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모를 뿐

다시 뵙고 싶은 큰스님/숭산 스님

2007-01-05     관리자

2004년 12월 4일 덕숭산 수덕사에서 봉행되었던 숭산 큰스님의 영결식은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국에서 모여든 1만여 추모객, 행사장 곳곳에 내걸린 영어 플래카드와 영어 만장(輓章), 그리고 스님의 외국인 출가제자들 수십 여 명과 재가제자들 수백여 명의 모습만으로도 서양에 한국 선불교를 뿌리내리신 숭산 큰스님의 거룩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스님은 젊은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학생들이 좌우익으로 나누어 서로 죽고 죽이는 사태에까지 이르자 인생에 회의를 느껴 마곡사로 입산하였다. 세상에 대한 실망, 인간적인 번민이 컸기 때문인가? 스님은 사미계를 받자마자 용맹 정진하였다. 생솔잎을 따다가 두 말 정도의 가루를 만들어 먹으며 백일기도를 한 것이다. 마침내 공부의 힘을 얻어 게송(원각산 아래 한 길은 지금 길이 아니건만/ 바랑 메고 가는 행객 옛사람이 아니로다./ 탁 탁 탁 걸음소리는 옛과 지금을 꿰었는데/ 깍 깍 깍 까마귀는 나무 위에서 날더라.)을 지었다.
그 뒤로 계속 정진하던 중 고봉 스님을 뵈었는데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몇 년 뒤 고봉 스님을 다시 뵈었을 때 1700공안에 대해 막힘없이 대답하자, 인가를 해주시며 “네 법이 세계에 퍼질 것이다.”라는 예언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처럼 세계 32개국에 130여 개의 한국선원을 열어 법을 전하신 스님은 달라이라마 등과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72년 미국에 건너가 낮에는 세탁기 수리공으로 일하며 미국인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 매일 108참회를 하고 그들에게 빵을 직접 만들어 먹이며 참선을 가르친 스님의 일화는 눈물겨울 정도다. 그 덕분에 마음의 눈을 뜬 이들이 많아졌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1977년 예일 대학에서 있었던 스님의 강연을 듣고 인생이 달라졌다. 한 교수가 ‘제 정신과 미친 것’에 대해 질문하자,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하나도 집착하지 않으면 제 정신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라는 것에 집착하기에 괴로운 것이다. 수행하면 나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도울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라는 스님의 말씀은 명문대학에서 심리학을 수년간 배운 것보다 나았고, 지난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미국인 제자 대봉 스님
“스님은 저와 제 가족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삶과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과 평정을 심어주셨습니다. 비록 대선사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스님이 남기신 가르침과 정신적 유산을 통해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며 스님의 입적을 애도합니다.”

- 미국 존 케리 상원의원

스님의 육신은 비록 가셨지만 그 가르침은 영원하다. 스님의 말씀대로 집착 없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스님을 다시 뵐 수 있는 길이리라.

오직 모를 뿐
70여생 동안 무엇을 했을까?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준다. 왜 그럴까? 오직 모를 뿐. 모를 뿐이라면, 어떻게 할까? 행하라, 오직 모를 뿐 구름 걷히니 밝은 태양이 비추인다. 오직 모를 뿐.

‘나’라는 견해를 없애면 세계평화도 이루어진다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곧 불교요, 선의 본지이다. 나를 내 마음속에 끌고 다니지 말고 환경에 집착하지 말라. 그래야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는 법, 견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움질을 하게 되고 정상화가 안 되는 것이다. 견해를 버리면, 즉 ‘나’라는 것을 없애면 대자연의 파괴도 아니하게 되고 세계평화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서양사람들이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
오늘날 서양사람들이 왜 불교를 좋아하는가? 인간을 토대로 한 인간성을 찾는 길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불교를 좋아하는 것이다. 진실한 행복, 평등,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교를 좋아한다. 아무리 하느님을 진실히 믿어 봐도 하느님이 평등과 자비와 행복을 주지 않는다. 내가 인간노릇을 하려면 내가 내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내 자신을 깨닫지 않으면 인간노릇을 못 한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이 참선을 좋아하고 불교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회의 흐름이다.

