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測敎學의 인간학적 위치

특집 Ⅱ 전통사상의 현재

2008-01-18     관리자

 본인은 圓測法師의 교학과 그의 위치에 대한 소고를 이미 佛敎思想誌 第六號에 발표한 바가 있었다. 거기에서 원측법사의 출생이 신라의 왕손으로 眞平 三十四년(六一 二)에 탄생하여 十五세에 靑雲의 꿈을 품고 구도의 길을 떠나, 당시 唐나라 長安이라고 하면 국제적인 도시였는데 그곳으로 가서 그의 明敏한 자질이 천하에 뛰어나서, 그에 놀란 唐太宗이 스스로 度牒을 特贈케 했으며, 그후에 법사는 西明寺의 대덕으로 주석하여 長安의 대표적인 학승일 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과 德은 인도로부터 귀국한 玄奘과 도 서로 계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원측의 唯識學은 新舊를 겸한 全唯識的인 깊이에 있어서 현장을 앞서고 있었으므로 현장의 法嗣인 慈恩派의 질투를 사서 盜聽說까지 나오게 됐다는 것을 말했고, 다시 원측은 그의 사생활에 있어 서 德行과 道譽가 一世를 떨쳐서 신라인의 고결한 품격과 風度가 中原에 우뚝 솟은 외솔과도 같이 이방인의 설음 속에서 민족과 국가도 초월한 것이 있었으므로 당시 인도에서 고승들이 唐으로 입국 할 때에는 刺命으로 그들을 원측법사가 應接하게 하였음은 그의 학문의 깊이와 인품을 알게 하는것이며, 특히 그의 유식학은 燉煌과 長安에서 중요시 되어 曇曠등에 의하여 그의 解深密經疏가 燉煌附近에서는 특히 학자들의 중요한 典籍이 어서 吉祥天王(西藏王)의 칙령으로 法成(Chosgrup)에 의하여 譯出되어 西藏大藏經 속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그의 당시 中原에 있어서의 위치나, 그 후에 西藏唯識學의 開祖로서의 위치는 이미말한 바 있고 세인이 잘 알고 있는 터이므로 이제 여기에서는 그의 교학에 있어서 필자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간학적인 위치에서 생각해 보고자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三身有廳 四德無生」과 一性皆成說의 인간학적인 위치다.

 一, 人間의 存在論的 安立

圓測과 慈恩의 唯識學上의 견해의 차이는 세부에 들어가면 여러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자세한 것은그만두고 오직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원측의 근본사상을 이루고 있는「三身本有顯四德無生」이라는 것을 인간학적인 견지에서 생각해 보겠다.

 여래의 三身은 法身, 應身, 化身이라고 하기도 하고, 法身, 報身, 應身이라고도 하는데, 이여래가 본래 갖추고 있는 三身은 인간이 누구나 갖추고 있는 것이요, 常 · 樂 · 我 · 淨의 四德은 無生으로서 佛果의 가득한 具足相을 현시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慈恩學派는 이 사덕의 佛果가 因位에서는 本有하지만 그것이 수행에 의해서라야만 얻어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래의 三身을 인간이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하는 것은, 여레의 法身寂靜과 應身, 化身등의 大悲方便이니, 如來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이니, 圓寂한 본마음의 자리에서 大悲方便이 흘러나오는 것이요, 여래의 三身은 바로 人間存在의 본래 모습과 인간생활의 참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은 제스스로 번뇌를 지어서 번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번뇌라는 것도 본래는 없는 것이니, 알고보면 번뇌라고 할 것이 없다. 따라서 人間苦도 말이 苦라고 하는 것이지 苦라고 부르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참모습이 아닌가. 樂이라는 개념을 상대로 해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苦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모습은 苦가 이니니, 苦이면서 樂이요, 樂이면서 苦다. 이러한 것이 바로 四德의 하나인 樂이다. 樂은 苦를 상대로 한 樂이 아니고 절대적인 樂이다. 苦와 樂이 둘이 아닌 本來의 모습이 樂이다.

 그리고 인생은 무상하다고 한다. 불교의 三法印에도 諸行無常이 나오니, 인생도 무상하다는 것은 진리다. 무상하다는 것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무상이 常임을 알 것이다. 무상이라는 것은 綠起生滅이기 때문이니, 綠起法은 우주와 더불어 永久不變하는 진리이니, 綠起甚深한 妙法 속에 있는 인생은 生滅面으로 보면 무상이나,「綠起」의 근본자리에서 보면 常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무상이면서 常이요, 상이 곧 無常이니,不二空相이다. 인생의 刹那刹那의 生滅은 영원 속에 사는 참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원과 무한 그대로 있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무상을 알고 常에 살라는 가르침이다. 苦를 알고 절대적인 樂을 누리라는 가르침이다.

