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14.보현행원품 강의

성전 강의실

2008-01-13     광덕 스님

청전법륜 章
 

선남자야 또한 설법하여 주시리를 청한다는 것은 진법계 허공계 시방세계 일체불찰 극미진마다 각각 불가설 불가설 불찰극미진수의 광대한 부처님세계가 있으니 이 낱낱세계에 념념중에 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의 부처님이 계셔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일체보살들로 들리워 계시거든 네가 그 모든 부처님께 몸과 말과 뜻으로 가지가지 방편을 지어 설법하여 주시기를 은근히 권청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더여도 나의 항상 일체 부처님께 바른법 설하여 주시기를 권청하여 주는 것은 다함이 없어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 등정각 : 무상정등정각 (無上正等正覺)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말하는 것으로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이란 뜻

* 법륜 : 설법을 뜻함

復次 善男子 言請轉法輪者 所 有盡法界虛空界 十方三世一切佛刹 極微塵中 一一各有 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 一切諸佛 成等正覺 一切菩薩海會圍遙 而我悉以身口意業 種種方便慇懃勸請 轉妙法輪 如是虛空界盡衆生界盡 衆生業盡 衆生煩惱盡 我常勸請一切諸佛 轉正法輪 無有窮盡 念念相續 無有間斷 身語意業 無有疲厭

① 설법과 그 위력
 

청법은 법을 설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법은 원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며 원래로 법은 설해지고 있는 것이건만 법부들은 번뇌망상으로 인하여 법의 실상을 보지 못하며 실상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보살과 성현들이 나시어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깨닫도록 베풀어 주시는 방편을 베푸신다.

이와같이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깨닫도록 베풀어 주시는 방편이 설법이다.

그러므로 설법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동작 전체가운데 설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을 섬기는 사람이 선지식의 말씀과 행동과 생활전체에서 법문을 듣는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설법은 중생의 번뇌를 깨트리고 중생의 마음에 광명과 지혜를 열어 준다. 설법은 중생의 자기결박을 풀어주어 자유와 해탈을 안기어 준다. 설법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트려 그에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시켜준다. 설법은 중생의 차별과 한계와 조건을 타파하여 무한과 자재를 안겨준다. 설법은 중생의 어둠을 세척하여 그의 생명에 끝없는 희망과 환희를 성취시킨다. 유한의 범부생활을 무한과 영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흙덩어리와 같이 혹은 돌덩어리와 같이 알던 인간을 금강석이나 내지 부처님으로 바꾸어 놓는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장애을 없애 인간의 마음에 엉켜있는 탐진치 삼독을 녹여 버려 광명이 찬란한 자성공덕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설법이 이러한 위력이 있는 것이므로 설법이 있는 곳에 중생의 생명 수가 있다 하는 것이고 미망의 밤을 밝혀주는 태양이 있다 하는 것이다. 설법에서 불국토가 열려가고 불자가 성숙해 간다. 참으로 설법은 중생에 있어 생명의 의지처요, 그의 생명을 비추어 키워주는 영원한 태양인 것이다.
 

② 인간과 역사를 바꾸는 설법
 

이러한 설법은 그 형식이 한정될 수 없고 그 내용이 또한 무한일 수밖에 없다. 중생 개개인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하고 생활방식을 가르켜 주기도 하며 그에게 새로운 힘과 능력을 열어 주기도 하고 새로운 자신과 용기를 안겨 주기도 한다. 비단 개인만이 아니다. 중생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나아가 가정과 여러 가지 단체사회 내지 국가생활에 이르기까지 그가 있어야 할 위치와 움직여 나아가야할 목표와 운영하여 가는 원리를 설파한다. 그런 까닭에 설법에는 개인의 수양 개인적 인격규법 여러사회 계층의 도덕윤리 경제 사회 문화와 국가와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설법은 그 모두를 망라한다.

대개는 설법은 한갖 개인 심성의 문제와 사회도덕만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불법에 있어서 설법은 그렇지 않다. 생명과 일체존재의 근원 자체를 밝게 열어 보인다. 그래서 인간사회의 도덕, 질서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 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불법은 원래 있는 본래의 원리를 밝혀 줌으로써 일차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원초적인 양태 즉 실상 진리를 제시해 주며 다음에 현실적 인간이나 사회적 사상(事象)을 원초적 양태에 비추어 보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현실적 개혁의 당위성(當爲性)과 그 방법을 명요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설법이 인간 사회에 제반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해결목표와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설법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③ 살아 구르는 法輪
 

설법을 전법륜(轉法輪) 즉 법륜을 굴린다고 한다.

