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의 적멸보궁 삼천사

가람의 향기

2008-01-22     관리자
멀리 보이는 삼각산은 육중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격조 높은 산의 모습이다. 유방형(乳房形)의 삼각연봉과 푸른 산 빛 사이로 여인네의 배속같이 흰 살결을 연상케 하는 백토질의 질감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서면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에 땀을 식히고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물은 시리도록 맑기만 하다.
그래서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해도 왜 삼각산을 진산이라 하여 조선왕조 왕실의 혈지로 삼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천사는 삼각산의 삼천동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삼각산의 물이 어딘들 맑지 않을까마는 특히 삼천사 절 옆으로 흐르는 계류는 맑기로 유명하다. 또 군사보림 지역으로서 유흥객의 발길이 없는 곳이기에 시내에서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산사의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천사는 통일 신라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서 한대는 3천여 대중이 살았다는 대가람터로서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왜병과 맞서 싸웠던 혈전의 도량이었다. 임란으로 삼천사는 전소하였고 스님들이 돌아가시면서 삼천사의 연못에 불상을 안장하면서 ‘인연 해후시에 이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라는 원을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전화로 대가람 삼천사는 소실되었으나 암자 북쪽 돌에 새겨 모셔진 마애여래석불님만이 오랜 세월 삼천사를 지켜오고 계셨다. 현재의 삼천사 도량은 과거 암자터로서 현주지 성운 스님이 오대산에서 백이기도 중 비몽사몽간에 산천동 암벽에 우아하고 자비로운 마애불을 친견하고 원력을 세워 중창 복원한 절이다.
보물 657호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여래부처님을 아미타불로서 풍만하고 둥근 얼굴과 입가의 미소가 온화함을 느끼게 한다. 지리학상으로는 놓고 볼 때, 삼각산을 앞으로 해서 승가사의 석불님이 계시고 삼각산을 뒤로 하여 삼천사의 석불님이 계시는 것으로 보아 당시 명안 종사들의 원력하에서 조성된 것이 아닌가도 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 부처님의 기도 성취력 또한 으뜸이란다. 삼천사가 복원되기 전에도 마애여래부처님을 향한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천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삼각산에서는 유일한 적멸보궁이기도 하다.
이 사리탑에는 버마의 ‘마씨 사사나’라는 절에서 부처님 사리 3과와 나한사리 3과를 우파니 대승정으로부터 전수받아 봉안하고 있다.
부처님 사리탑은 6개월의 과정을 거쳐 1988년 10월 10일에 완성을 보았는데, 88올림픽과 통일을 향한 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천문(千聞)으로 하여금 선에 들게 하고 일국(一國)으로 하여금 인(仁)을 흥기케 할 것이니 참으로 세상의 귀한 보배 아니리오.”
이 금석문은 또한 예전의 한문체와 달리 국한문 혼용체로 이루어져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 또한 효시라 한다.
이 탑의 모형은 인도의 탑신과 기단부는 고려 때의 기단부를 모방해서 건축한 것으로 신륵사의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사리탑과 흡사하다.
주지스님의 원은 이곳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으로서 성지화하여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곳은 유흥객도 없고 여름이면 맑은 물이 계곡 가득히 흐르고 부처님의 사리탑까지 있기에 신심을 돋우는 수련회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또 부방을 현대식으로 하여 한번에 5백 명 정도는 대량 수용할 수도 있고 상을 차리는 번거로움도 덜고 있다.
일단 경내에 들어서면 티끌하나 없이 깨끗하게 단장해 놓은 모습에 놀랍다. 일주문에 들어서 곧바로 보이는 대웅전과 양옆의 요사, 게시판, 그리고 대웅전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리탑은 잘 정돈되어 흐트러짐이 없다. 사리탑 좌편으로 계곡 사이에 놓은 다리를 건너면 마애불과 산신각이 있다. 산사가 이렇듯 말끔하고 현대적으로 단장된 것은 주지스님의 뜻이다. 총무원의 사회부장까지 지낸바 있는 스님은 대중 불교 생활불교의 원을 갖고 있는 분으로 전통의 맥은 유지하되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맞게 개혁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화하는데 힘쓴다는 것이 신념이시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이 식탁문화라 보고 그것부터 실천에 옮겨 보았다고 한다.
공양간 옆으로 산의 정취와 맑은 계곡물을 볼 수 있는 것은 삼천사의 멋이 아닐 수 없다.
삼각산의 봉우리들 사이에 단아하게 자리 잡은 삼천사는 소위 말하는 관운이 잘 트이는 기도처라고도 한다. 주변의 군사보림 지역인지라 그곳을 관할하는 장성들은 대부분 장군이 되어 나간다는 얘기들도 있다.
주변 5천세대의 신도가 초하루는 금강경, 보름은 천수경법회를 보고, 열엿새는 삼각산의 산신기도를 한다. 구파발 전철역에서 매일 10시 30분에 봉고차가 대기해 신도들을 태우고 절까지 안내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절차가 아닌 경우 군사지역이기에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지참할 것도 당부한다.
삼천사는 현대화되어가는 산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