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문학과 불교

불광 논단

2008-01-14     관리자

  서구의 불교철학 현황

 본론을 다루기 전에 작년 여름휴가를 이용한 구라파 여행에서 서구에서의 동양사상 특히 불교철학의 현황에 관하여 견문한 바를 이 기회에 간략히 전달하고자 함을 양해하기 바란다.

 필자는 전에(1963~1971) 구라파에 머무는 동안에 서구문명 속에서의 동양사상 특히 불교가 어떻게 전달 수용되는가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던 바 이번 여행에서도 이 점을 특히 유의하여 둘러 보았다. 종교 특히 철학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큰 서점에 가보면 위의 현상은 쉽게 파악될 수 있다. 1971년대만 해도 마드리드의 큰 서점에서 동양철학 부문을 보면 극히 초라하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였다.
 마드리드 대학가의 「비솔」서점의 예를 보면 동양 종교철학 책의 수량은 서양 종교철학 부문의 그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다. 필자는 이 서점에 연 일주일을 매일 오전마다 출근하며 그 서적들을 일일히 검토하여 보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양철학의 구체적인 내용은 요가를 중심한 힌두사상 특히 선(禪)을 중심한 불교철학, 티베트 불교, 주역, 노자, 공자, 근대 인도의 라마크리시나, 비베카난다, 오늘날 구미에 널리 알려진 크리시나무르티, 그리고 임어당 등의 저서를 말한다. 동시에 이상 열거한 여러 갈래의 동양사상을 개별적으로 혹은 이를 모두 종합하여 서구인들 나름대로 정리한 책들이 많았고 이에서 파생되어 비롯된 소설 수필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가에서도 이 동양사상 관계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소식도 놀라웠다. 이와 똑같은 현상을 벨기에에서도 필자는 목격하였다. 그러니까 오늘날 서양속의 동양사상은 동양이 서양 문명에 진 빚을 갚아 돌려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편, 멕시코

 아마도 네르보(1870~1919)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갖는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제국에 동양사상이 침투된 역사적 과정을 보면 카 제국에 동양사상이 침투된 역사적 과정을 보면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보다는 더 개방적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멕시코를 제일 먼저 들 수가 있다. 네르보는 근대 라틴아메리카 모던니즘 운동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신학 공부를 하였고 신부의 수련과정을 밟은 지극히 종교적인 시인이었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초기작품 《흙진주와 신비주의》에서 부터 보이고 있다.
그는 일찍부터 동양사상 특히 인도사상과 불교철학에 깊이 탐닉하였고 그의 후기 작품에는 짙게 나타난다. 그는 구라파 여행 중 파리에서 「안나 세실리아」란 여인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고 1912년 그녀의 죽음은 그의 세계를 급속히 변화시키게 하였다. 그는 생사의 문제에 집념을 하게되고 고뇌로 부터의 해탈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이때 그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인 인생의 고뇌는 욕망으로 부터 온다는 말에서 깊은 시적 영감을 얻는다.《체념》이란 시에서 네르보는 이렇게 외친다.

「오! 싯다르타 고오타마여, 당신의 말씀이 옳았읍니다.
 우리 인간의 고뇌는 욕망에서 기인되고 에덴동산은 바라지 않는 데 있고 모든 소유욕을 근절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탐욕이 없는자는 어디를 가도 행복한 법,
 욕망이란 쓰디쓴 잔이고
 만족을 모르는 문어 다리같이
 자르면 자를 수록
 우리를 괴롭히려 다시 솟아나는 것.
 욕망은 애수와 싫증의 아버지.
 이 욕망 속에는 대양의 파도보다 더 무서운 모함이 숨어 있네.
 견유 철인같이 손으로 물 마시고
 황금에 등 돌릴 수 있고
 이세상 그 무엇보다도 신비를 존중할 줄 아는자는 바로 승리자요, 강자요, 최상의 존재이어라. 그리고 그가 얻은 영원한 평화는 이세상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네.」

