을 치려는듯이 번쩍 힘주어 내리면서 「너는 여기 올때 무엇을 보았느냐? 그것을 말해 보아라.」
 저는 사자를 만나 따라 나서서 부터 길가에 흩어졌던 과실이라든가 그리고 여러 문을 거치면서 보았던 일들이 선뜻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것을 차근차근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밭에 들어가 과실을 따먹어도 제마음에 『부처님 믿으면 살 수 있는데 왜 욕심을 내랴』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온 이야기를 쭉 하자니 듣고 계시던 대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두어라. 너는 그만 돌아가서 네가 보고 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