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조상숭배의 공덕

2008-01-16     관리자

1. 조상공경은 하여야 하는가

  조상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하물며 거기에 다시 무슨 공덕을 논할 여지가 있을까. 오늘날 조상공경을 논하고 그 공덕을 말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 당연지사에 이상(異常)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하고 계시는 부모님에게 마저 효도할 이유를 논하게끔 되었다. 그러니 이미 돌아가신 조상님 앞에 공경심을 갖는다던가 공경행을 한다는 것이 문제될 만도 한 것이다. 문제삼아야 할 이유는 또 있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가지가지 불행들, 정신적 갈등, 신체상의 병, 가정의 불화, 환경을 둘러싼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들....... 이것들이 알고 보면 조상공경과 사뭇 관계가 없지 않은 것이다.

  분명 조상공경은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다. 조상공경의 공덕이 어떤 것인가를 지식많고 똑똑하고 자존심 많은 현대인에게는 분명히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 유식한 분들이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무식한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조상공경의 참뜻에 등한한 것이다.

2.조상의 사후상태

  문제는 사람의 사후가 있느냐가 문제이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인간생명이 어떤 것이며 나를 형성하고 있는 나의 둘레가 어떠한 것이냐에 귀착된다고 본다.

  조상의 사후는 어떠한 상태로 있는 것일까? 불교믿는 사람에게서 상식화 되어 있듯이 생전에 자기가 지은바에 따른 마음상태를 자기고 계속 차원을 달리하는 현실공간에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착하고 조화된 상태의 분이라면 평화와 기쁨이 그에게 차있는 것이다. 마음이 거칠고 남을 미워하고 다투는 불평스러운 마음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그의 사후생애에 따라 다닌다. 고통스러운 사후가 되든 즐겁고 평화스러운 사후가 되든 온전히 본인의 생각과 활동에 따라서 스스로 자기 마음 속에 지어 쌓은 마음공덕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조상들이 생전에 살아가는 동안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의 마음이 닦아지지 않고 그의 마음이 착하고 활기넘치며 밝아야 할 자기공덕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거기에는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가지가지 고통이 그를 따른다. 인간이 죽으면 그만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그와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육체는 사람이 아니며 죽은 것은 착각된 의식이며 사람의 생명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물질이 아니며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육체적 죽음이나 물질적인 조건변화로 인해서 죽을 수 없다. 생명은 스스로 이것이 물질을 초월하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다. 물질 밖에 볼 수 없고 육체적 감각권안에 일밖에 모르는 눈에서는 인간 생존의 지상생활이 다 인듯 하지만 실로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점은 이미 본지에서 다른 필자에 의해서 영계문제가 여러 차례 다루어진 것을 안다. 그 모두는 진실인 것이다. 믿지 않아도 현실적인 진실인 것이다. 밝지 못하고 맑지 않고 조화되지 않은 마음상태를 지닌 영혼들은 수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어 지상에서와 같이 죽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죽을 수 없고 몇 백번이고 죽어가면서도 죽지 못하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저들은 고통의 호소를 가까운 육친들에게 해온다. 고통받는 영혼의 이와같은 호소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 불안이나 신체적 병증세를 가져오는 것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수행부족으로나 가족을 위해서 또는 환경이 부득이 해서 본의 아닌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며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마음 속에서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대로 사후생활에 연결된다.

  오늘날 지상에 남겨놓은 자손이나 자손을 위한 가지가지 노력이나 자손과 사회를 위하여 이룩해 놓은 가지가지 사업과 시설의 뒷면에는 그일을 감당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긴 한숨과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3. 조상미혹과 자손의 병관계

