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거지가 왕자되다

-화엄사 각황전 중창에 얽힌 이야기-

2008-01-22     박명선

 1. 화주를 뽑기까지

 단상의 목소리는 한참만에 이어졌다.<스님들 의견이 그러시다니 이렇게 결정하겠습니다. 큰 법당의 중창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우리 시중 형편이 중창을 감래할 만한 재력이 없으니 화주를 발하여 널리 권선을 하기로 합니다...> 때는 이조 숙종23년(?) 신라 연기 조사가 창건한 화엄사는 한때 융성은 이제 옛 이야기로 남았고 큰 법당은 퇴락할 대로 퇴락했고, 도량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 갔던 것이다.

대중스님들의 노력으로 할만큼은 힘을 기우려 왔건만 큰 법당의 퇴락은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되었다.수년을 벼르어 왔으나 이제는 저 거창한 법당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도괴 직전 상태에 이른 것이다. 대중스님들은 항상 걱정만하고 공론하던 나머지 사태가 급박한 그 해는 산중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거론하였던 것이다. 결국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하에 드디어 중창을 결정하고 화주를 발하여 권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화주를 선발하는 순서에 들어갔다. 원래 화주란 사람들의 신심을 모아 불사를 돕게하는  중책을 맡은 책임자로써 청정한 신심과 깊은 수행력이 절대 요건인 것이다.그래야 불보살의 사업을 받들 수 있는 위덕을 입게되고,단원들의 신심을 계발하여 불사로 연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 아래에 물 한동이와 쌀 한동이가 준비 되었다.여기에 대중스님이 나와 차례로 팔을 걷어 올리고 먼저 물동이에 팔을 담그고 다음에 쌀동이에 손을 넣었다.

모두의 팔에는 하얀 쌀겨가 묻어 났다. 차례로 전대중이 이 화주 선발에 참여한 맨 나중에 화엄사 큰 절 공양주 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울새라! 공양주스님 팔은 말끔한 채 겨하나 조차도 붙지 않지 않는가- 두번을 반복하였지만 역시 홍두깨에 기름 바른 것처럼 말끔한 팔이다. 일동 대중은 환호성을 울리고 화주결정을 축하했다. 겨가 묻지 않은 말끔한 팔의 임자가 부처님의 신력을 입은 화주로 뽑히는 것이다. 이래서 공양주스님이 화주가 되었다. 단상의 계파스님은 공양주스님에게 수고 할 것을 부탁하고 노고를 위로 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이르기를, <화주스님, 이번에 스님이 권선을 나서니 불사는 기필코 성공합니다. 다만 시주는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있으니 이 말을 잊지 마시오.>한다

2. 살인자가 된 내력

 화주 스님은 부처님께 무수배를 하고 삼문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길을 밤티고개로 잡았다. 순창,임실 지방부터 돌 심산이었다. 고개를 막 내려서니 처음 만난 분이 거지 노파다. 이 노파는 절에 종종 와서 밥을 얻어 먹고 가곤 한 사람이라 공양주와는 잘 아는 처지였다. 순간 화주스님의 머리에는 번개같이 큰 스님 말씀이 생각났다.<맨 처음 만난 사람을 놓치지 말라.>그러나 맨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거지노파이니 이 노파가 어떻게 우리 큰법당 대시주가 된단 말인가. 그렇지만 처음 만난 사람 놓치면 안된다 하였으니 이를 또한 어찌할까.

화주스님은 생각했다. <그래 이 분은 거지노파가 아니다. 나의 잘못이다. 이분은 바로 대시주다.우리 큰법당 중창할 대시주다.>고 큰 스님 말씀을 흔들리지 않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거지노파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화주가 된 내력을 이야기하고 법당 대시주가 되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니 노파는 깜짝 놀라 <공양주스님 나를 조롱하지 마시요.끼니 간데가 없는 내주제에 무슨 시주입니까?어서 잘 다녀 오십시요.>한다. 그러나 화주스님은 막무가내다. 절하고, 또 절하고 두 번 세 번, 대시주가 되어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다.

이 일을 당하는 노파로서는 정말 미칠지경이었다.<금생에 어쩌면 이같이도 박복해서 불사에 참여 한 인연을 만나고도 저버려야 하는가?화주스님이 이같이도 간곡한데 이를 뿌리쳐야 하는가?>노파는 결심한 바가 있는 듯 별안간 뛰어 달아났다. 그러더니 길 아래 있던 웅덩이로 덤벙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웅덩이는 한동안 물거품과 물결로 술렁대더니 노파를 삼킨채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말이 없다. 넋을 잃고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화주 스님은 <내가 살인자다.> 생각하고는 죄책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방향없이 뛰어 달아났다.

3. 왕가에 태어난 노파

 세월이 흘렀다. 죄인이 된 화주슨ㅁ은 이 고을,저 고을로 돌아다니는 동안 5년이 흐른 어느날 , 서울 대궐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한 길목에 접어들으니 마침 왕자의 행차를 만났다. 유모가 5살난 왕자와 함께 대궐 밖 풍경을 구경하러 나왔던 것이다.행차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가는 길을 멈췄던 화주스님을 보자 왕자는 기쁜듯이 소리치는 것이다. <저 중 봐라.> 하며 손가락질 하고 히히댄다.그런데 놀란 것은 유모였다.

원래 왕자는 날 때 부터 바른 쪽 손이 펴지지 않는 조막손이었다. 그런데 중을 보고 기뻐하며 소리치고 손가락질하는 순간 그 손이 펴진 것이다. 이는 정말 단순한 경사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급히 길을 돌려 대궐에 되돌아가 어전에 아뢰었다. 이래서 화주스님은 즉시 대궐로 모셔 들어가게 되었다.화주스님은 살인죄가 들통난 줄 알고 전전긍긍 마침내 일체를 단념하고 자초지종을 이실직고 하였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아기가 태어난 것이 부처님 인연인 것을 알고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화엄사에 화주스님의 행방과 법당사정을 알아 보았다. 그랬더니 화주는 나간 지 5년인데 종무소식이고, 법당은 거의 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자는 화주스님을 잘 따르는 것이 필경 전생의 인연인것을 누구나 의심할 수 없게 하였다. 화엄사 큰법당의 중창은 나라가 시주가 되어 진행되었고, 법당도  2층이 되고 당시의 임금이신 숙종대왕 어필의 각황전의 편액이 걸리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의 각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