 또한 諸法은 無我라고 한다. 절대적인 自性이 라는 것이 없으니, 無我다. 주관과 객관이 바로 綠起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요, 그 모습속에서 또한 主客이 相應하여 功能이 生하니 모두가 綠起 그대로다. 그러므로 실체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같이 실체적인 것이 없는 無我가 곧 나의 모습이다. 이것이 我다. 無我인 我는 自我의 절대화다. 釋尊의 天上天下唯我獨尊의 我가 바로 이러한 無我인 我다.「나」라는 것, 이것은 無我인 이것이「나」다. 有無를 超越한 我다. 그러므로 無我가 곧 我다. 여기에 이르러서 인간은 自我를 확립할 수 있고 참된 자기로 서 살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번뇌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번뇌는 또한 染汚라고도 한다. 물든 것이다. 물들었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알고 끌려들어갔다는 것이니, 中論에서는 불이 붙는 모습에 비유한다. 불에 타는 섶나무도 없고 불이라는 객체도 없는데 불이 붙고 있는 모습이 인간이라고 한다. 이것은 본래 청정한 마음에 물이 든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불붙은 愛慈遠順의 모습이면서, 그것은 본래가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곧 청정이다. 染汚가 곧 청정이다. 染汚와 淸淨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常이요, 樂이요, 我요, 淨이 바로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니, 본래가 이라하거늘 그인간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 뿐이다. 四德은 無生이니, 四德이 현시 된다.

 그러므로 圓測法師의 敎學은 이와같은 인간의 참된모습을 그대로 파악하여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확립하였으니 인간학적으로 보아 그가 정립한 것은 불타의 진의를 현시한 것이며, 인간생활의 지표를 정립한 것으로서 인간존재의 종교적 확립이었다.

 二, 인간목표의 確立(平等成佛)

 인간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四德을 本具하고 인간의 生活이라는 것은 如來三身의 示顯이요, 常 · 樂 · 我 · 淨 그대로라고 하면,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은 수행을 하건 안하건 간에 성불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他力淨士가 바로 우리 인간에서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一念乃至十念의 念佛로써 그대로 정토왕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측의 이러한 유식사상의 전개가 정토 사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측은 大小乘諸經의 歸趣를 貴通하였고 佛陀正覺의 眞髓를 파악하였다고 할 것이니, 이러한 사상을 뒷받침해 주는것이 바로 解深密經의 如來成所作事品 第八은 註繹에서 원측은 이 品에서 三身滿德의 大果가 설해진다고 역설하고 잇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고심해 왔다. 佛敎敎理의 現代的 理解에 對해서다. 불교가 종교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면 三法師이나 四法印과 같은 소극적인 面만으로 는 말법중생을 모두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經에서도 열반경이 原始로 부터 전개되는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四德說乃至 一 性成佛說로써 시대에 順應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阿合에 있어서 外道와 佛說을 밝힌 것을 阿毘達磨에서 불타의 面目이 통합되었으며, 대승경전에서는 특히 維摩經같은 것은 阿含에서의 無常無我와 常, 非無我의 不二를 설하고 있어 四念處를 행하면서도 그 行相에 집착하지 않는 空不二에 있으라고 한다. 또한 中論의 觀如來品, 顚倒品, 四諦品, 涅槃品의 所論은 종래의 四諦 · 四念處觀에 對한 大乘空觀에 의한 비판이 나오고 다시 이것이 如來藏思想에 이르려면 열반의 會座에서 모두가 그대로 해탈하게 되니, 涅槃經에 서,

「無我는 生師, 我는 如來, 無常은 二乘, 常은 如來法身, 苦는 一切外道, 樂은 涅槃, 不淨은 有爲法, 淨은 諸佛菩薩所有의 正法」이라고 하고 陀羅尼自在王經에서는 空과 無常 · 苦 · 無我 · 不淨을 立體的으로 보아 心性이 平等한 面으로 보아서 心性不淨 곧 我淨을 說한다.

 또한 不壇不滅經에서는 斷滅의 邪見을 拂拭하고 第一 義甚深義를 顯示하여 如來法身의 常淨或은 常 · 樂 · 我가 설해진다.

 이상에서 보아온 바와같이 佛陀正覺의 진수를 파악한 원측은 그의 유식학에서 人間存在의 安心 立命을 종교적으로 정립하였으므로 慈恩學派와의 對立에 섰던 圓測敎學은 이와같은 人間學的 位置에서도 重大한 意義를 찾아볼 수 있으며 유식 사상이 타력정토 사상으로 전개되는 이론 체계를 또한 그의 유식관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