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과 화(禍)는 왜 오는가?

2000-11-30     관리자

[복(福)과 화(禍)는 왜 오는가?]

우리 주위에는 하는 것마다 잘되어 행복하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차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불교에서는 복도 화도 모두 내가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남에게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어느 날 기쁨이 내게 오는 것이며, 내가 남에게 진심(嗔心,성내는 마음)과 원망을 주었기 때문에 내게 원망이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알기 위해 멀리 전생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지나 간 우리 삶을 조금만 되돌아 보아도 이 뜻은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쉬움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잘 모시면은, 입장이 바뀌어 내가 아쉬울 때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내가 잘 나갈 때 남을 무시하고 나 잘난 줄만 알면, 내가 어려울 때 다들 나를 떠나 가십니다. 호랑이 옆에 그 어떤 동물도 오지 않는 것은 안 오는 토끼, 사슴의 잘못이 아닙니다. 호랑이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화사한 봄날, 꽃피는 저 숲 속이 저렇게 기쁨에 넘치는 것은 숲이 모든 생명을 꽃피우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예수님이 시공을 뛰어넘어 모든 분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도, 속이거나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들이 일체 중생에게 자비와 사랑을 듬뿍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을 잘 내며는 나 말고 성 잘내는 누군가가 언젠가는 꼭 내게 오십니다. 내가 남 원망을 잘하면 나보다 훨씬 더 원망 잘하시는 분이 꼭 내게 오십니다. 내가 남 비판을 자주 하면 언젠가는 나를 비판하는 분이 있으시게 됩니다.

우리는 여행이나 모처럼 사무실이나 집을 옮기어 이상한 분을 만나게 되면 하필이면 왜 저런 분이 내 옆에 왔을까, 하고 탓하기 쉬운데 그 분들은 그 분들 스스로 오시고 싶어 오신 분들이 아닙니다. 모두 '내가 부른 것'입니다. 내가 원망이 많고 내가 사람됨이 원만하지 못한 까닭에, 그 분들도 오기 싫으시지만 할수없이 제 옆에 오셔서 본인도 하기 싫은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비판하면 남들도 나에게 똑같이 비판을 되돌려 주며, 내가 남을 칭찬하면 남도 나에게 똑같은 칭찬을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미움을 주었기 때문에 미움이 내게 오는 것이며, 내가 원망을 주었기 때문에 원망이 내게 오는 것이며, 내가 괴로움을 주었기에 괴로움이 내게 오는 것이며 내가 기쁨과 칭찬을 주었기 때문에 기쁨과 칭찬이 내게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망각하고 그저 다른 분을 몹쓸 분이라고 원망하며 내 못난 것을 모릅니다. 그 결과 원한은 더 깊어지고 서로 괴로워 하고 갈등하는 고달픈 삶은 끝날 날이 없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이웃, 환경에서 벗어나는 길은 딴 도리가 없습니다. 나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분들이 오시면 오실수록, 내 고통이 크면 클수록 아득한 옛날, 어린 탓에 나도 모르게 지었던 그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나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받아 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며 받아 들여야 합니다. 때리면 맞고 비난하면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얽히고 얽힌 고달픈 인연의 사슬이 풀리기 시작하며 고뇌는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세상이 잘못'되어 내게 이 아픔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되어 고달픈 삶이 내게 온다는 이 사실을 알아, 이제는 정말로 좋은 인연, 선근(善根)을 심어 나갑시다!
아무리 내게 고통을 가져 오고 세상이 아무리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더라도, 아무리 내 사정, 내 마음 모르시는 저 분들이 무정하고 섭섭하기 짝이 없더라도, 우리는 온 세상 모든 생명을 축복하고 내게 오시는 모든 분들을 찬탄과 기쁨으로 맞이 하십시다!

비록 아직도 나의 정성이 미진하긴 하지만, 이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모든 생명을 섬기고 공양해 나갈 때, 해탈은 그저 밤하늘 별빛처럼 멀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무미륵존여래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