 아마도 · 네르보는 생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불교적인 침착과 냉정을 되찾는데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본다.《그대의 마음을 침착히 갖어라》의 시에서,

「그대의 마음을 침착히 하며
 화평속에서 생을 살지니
 그대가 단지 영원을 삼키는
 한낮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울고 있는가?
 또 행운이 왔다해도 그게 당신에게 무엇을 준단 말인가.
 쾌락은 겨우 알았는가 하면 다시 사라지는 것.
 생이란 한낱 환영에 지나지 않으니 죽음앞에 마음을 움직이지도 말고 영원앞에서 놀랄바도 없는 일.」

 그는 《하타 요가》란 시에서 그의 자기 구원의 굳은 결의를 고백하고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는 숭고한 투쟁에서 매순간마다 성장하고 또 성장하며 최후에는 산을 움직이고 샛별에 불을 붙일 그 의지를 나는 갖고 있노라.」

 네르보의 말기 작품들은 모두가 불교적인 영감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상 검토한 네르보의 경우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에 나타난 불교의 관점에서는 고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불교를 받아들인 태도에서 그는 석가여래의 가장 초기의 가르침을 액면 그대로 공감하고 이를 시로써 표현한 것이다.

 당시 모더니즘의 특징의 하나는 엑소티즘(특히 동양적인 것)을 추구한 점이었는데 루벤 · 다리오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과는 달리 네르보는 이 엑소티즘의 범주에서 멀리 벗어나는 깊은 이해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라틴아메리카(이것은 전 구미문학에 공통된 생각이지만)의 작가들은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네르보와는 다른 차원에서 받아 들이고 있다. 즉 불교에서 선(禪) 그리고 노장사상의 도(道)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오(悟), 각(覺) 그리고 언어의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점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은 현 멕시코 시단의 원로이며 전 라틴아메리카 문단의 거성인 옥타비오 · 빠스(1914~    )이다.

 구미의 작가들 중에서 동양사상을 받아들일 경우 이 사실이 그의 생활주변과 작품에 공공연히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작가의 문학수업 과정과 작품에 대한 깊은 연구 없이는 쉽게 판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옥타비오 · 빠스는 전자에 속하는 작가며 그 대표적인 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동양 특히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현대 서구작가들 중에도 완벽하게 불교적인 인간의 완성을 추구한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주요한 작품들 중 특히 대표작들은 거의 결정적인 불교 및 힌두교 사상을 받고 있다. 그는 1952년에 1년간 인도와 일본을 방문하고 그후 인도 주재 멕시코 대사로서 인도에 7년간을 거주하면서 인도의 고전 문학 및 우파니샤드 그리고 불교철학을 깊이 통달하였고 나아가서 주역의 태극사상, 노장사상, 일본의 희곡「노」와 배구(俳句)도 연구하였고 이 모든 지식은 그의 작품에 모두 반영된다. 그는 일본 근대 배구의 시조인 파초의 스페인어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러면 옥타비오 · 빠스의 작품세계에 어떻게 동양철학 특히 불교철학이 반영 되었는가를 알기 이전에 우선 그의 동양관을 잠시 청취하기로 하자. 빠스는 문학 평론가 훌리안 · 리오스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의 문학세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및 세계문학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는바 이 대화가 1973년에 바르셀로나의 「루멘『출판사에서 《단지 두사람의 소리》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몇가지만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홀리안 · 리오스(질문) : 선생이 외교관이 되신 이후로는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선생의 작품 일부에 동양의 중요성 말입니다. 우리 문화적 파노라마 속에서 대단히 주요한 영향을 주고있지요. 비록 인도와 일본에서 직접적으로 동양의 영향을 받아들인 이름있는 서반어권 작가란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요.

 옥타비오 · 빠스 : 동양 특히 인도에서의 최근 수년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였습니다. 난 동양에 두번 갔었지요. 첫번은 1952년에 약 1년간 인도와 일본에서 보냈고 1962~1968년에는 인도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뉴델리의 「님」나무밑에서 마리아 조세와 결혼까지 하였으니까요.

