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2.보현행원품 강의

성전 강의실

2008-01-17     광덕 스님

 3. 서분(序分)

대문

그 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수승하신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모든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사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불가설 불가설 불찰 극미진수 겁을 지내면서 계속하여 말씀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 하느니라. 만약 이러한 공덕문을 성취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열 가지 넒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하나니 열 가지라 함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 세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요, 네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

 이시(爾時)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 칭탄여래(稱歎如來) 승공덕이(勝功德已) 고제보살(告諸菩薩) 급선재언(及善財言) 선남자(善男子) 여래공덕(如來功德) 가사(假使) 시방일체제불(十方一切諸佛) 경불가설불가설(經不可說不可說) 불찰극미진수겁(佛刹極微塵數劫) 상속연설(相續演說) 불가궁진(不可窮盡) 약욕성취(若欲成就) 차(此) 공덕문(功德門) 응수십종(應修十種) 광대행원(廣大行願) 하등(何等) 위십(爲十) 일자(一者) 예경제불(禮敬諸佛) 이자(二者) 칭찬여래(稱讚如來) 삼자(三者) 광수공양(廣修供養) 사자(四者) 참제업장(懺除業障) 오자(五者) 수희공덕(隨喜功德) 육자(六者) 청전법륜(請轉法輪) 칠자(七者) 청불주세(請佛住世) 팔자(八者) 상수불학(常隨佛學) 구자(九者) 항순중생(恒順衆生) 십자(十者) 보개회향(普皆回向) 

 [불가설불가설] 글자 뜻대로, 말로 할 수 없다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대수의 한 단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수란 극히 많은 수의 단위인데 아승지(阿僧祗)로 부터 시작하여 무량(無量), 무변(無變), 무등(無等) 불가수(不可數), 불가칭(不可稱), 불가사(不可思), 불가량(不可量), 불가설(不可說),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의 십단위의 수를 10대수라 한다. 아승지는 일, 십, 백, 천, 만 등 십진법에 의한 52수의 최상급으로서 보통 무수 또는 무앙수라고 번역된다.

 [불찰] 불국 · 불토 · 범찰(梵刹) 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계시는 국토, 또는 부처님이 교화하는 국토의 뜻이다. 정토는 원래 불찰이지만 예토도 역시 부처님의 교화와 이익을 받는 곳이므로 불찰이라 한다.

 [극진대수] 극히 큰수를 비유한 말인데 극미진에 대하여는 다음에 말하겠다.

 [겁] 겁파(劫波)라고도 쓴다. 장시(長時)  대시(大時)라 번역한다. 1겁이 얼마의 시간이냐에 대하여는 설이 일정하지 않다. 아주 기나 긴 세월, 세상이 한번 생겼다가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아는 것이 좋을듯 하다. 겁에는 개자겁(芥子劫) · 불석겁(拂石劫) · 대겁 · 중겁 · 소겁을 말할 때가 있다.

강의

 행원품이 화엄경의 결정설로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무량공덕을 성취할 방법을 말한다는 것이 이 서분이다. 경에 보이는 바와 같이 열가지 행원을 닦으면 여래의 무량공덕을 성취할 것을 말씀한다. 우리는 여기서 열가지 행원이 갖는 의의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살필 필요가 있다. 열가지 행원 하나하나를 원만성취하여야 그 다음에 비로소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성취하게 된다는 말인가. 또 한걸음 나아가 여래공덕이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미리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원래 보현보살이 말씀한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무량한 여래공덕은 이것이 부처님이 지니신 공덕세계로서 일체중생이 마땅히 이룩하여야 할 과업이며, 일체중생이 마땅히 도달하여야 할 경계임은 말할 것도 없다.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래경계는 즉시 중생의 본래 경계라는 사실이다. 일체 부처님이 한량없는 공덕을 이룩하셨다는 말씀이 곧 일체중생의 청정한 본연경계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10종행원이라 하는 것은 그 하나하나가 중생이 원해로 가지고 있는 청정성의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서 행원을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그대로 여래의 무량공덕을 나투는 것이 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여래가 지니신 걸림없는 위덕이 함께 있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행원은 하나하나 독립된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것들 열 가지는 따로 따로 성취하는 것이라고 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행원은 하나하나가 여래공덕의 실현이며 청정공덕성의 발현으로서 그대로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행원의 하나하나가가 이와 같이 본래 완성되고 청정하고 걸림 없는 위덕을 지닌 사실을 우리는 깊이 믿어야 할것이다.

 이와 같이 보아올 때 행원은 그것을 닦아서 장차 여래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행하는 순간순간 완전한 성취가 있는 것이며 현실 위에 여래청정공덕의 창조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것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원을 알아 바로 실천할 때 먼저 우리 마음에 평화가 온다. 우리 몸에 건강이 오는 것이다. 그의 마음 위에 여래의 청정공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가정에 화락이 있고 그가 있는 곳에 창조와 번영이 온다. 행원을 행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여래의 걸림 없는 위덕을 행사하며 그의 결단이 창조를 실현하는 원천이 된다. 경 말씀에는 행원을 닦는 사람은 「일체죄업이 소멸하여, 일체병고가 없어지며, 일체마군이 물러가고, 선신이 수호하며, 세상을 지내매 걸림이 없어 마치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온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보현행원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 원래로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한량 없는 공덕과 권능을 행사하는 방법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위덕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 앞에 전개되고 행원의 실천을 통해서 이 땅에 불국정토가 성취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행원품의 말씀을 살피건데 불법이 아무리 화려하고 뛰어나고 또한 그런 불법을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행원적인 행동이 없다면 그 모두는 공허한 것이 된다 하겠다. 모름지기 우리는 우리자신의 진면목을 행원을 통하여 확인하고 발휘하며 권위있는 「인간본분」을 다하고 역사를 주도할 책임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