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봄

봄을 가꾸는 마음

2008-01-18     관리자

음력 정원 초하루가 지나고 보름달이 여위어지면 온 들녘은 봄맞이하는 풀들로 분주해졌다.

도시 생활에 찌든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읊조리며 걸었다. 오랜만에 진 지게마저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새 목처럼 생겼다하여 새매기골 이라고 불려진 골짜기에는 성급한 진달래꽃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주로 빈 밭으로 걸어갔다. 황토 흙이라 고구마수확이 가장 많이 나던 산밭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땅에 걸신들린 사람들은 문중 어른들의 눈치를 피해서 손바닥만 한 빈터만 있어도 억세게 괭이질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산밭을 빌지 않는다.

내 앞에는 항렬상 형님뻘 되는 상수형님과 마을 요령잡이인 방죽골 할아버지 그리고 아랫마을 낯익은 사람들이 걸어간다. 얼마쯤 갔을까. 아버지의 무덤이 보일쯤 이었다. 상수형님이 “힘들지야, 오랜만에 지게질 헝께?”하고 따스한 눈길을 준다.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아까부터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형님, 진숙이는 시집갔소?”

키는 작지만 대추씨앗처럼 야무지게 살아가는 상수형님은 대답대신 한숨부터 뿜어낸다. 나는 괜한 말을 했구나 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백발인 방죽골 할아버지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갔제, 여간 이쁘드라. 아조 잘 살것여. 너는 으째서 안즉까정 장가를 안 가냐?” “예 내년에 갈라고요.”

진숙이가 시집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시디신 싱아를 씹어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단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정말이지 나는 진숙이가 좋은 신랑을 만나서 살기를 얼마나 바랬는데.

나보다 세 살 어린 진숙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로 떴다. 그 후로 나는 진숙이를 보지 못했다. 간간히 자살기도를 했다는 말과 미군하고 동거중이라는 소문을 귀동냥했을 뿐이다.

허지만 어머니마저 고향을 뜨면서부터 그런 소문조차 귀동냥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무덤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무덤 주변에다 짐을 풀었다. 상수형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갑날 자식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먹은 노인들이었다. 상수형님이 손바닥에다 침을 뱉으며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달포 전 고향을 다녀온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무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날을 잡은 것이다.

삽시간에 무덤이 보따리 풀어헤쳐지듯이 파헤쳐졌다. 썩은 관 뚜껑이 보였다.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아버지의 하얀 뼈대. “날씨 한번 좋구먼이라우, 아재?”

상수형님이 방죽골 할아버지를 보며 시름조로 묻더니 이내 덧붙였다. “오살 년, 지그 부모를 보았으문 촌구석으로 올라고 안 헐 것인디.”

진숙이가 농촌으로 시집을 갔다니…. 곡예사의 첮사랑이라는 노래를 잘 부르며 가수되는 것이 꿈이었다던 진숙이가. 먼 훗날 나하고 동백꽃 꺾어 놓고 살자고 새끼손가락 걸며 소꿉놀이했던 진숙이가.

나는 아버지의 뼈를 오래오래 내려다보며 하나씩 추슬렀다. 그러면서 이제야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늑 아부지 팔자가 상 팔자제. 우리는 죽어도 묻어줄 사람이 읍을 것여, 아이고오, 올해는 또 뭣을 숭궈야 하는지, 올해는….”

방죽골 할아버지가 한숨 섞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제 봄은 백화점과 도시의 화사한 여인들의 옷차림에서부터 시작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씨앗을 뿌려야 하는가.

이렇게 땅을 가꾸는 사람들의 가슴이 얼어있는데. 봄조차 도시로 팔려 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