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은 어떻게 고해를 벗어났는가?

2000-12-04     관리자

[관자재 보살은 어떻게 고해를 벗어났는가?]

우리가 늘 읽는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은 일체가 공(五蘊皆空)한 것을 알고는(照見) 비로소 일체의 번뇌와 고액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관자재보살이 본 세상의 진실한 모습은 본래부터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며 부증불감이었던 것이며, 생노병사도 없었고 무명도 없었으며 무명이 다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안 관자재보살이 다시 보니 이 진리 자리에는 공포나 두려움은 일체 없으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런 지혜의 눈을 뜸으로써 모든 망상을 떠나고 진리의 세계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관자재보살이 어떻게 공의 세계를 알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관자재보살은 이 세상의 일체가 공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나 하는 것이지요.

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관자재보살은 비로소 모든 전도된 생각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를 보게 된 것이라고!

이 말은 우리에게 아주 강열하게 다가 옵니다.

관자재보살이 이 세상의 진리(空)를 보게 된 것은 책을 읽어서도 아니고 남의 말을 들어서도 아니고, 머리에 잔뜩 새로운 지식을 넣어서도 아니고 오직 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진리의 세계를 보고 체험하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숱한 가르침을 수없이 들어오고 때로는 말씀에 감명받고 때로는 의아해 하기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처럼 깨닫기는 커녕 부처님처럼 한 나절을 살아가기조차 힘들어 합니다.
들을 때는 가슴에 눈물처럼 스며오는 부처님 가르침도, 돌아서면 그만이요 시간이 지나면 까마득해져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립니다.

더욱이 남에게 전법이라도 할라치면 지난 번 들었던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조차도 가물가물합니다. 좀 박하게 말하면, 법문을 헛들은 것이겠지요!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그 때뿐, 깨달음은 먼하늘 별빛이 되고 우리는 지금도 전도망상을 떠나지 못한 채 무명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행'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문을 들을 때면 막연히 그냥 듣고 머리로만 동감하거나 이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게 들으면 안됩니다.

부처님 법문은 머리로 듣는 게 아니라 '행(行)'으로 듣고, 부처님 진리는 알음알이가 아니라 '행(行)'으로 증명해 나가야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체의 진리를 우리가 주위에서 실지로 '행해 봄'으로써, 부처님 법문은 내 안에서 체험되고 내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지 못한 탓에 진리가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고 깨
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단순히 이론만이 아니라 실지로 부처가 되는 방법을 자세히 밝혀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겉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온이 공함을 관한 관자재보살의 견처가 내 가슴에 사무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깊은 반야바라밀을 하지 않은 탓'입니다!
진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행하지를 않으니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불교가 공허하게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불자님들 중에는 부처님 법을 실재로 행으로써, 체험으로써 아시려 하기보다는 관념적, 철학적으로만 아시려 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일체가 공하다는 관자재보살의 말씀을 의아해 하기보다는 우리도 그 분처럼 반야바라밀을 깊히 행해야 합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우리가 그 분처럼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 많은 수행법의 하나라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지금 실천해 봐야 합니다.

부처님이 대자비심에서 가르쳐 주신 그 숱한 수행 방편을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실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앉으라면 앉고, 관하라면 관하고, 이렇게 믿으라 하시면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계를 우리의 알음알이로 알려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처님의 그 절절한 가르침이 내 가슴에 현실로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해가 잘 안되고 내 가슴에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행하지 않는 우리의 방일 탓입니다. 행하지도 않고 바라밀을 알고 오온이 공함을 깨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공함을 조견한 이 소식을 우리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방 일체 중생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끝없는 정진으로 회향하게 되옵기를,시방 세계 가득한 부처님 前에 발원 드려 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