 홀리안 · 리오스 : 오늘날 동양의 영향은 대단히 큽니다. 미국의 비트 운동도 아마 이 영향을 강력하게 전파시키는데 공헌을 하고 있지요

 옥타비오 · 빠스 : 전파는 되나 창조는 아니지요. 사실상 동양의 영향은ㅡ전 특히 인도를 생각합니다만 ㅡ낭만주의 작가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괴테는 칼리다사(Kalidasa)의 희곡 사쿤달라(Sakuntala)가 그를 매혹 시켰다고 수차례 걸쳐 고백하고 있지요. 그리고 후레드리히 · 슈르겔은 처음으로 인도철학과 시를 연구한 사람의 하나입니다.
낭만주의는 근대 구미문학의 근원이지요. 그리고 낭만주의는 그 초기 부터 동양의 영향을 받습니다. 동시에 비트시인들도 18세기말 부터 시작된 전통을 따른 겁니다. 그들의 경우 직접적인 전신은 월트 · 휫트먼 입니다. 휘트먼의 《인도로 통하는 길(Passage to India)》이 위대한 시는 미주와 아세아를 연결하는 위대한 언어의 교량이었지요. 헌데 비트 운동은 시의 관점에서 보다는 윤리 역사적인 면에서 더 흥미 있었습니다. 비록 많은 비트 시인들이 재능은 있었지만 아무도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지는 못했지요. 파운드, 커밍스, 엘리어트 등이 결코 단절이나 시초도 아니었던 것과 같이 비트시인들의 작품도 단절이나 시초는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보수적인 시인이었지요. 비트 시인들은 언어도 시도 바꾸지 않았고 전통을 계속한 것 뿐입니다.
예를 들어 케루악의 자연발생적 시란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자동기술법의 변형일 뿐입니다.

 빠스의 작품은 시평론, 수필, 시집으로 구별할 수 있으며 이 세 장르에 걸쳐 선불교, 노장사상, 힌두교의 영향은 작품세계에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사실은 빠스 자신은 물론 그외 모든 전문가들이 다 인정하고 있는 바다. 특히 선교불의 공(Sunyata)사상 오도(悟道)의 문제, 노자의 도사상, 힌두교와 불교에 공통적으로 있는 소위 「피안(파라미타)」의 문제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의 첫 평론서인 《활과 칠현금》에서는 피안의 문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 졌고 상기 동양사상이 집중적으로 주제가 된 작품으로는 《불도마뱀》과 《동녘 산기슭》등이 대표적이다.

 《불도마뱀》 한 구 절에서는
「말하는 것은 아무말도 않는것.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말 않는 것을 말한단 말인가?」
또 「순진과 비과학  말을 하기위해 침묵을 배운다.」

 빠스에게 피안에 도달하는 길은 필사의 도약과 성품의 변형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피안이란 나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이다.

「모든 타인이란 우리들인 것이다. 나는 나일 때 남이고 남의 행동은 더욱 나의 것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의 것이다……」

 그의 시 《태양의 돌》에는 선불교의 핵심을 말하는 시 한수가 있다.

「성인들이 어렵게 얻은 금강석은 / 모든 욕망과 시간을 흡수한다 /  정적과 율동으 결혼, 화관을 쓰고 고독을 노래하고, 수정 꽃잎은 매시간 / 세상은 그 가면을 벗어 던지고 그 가운데에는 울려 퍼지는 투명함이 있어, 이를 우리는 신이라 부르라니 이름없는 존재요 무(無)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어렵게 얻은 금강석이란 다름아닌 「사리」를 말하는 것으로 오도(悟道)에 이르는 어려운 길을 말하며 수정 꽃잎은 연꽃과 부처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름이 없는 「투명」함은 완전한 지혜며 절대와 하나가 되는 공(空)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