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양을 받을 만한가?

불교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2008-01-19     관리자

*  밭을 가는 농부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남산에 있는 「한 포기 띠 」라고 하는 바라문(브라만교의 성직자들)촌에 계셨습니다. 그 때 밭을 갈고 있던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씨를 뿌리는 데에 오백 자루의 괭이를 소에 메웠습니다.  스승께서는 오전 중에 옷을 입으시고 바릿대와 가사를 걸치고, 밭을 갈고 있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에게로 가셨습니다. 때마침 그는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기에 스승은 한 쪽에 가서 계셨습니다. 바아라드바아자는 음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스승을 보고 말했습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가십시요.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으십시오. 」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당신 고오타마(석가모니의 성)의 멍에나 호미.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 고오타마는 어째서 『나도 갈고 뿌린 다음에 먹는다 』히십니까?」

「바라문이여,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뉘우침은 괭이자루 의지는 잡아매는 줄, 생각은 내 호미날과 작대기 입니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것으로 삼고, 유화(柔和)가 내 멍에를 떼어 놓습니다. 노력은 내 황소이어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 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은 사라집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영원 생명)의 결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벗어나게(해탈)됩니다. 」 이 때 밭을 가는 바라문 바아드라바아자는 커다란 청농 바리에 우유죽을 하나 가득 담아 스승에게 올렸습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우유죽을 드십시요. 당신은 진실로 밭 가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단 이슬의 과보를 가져다 주는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

※정음사-숫타니파아타 <법정 역>-p,23~25참조

* 걸식하는 까닭은

석가모니와 바라문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한 끼의 음식을 빌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얼마나 겸허한 자세로 수고하고 계시는가를 목격하는 듯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위 도통(道通)하셨다고 하여 무애 자재, 아무 걸림없이 행하시고 사신 것이 아니라,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고 단호한 규범과 절도 속에서 생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규범과 절도는 식생활의 영역에 있어서는 더욱 강조되는듯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걸식하는 것을 모든 출가 수행자의 생활 규범으로 확립하시고, 몸소 평생을 통하여 이 걸식행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때로 화려한 식사에 초대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이것은 전도의 좋은 기회를 마련하려 하심이 그 본뜻이고, 걸식행의 고통을 덜려 함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저와 같은 부처님의 걸식행이 무엇을 위함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처럼 살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염원이기 때문입나다. 걸식행의 참 뜻은 대개 두 가지 정도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걸식행 그 자체가 법다운 수행의 덕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불법은 본질적으로 무아의 자각 위에 선포되는 것이며, 무아는 무소유를 통하여 진실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무소유, 가진 것이 없어야 무집착, 매달리는 욕심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야 눈이 뜨이고, 눈을 떠야 무아, 한량 없이 큰 내 본래의 생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무소유라는 것이 가정이나 재산을 다 버리고 떠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가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현실적인 무소유가 출가행의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시 교단에서는 출가 수행자들의 재산 소유를 가혹하리만큼 규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걸식행의 두번째 까닭은 보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인데 있습니다. 석기모니께서는 날로 팽창해 가는 출가 승단의 존재가 민중들의 생활에 어떤 고통을 가하지 않을까 무척 염려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루의 끼니 수를 제한 한다던지, 승단을 여러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던지 하는 등등의 방법을 강구하신 것입니다. 성도하신 석가모니께서 생부 슛도다아나왕(정반왕)의 간곡한 환향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의 귀향을 상당 기간 늦춘 것도 경제가 어려운 모국의 사정을 걱정하신 때문이라는 점이지적되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막연하고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아파하는 민중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그 점을 함께 지고 해결해 가려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의지라는 진실을 긍정할 때, 출가 승단의 걸식 행은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보아 참으로 법다운 수행이요 자비행인 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한 끼의 공양을 구함에 있어서도 석가모니께서는, 「공양은 무조건 복밭이 된다」는 식으로 당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땀 흘리고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의 겸허한 자세를 보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와 이웃을 위하여 멍에를 지고 흙을 파며 감로 곧 불사 안온의 농사를 짓는 자라야 마땅히 공양 받을 만하다는 영원한 불자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일러서 응공,「마땅히 공양 받으실 분」이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 오늘의 응공은 누구인가?

몇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용주사 수련 대회를 갔을 때, 대중 스님들의 바루 공양하시는 걸 보고 무한히 감탄하였습니다. 밥알 한 알까지도 버리지 않고 씻어서 마시는 바루 공양의 법식을 목격하고, 나는 3천여년 전 바루를 들고 바라문의 밭에 가 음식을 구하시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보는듯 하였습니다. 공양을 파한 다음에 울력(공동 노동)에 나가고, 그 일이 끝나면 선방으로 들어가 참선에 정진하시는 대중 스님들의 푸르런 삭발에서, 나는 이 나라 불교가 그토록 험한 핍박과 전도 속에서도 면면히 살아내려오는 참 까닭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 조계사 어느 스님께서 중병이 들어 신음하고 계십니다. 쉬지 않고 동분서주 포교행각에 쌓인 노독입니다.

 「돈 없고 사람 없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오시오.」청법하러 간 사람을 붙들고 되려 이렇게 당부하시는 저 스님의 검게 탄 얼굴 앞에서, 나는 이 나라 불교의 영원한 미래음(未來音)을 듣습니다. 근래 사찰 경제가 점차 궁핍해 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것이 신자들의 신앙심 쇠퇴 때문이라는 지적도 듣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나라 승단은 좀 더 가난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역사적으로 우리 교단은 법답지 못한 「귀족적 대우 」로 잘못 습관되어온 것 같습니다. 삼국시대 이래 국교 대접을 받으면서, 사원은 도에 넘치는 토지와 재산상의 특권을 향유하고, 대지주로서의 위세를 떨쳐 왔습니다.

 승과와 법계제도를 통하여 승권은 정권과 결탁하고, 마침내 관료 예속적 습성으로 타락되어 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찰과 교단은 너무 자주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도리어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제적 횡포를 부려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부분적인 현상이었다 할지라도 부처님께서 확립하신 걸식행의 근본 이념을 변질시켰다는 의미에서, 한국 불교를 잠식한 큰 병인의 하나로 비판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님들이 거리로 나가 걸식해야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원적으로 걸식행의 정신, 무소유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나도 갈고 뿌린 다음에 먹는다 」라는 겸허한 농부의 신념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고 뿌린다는 것은 수행하고 포교한다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지을 감로의 농사는 수행과 포교 말고 또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이 나라 3천만 불자들은 진정한 보리 농사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땀 흘리며 수행과 포교에 헌신하시는 참다운 응공, 공양 받아 마땅한 분들을 위하여 촛불을 밝히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과 포교, 이것이야말로 우리 대중들의 영원한 부의 바탕이 아닌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의 나심은 즐거움이다.       ☆법을 설하심은 즐거움이다.       ☆대중들의 화합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