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현대적 해명] 인간불행의 정체

윤회의 현대적 해명

2008-01-16     관리자

  1. 불행은 참생명에 대한 무지에서

  우리의 생명이 1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육신의 생멸에 불구하고 영원토록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 각도에서 밝혀지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육신의 생멸에 관계없이 영생하는 것이 우리의 참생명이라면 우리의 육신이라는 것은 참생명의 한 표현형식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쉬운 말로 표시할 때 육신은 참생명의 옷이다. 옷은 계절 따라 바꾸어 입을 수 있어도 그 옷을 입고 다니는 주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있을 수 없듯이 육신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육신의 주인인 참생명은 결코 생멸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주인공인 생명은 자기의 존재를 육신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육신은 우리 생명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결코 육신이 우리의 생명은 아니다. 생명은 한갖 생리적 현상이 아니며 육신 속에 갇혀 있는 답답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불행은 우리의 이 참생명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인식부족은 마침내 진실을 거꾸로 보게 되어 생명을 육신에 종속시키는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물질과 육신을 지상의 가치로 보게되는 생존경쟁의 지옥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소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이 생존경쟁은 인류를 헤어 날 수 없는 깊은 구렁에서 헤매이게 하고 있는데 이 심연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은 참 생명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는 것뿐이다. 나의 참 생명은 이 육신을 만들어 놓은 설계자요, 제작자요, 또한 조종자인 까닭에 육신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육신뿐 아니라 그 육신의 생활환경 역시 나의 생명이 이룩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 참 생명 말고 별도의 조물주가 결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인공의 위치를 마땅히 도로 찾아야 한다.

  2. 참생명의 법칙

  참생명이 육신과 환경을 조성하느데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은 다름아닌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우리는 신체가 강건하고 두뇌가 명석하고 가정과 국가의 제반조건들이 윤택하면 복 많은 사람이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박복한 사람이라 일컫지만 그 복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그 복은 우연히 그런 차별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조물주나 복을 주재하는 신이 아무런 기준없이 차별대우를 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운명론적인 인생관으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적 위치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진리는 절대 공평무사한 것인 까닭에 이유없는 차별이나 원인없는 우연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화복(禍福)은 남이 나에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법칙인 인과의 법칙이 엄연한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크게 진보되어 감에 따라 우주 일체의 모든 것들은 극미의 원자에 이르기까지도 그 본질은 중심적 「에너지」즉 대생명과 하나임이 밝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대우주」의 생명력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우주 생명력의 나타남이라는 사실을 인류는 과학을 통하여 알기 시작한 것이다. 물리학의 권위자들 사이에는 이미 물질의 존재가 부정되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흔히 듣는다. 우리의 육체가 물질이라면 그 물질인 육체는 물질의 부인(否認)과 함께 부인될 수밖에 없다. 물질육체의 실재성이 부인될 때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육체속에 가두어 놓을 수 있으며 그 육체의 운명이 생명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만약 조물주가 이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만들어진 실체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실체라고 믿었던 물질세계나 육체인간이 실제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이상 조물주는 인정될 나위가 없고 따라서 운명이란 따로 있을 수 없음이 명백해 진다.

  3. 우리 본질은 무한생명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생명은 개체로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공통성 즉 우주생명에 있어서 본래 하나이다. 우주생명에 있어 본래 하나인 자기의 본질을 착각으로 가리우고 객관 세계에 의하여 제약받고 있는 듯 오해하며 사는 것이 인류 불행의 정체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의 참생명은 우주의 대생명과 하나인 까닭에 본래로 생사(生死)라는 시간적 제약이 없는 것이고 주관 객관의 대립이 없는 것인데 그 본래 모양에 어긋나는 착각을 일으킨 것이 불행의 정체이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있어서 불행은 없다. 없는 불행을 있다고 착각했으면 그 착각에 의한 괴로움은 당연히 그 당사자가 받아야 한다. 그 착각의 정도와 종류에 따라 그  괴로움이 나타나는 것이 까닭에 지은대로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로는 짓고 받는 것 조차도 아니다. 다만 그와 같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불행과 괴로움의 멍에를 뒤집어 쓸 가련한 존재가 아니다.  
  무한대(無限大)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대생명과 하나인 끝없는 축복의 주인공이다. 우주의 대생명과 하나인 우리 생명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여 무한공덕(無限功德)을 쓰며 사는 사람이 되자. 우리가 인식하고 안하고에 관계없이 우리의 본질은 본래로 무한생명이다. 결코 객관에 의하여 제약받고 있다고 한탄하지 말자. 운명에 의하여 어둡게 되어 있따고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자. 우주의 본제인 법신불과 하나인 「나」인 까닭에 모든 울타리를 헐어버릴 때 모든 의심을 씻어 버릴 때, 주객의 집착을 놓아 버릴 때 대광명은 본래의 모습을 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