  고통받는 조상이 자손에게 호소하는 결과는 나쁜 염파가 되어 그 자손에 불행을 가져온다 하였다. 실제 아무리 분명한 합리적 사유에 의해서 발생되고 진행된 가지가지 배후에는 나쁜 염파의 작용이 분명히 있다. 척추카리에스, 정신병, 노이로제, 각부신경통, 심장병, 눈병, 지체불구 등등 여러 병들이 조상의 망령과 관계가 많은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부인은 척추카리에스, 안면신경통에 심한 변비가 겸하여 참으로 암담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 그가 뚝뚝한 사람이어서 조상의 영을 무시하고 제고집만 부렸던 사람인데 이런 병이 들이닥쳐 죽을 문에 이르자 마음을 돌렸다. 조상님 안 모신 것을 뉘우치고 일심으로 조상께 감사하며 조상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염불독경을 쉬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이렇게 바뀌고 열심으로 염불독경하고 감사공경한 한달만에 그 완고한 병들이 기적적으로 물러난 것을 나는 안다. 의사는 병을 안다. 원인도 안다. 그러나 원인의 원인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치료해도 제대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 한 남자가 상처했다. 젊은 사람이어서 곧 재혼하였는데 그때부터 그는 중증의 노이로제 환자가 되었다. 다행히 불교 믿는 사람이어서 법사님 지도를 받아 조상공경하고 열심히 독경하고는 씻은듯이 나았다. 사람들은 영혼을 부인하기 쉽고 신경증적 병을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분명히 원인도 있고 치료법도 있는 것이다.

4.조상공경의 공덕원리

  살아서는 부모이지만 돌아가시면 변할까? 그렇지 않다. 살아서도 한 몸을 이룬 부모와 자손이 동일체성 관계에 있으며 죽은 후도 변함없다. 돌아가신 부모의 부모, 또는 그 이상의 조상과도 역시 같은 관계에 있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하는 마음상태는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은 1/3은 본인의 전생부터의 업보이고 1/3은 본인의 사고와 활동이라 하며 나머지는 조상들과의 깊은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말까지 있는 것이다.

  조상을 공경하며 우선 조상의 마음의 편안을 보태고 그 앞길을 밝혀줄 수 있으며 자손에 대한 반발이나 호소를 가호력으로 바꿀 수 있다. 특히 불교에 의한 독경, 염불, 천도법식은 영혼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손과의 관계를 조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조상의 영혼을 깨우쳐주고 그의 마음을 밝혀주며 성인의 가호력을 입게 한다. 망령의 마음이 평화해지고 밝아질 때 망령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망령이 가진 악한 염파로 인해서 발생된 그의 가족, 친지들의 불화나 병고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밝은 조상의 염파는 그 자손에게 행운과 기쁨을 주는 것이다. 둘째로 현세에서 부모와 대립했을 때 생기는 정신적 갈등이나 압력이 현실적 고통을 주는 거와 같이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대립관념이나 무시하는 생각들은 당자의 마음에 부조화를 이룬다. 마음 안에 있어서의 대립감정은 그것이 살아 있는 부모이거나 죽은 조상이건 간에 다를 바가 없다. 나무를 보존하는 방법이 뿌리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듯이 살아 있는 모든 가족의 평화도 조상과 함께 깊은 연관이 있으며 조상은 바로 가족의 뿌리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째로 혹자는 말하리라. 사람은 금생 뿐만이 아닌 내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내생은 바뀌고 윤회한다 하는데 만약 조상이 윤회를 받아 다른 곳으로 몸을 받아 놨을때 조상공경의 실리가 있느냐 할지 모른다. 원래 우리의 눈이나 생각으로는 이생과 저생이 있다. 그러나 진리의 실상에서는 언제나 현재뿐인 것이며  멀고 가까운 것도 처소의 차이도 없는 것이고 오직 영원한 일념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작고한지 오래된 조상을 공경하였더라도 공경한 그 공덕은 바로 미치는 것이며 인간에나 다른 악도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공덕이 거기에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자손의 조상공경하는 마음은 그 마음 속의 조화와 평화와 착한 마음이 넘치게 되어 더욱 밝은 행운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잘되면 제 덕이고 안되면 조상탓이라는 말이 있지만 조상탓을 조상공덕으로 바꾸는 방법은 바로 효성스런 조상공경의 행위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상공경은 필경 이땅의 평화건설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지만 이에 대하여는 지면상 생략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