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3.서방정토변상도

중국편 3 돈황의 서방정토 西方淨土 변상도 變相]圖

2008-01-19     이기선

달하 이제
서방(西方) 꺼정 가셔서
무량청불전(無量靑佛前)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존(尊)을 우러러
두 손을 모도아
「원왕생 원왕생(願往生 願往生)」
그리워할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아으 이몸 남겨두고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이루실까

삼국유사가 전하는 이 노래는 삶의 유한성(有限性)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간절한 바램을 담고 있다. 종교적인 믿음의 밑바닥 한족에는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그 같은 유한성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죽음이란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소망이 함께 놓여 있다. 이러한 믿음이 불교에서는 타력신앙(他力信仰)으로 나타나니 곧 정토(淨土)신앙이 그 하나이다.
정토신앙은 사상적(思想的)으로 볼 때 이 땅이 불국토란 차방정토설(此方淨土說)과 다른 곳에 불토(佛土)가 있다는 타방정토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잘 알려진 것은 극락정토설이라 하겠으니 염불과 칭명(稱名)을 통해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정토신앙이다.
이른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 불리는 「무량수경(無量壽經) : 2권, AD 252년, 강승개역(康僧鎧譯)」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 1권, 일명 관경(觀經) 5세기 중엽, 강량야사역(畺良耶舍譯)」과 아미타경(阿彌陀經) : 구마라습역(鳩摩羅什譯)」이 정토신앙에 관한 주요 문헌이다. 이 삼경(三經)을 소의(所衣)로 하여 동아시아 불교사상(佛敎史上)에 하나의 강력한 타력신앙(他力信仰)의 조류(潮流)가 넘쳐흘러 오랜 기간에 걸쳐 이 지역문화의 밑바닥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토경전이 어느 때 어디에서 성립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아 단정적인 말을 하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학자들의 견해를 따른다면 서력기원후 1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서역(西域) 및 북인도(北印度) 지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정토경전에 나오는 술어들이 대체로 소승불교의 용어들로서 이를 미루어 소승불교의 체계가 확립된 뒤에 정토경전이 만들어진 것이며, 정토경전이 탑파숭배(塔婆崇拜)가 아니라 불상숭배(佛像崇拜)를 강조하고 있는데 불상의 출현이 불교미술사상(佛敎美術史上)으로는 서력기원전후의 일임을 집작할 때 경전제작 시기를 미루어 볼 수 있겠다.
한편 이 경전들을 한문으로 옮긴 사람들의 출신지가 대부분 서역 및 북인도인 점에서 경전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성립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경의 내용 가운데 특히 무량수경에 의할 것 같으면, 극락에는 바람이 불어서 쾌적하며 또 세탁과 건조에도 힘이 안 든다는 대목 등은 경이 성립된 지역이 매우 더운 지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미타란 불호(佛號)는 본디 「한없는 광명」이란 뜻의 Amitabha 와 「한없는 생명」이란 Amitayus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범어(梵語)의 의역(意譯)이며, 보통 앞에 것을 무량광불, 뒤에 것을 무량수불이라고 뜻을 옮기고 있다.
예부터 빛은 누구를 막론하고 신성한 것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이 하늘보다도 높이, 노든 것의 뒷면 거기에서 더랄 나위 없이 높은 세계에서 빛나는 광명은 실로 이 사람의 내부에 있는 이 광명이다.>는 우파티샤드의 일구(一句)는 객관적인 존재인 광명과 내심의 광명이 교묘하게 함께 어울리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한없는 생명」은 단순한 장수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즉 광명은 지혜의 광염으로서 불(佛)의 공간적 무한성을 이름한 것이요. 수명은 곧 자비의 생명으로서 불의 시간적 무한성을 상징하는 것이겠다. 아미타불을 비롯한 부천미들을 묘사함에 있어 원광(圓光, sakra)의 표현은 이 같은 종교적 의미의 상징에서 비롯한 것으로 서양의 그것보다 더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

그림은 장엄한 극락세계를 그리고 있다. 돈황(敦煌)은 이미 앞서 말한 바 있듯 약 천 여년에 걸쳐 숱한 소상(塑像)과 벽화(壁畵)를 조성(造成)하고 있는데, 초기의 북위굴(北魏窟)에서는 중앙에 탑묘(塔墓)를 만들고 벽화의 주체는 불전이나 본생담을 많이 그렸다. 한편 수·당대에는 가섭 아난이나 보살 역사(力士)에게 둘러싸인 불오존상(佛五尊像), 불칠존상(佛七尊像)이 많이 나타났는데 특히 당대에는 아미타삼존의 소상의 좌우에 서방정토변상과 동방정토변상의 벽화가 그려진 화려한 정토굴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보인다.
좌우 대칭구도를 보이는 화면은 본존여래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교묘한 구도를 하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뒤로 열 지어 선 건물의 기둥과 하단(下段)을 이루는 층층의 난간의 표현은 이 같은 효과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무량수경에 따르면 <그 불국토는 금·은·유리·산호·호박·자기·마노 등의 7보(七寶)로 되어있고 너무 광대해서 끝이 없으며 그 칠보는 서로 비춰 빛나기 때문에 눈부시다. 이렇듯 청정한 장엄은 어느 세계에도 비할 수 없는 월등한 것이다>고 하며 또 <극락국토에는 일곱겹이 난간, 일골겹의 라망(羅網), 일곱겹의 가로수가 있는데 모두 사보(四寶)로써 장식되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한정된 화면(畵面)의 제약을 극복하여 끝없이 넓은 하늘궁전을 묘사키 위해 중층적(中層的) 평법(平法)과 투시도법과 같은 구성 그리고 적절한 공간을 튀어 무한대를 암시하고 있어 뛰어난 구성과 구도의 솜씨를 보이며 극적효과를 보인다. 또한 본존여래를 비롯한 수많은 크고 작은 원광(圓光)들의 리드미컬한 포치(布置)는 화면을 한층 짜임새 있게 할 뿐 아니라 무한한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렇듯 장엄한 궁전과 그 화려한 장식, 아리따운 천녀(天女), 넘치는 풍요한 노래와 음식 등의 묘사로 이루어진 극락정토의 모습은 왕조시대 부호나 귀족층의 생활상 또는 그들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 않는가 여겨진다.
그러나 극락정토의 이 같은 모습이 아무리 현세적이고 복락이 극대화된 경계(境界)인 것처럼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육안(肉眼)에 의한 것이고 깨달음에 의한 마음의 경지가 아니면 이는 한낱 한상이요 망상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의 비유법의 숨은 뜻을 새기어야 한다. 끝으로 유마힐의 가르침을 듣자.
<보적아, 중생의 무리가 보살의 불토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교화할 바 중생을 따라서 불토(佛土)를 갖고 보복(調伏)할 바 중생을 따라서 불토를 가지며 모든 중생이 마땅히 어떠한 국토에 의해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갈 것인가를 따라서 불토를 갖고 모든 중생이 마땅히 어떠한 국토에 의해 보살의 근기를 일으킬 것인가에 따라서 불토를 갖는다. 왜냐하면 깨끗한 나라를 갖는 것은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까닭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빈 땅에 집을 지으면 뜻을 따라 걸림이 없지만 만약 허공에 지으면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을 성취하기 위한 까닭에 불토를 갖기 원하는 것은 허공과 같이 중생과 관계없는 곳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