진리는 내 자체 속에 있다
절대적인 진리는 내 자체 속에 있으며 우주와 나와 동일한 X성을 발견할 때 자아를 깨달으며, 대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대로 X성이요, X성 그대로가 우주이며, 우주 그대로가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다.(중략)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추구하는 그 심리 자체가 바로 선이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 심리 자체는 곧 사량 분별이 없는 순수한 X성과 같은 것이며,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불완전한 사회를 완전한 사회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겠다.

모두가 부처님과 다름없는 성덕(性德)을 구비하고 있다
신에 의하여 구원은 받을지라도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피조된 피동적인 존재에 불과하고 신은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주재자로서 이 양자는 영원히 주종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자타(自他)가 똑같이 불(佛)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본연의 성덕(性德)을 구비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철저히 각증(覺證)함으로써 불위(佛位)에 오르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실로 여기에서 불교의 종교적 의의를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일체삼보의 진면목인 것이다.
한마음으로 통한다면 무슨 원자폭탄이 필요하겠는가
세계평화를 가져오려면 호오심(好惡心), 간택심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알아야 한다. (중략) 밖에 있는 원자폭탄을 없애려면 마땅히 안에 있는 원자폭탄을 먼저 없애야 한다. 안에 있는 것부터 없애면 곧 밖에 있는 것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한마음으로 통한다면 무슨 원자폭탄이 필요하겠는가.

찰나찰나에 할 뿐 딴 생각을 가지지 아니한다
우리 한국 선은 좌선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생활을 중요시한다. (중략) 찰나 찰나에 할 뿐 딴 생각을 가지지 아니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 산을 볼 때는 산을 볼 뿐, 소리를 들을 때는 소리와 나와 하나가 될 뿐, 운동을 할 때는 그 운동에 전념할 뿐이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 뿐이다. 일체 시 일체 행동에 있어서 잡념이 일어날 수 없는 경계가 되므로 그것을 평상심이라 하며, 또한 큰 사랑 큰 봉사의 정신 또는 대보살행이라고 한다.

보는 놈이 곧 여래다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 저 담연한 일물을 생각하는 그 놈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본다고 보아질 수 있는 물건인가? 아니다, 아니다. 보려고 애쓰면 도리어 보는 마음이 구름이 되니 그 마음까지 비워 허공과 같이하면 저절로 보이게 된다. (중략)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백치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들어도 들은 바 없고 보아도 본 바 없는 가운데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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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스님은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공립학교와 평양의 평안공립학교를 졸업하였다. 1944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47년 마곡사에서 출가 득도, 19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선사를 법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1951년 마곡사 강원 사교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 종회의원, 화계사 주지, 1960년 대한불교신문사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에 취임하였다. 1961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 부장, 1964년 동국학원 이사로 재직하였다. 1966년 일본, 1969년 홍콩, 1972년 미국, 1974년 캐나다, 1978년 폴란드, 1980년 영국, 1983년 브라질, 1985년 프랑스 등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국제선원을 개설하여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렸다. 1997년 조계종 원로의원, 화계사 조실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 11월 30일 세수 78세, 법랍 57세로 입적하였다.
한국불교를 세계화한 공로로 1985년 세계평화문화인 대회에서 세계평화상, 1996년 조계종 총무원에서 감사패,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만해포교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천강에 비친 달』, 『세계일화 1,2,3』, 『선의 나침반 1,2』, 『오직 모를 뿐』, 『부처님께 재를 털면』, 『온 세상은 한 송이 꽃』,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가는 곳마다 큰스님의 웃음』, 『숭산 스님 선학강좌』 『큰스님과의 대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