원래 법륜이라는 말은 법의 수레바퀴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천왕이 가지고 있다는 윤보(輪寶)에서 따온 말이다. 사천왕이 윤보를 굴려서 개울을 메우고 길을 평탄하게 하며 그의 국토를 통치한다. 윤보가 대지의 장애물을 없애고 평탄하게 하듯이 법륜이 능히 중생의 마음에 번뇌바다를 없이 해주는 것이다. 삼독의 가시덤불을 없이하고 교만과 사상(四相) 의 산을 무너뜨리며 의심과 애욕의 늪과 물결을 말려 버리는 것이다. 삼독의 구름을 헤쳐버리니 자성의 태양과 정심불국(淨心佛國)이 그 앞에 개벽하는 것이다. 법륜을 굴림으로써 이와 같이 삼악도가 변하여 연화지(蓮花池)가 된다. 중생세계가 불국토로 바뀌는 것이다. 법륜은 중생의 마음땅에 중생의 가지가지 계층사회와 현실문제 위에 굴려 나아갈 때 비로소 불법의 광명은 온 법계에 두루 퍼지는 것을 믿게되는 소이가 여기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회적 현실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도 처방도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것은 종교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라고 외면 한다면 그야말로 보물을 보물을 손에 쥐고 썩히는 격이다. 불법에 진리가 아무리 풍성하더라도 설법으로 그것을 내어 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일까. 하물며 종교인들이 전통적 경전에 문구만 외울 뿐 그 진리를 오늘의 현실위에서 살려낼 안목이 없다면 그런 종교는 한갖 사람들의 귀를 위로 해주는 앵무새 이상의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④ 설법의 現代的 意義
 

이러한 설법이 없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태양을 잃어버린 암흑처럼 생명의 진리에 빛을 만나지 못하는 암흑 세계가 나타난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사는 것이 무엇이며 역사와 사회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빛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명의 암흑시대가 싹트게 되고 도덕의 암흑시대가 시작되고 역사의 암흑시대가 진행되며 사상의 암흑시대가 열려오고 생명의 방황시대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를 인간 정신의 방황시대가 하며 사상의 무정부시대라 하며 혼돈(混沌)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실로 참된 설법의 부재(不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땅히 법문은 열려야 하는 것이며 법의 수레바퀴는 쉴사이 없이 영원히 영원히 굴러야 하는 것이다. 설법만이 인간과 역사의 세계를 구제 해주는 것이다. 혹자는 물질과 경제와 과학기술이 인간과 시대를 결정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물질과 과학기술이 인간을 이끌어 갈 때 바로 인간이 물질이 되고 과학기술의 도구가 되며 경제발전의 부속물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이 되고 가정과 사회는 이익과 물질의 집합장이 되며 국가는 이욕충족의 도구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오늘날 세계적인 혼란은 바로 참된 설법이 없는데서 유일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보는 것이다.
 

⑤ 허공이 법을 설한다.
 

누가 법을 설하는가.

법은 깨달은 사람이 설한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 설하는 것이다. 법을 깨달은 분은 부처님이시고 대보살이며 또한 조사이시다. 이분들이 진리의 문을 열어 법의 광명을 이세간에 쏟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생을 진리로 인도하여 제도하는 성자는 불보살 뿐이실까. 그렇다. 불보살뿐이시다. 그러나 이 불보살은 불국토이라거나 그밖에 성스러운 곳이라고 간판붙은 그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일체처에 계시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미진마다 각각 북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의 광대한 불세계가 있고 그 낱낱 불세계에 념념중에 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의 부처님」이 계시다 하였으니 실로 일체국토 무변세계에 티끌티끌마다 아니 계신곳이 없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세계에서 일체시중에 부처님이 계시고 법을 설하고 계시는 것이다.

허공이 법을 설하는 것이다. 바다가 법을 설하는 것이다. 산하대지가 법을 설하는 것이다. 산새와 꾀꼬리와 비둘기와 기러기와 갈매기와 물새가 법을 설하는 것이다. 촌아낙네가 법을 설하고 코흘리기 동자가 법을 설하고 주정꾼이 법을 설하고 통곡하는 상제가 법을 설하며 병자가 법을 설하고 송장이 법을 설한다. 뇌송번개가 법을 설하고 복숭아꽃이 법을 설하며 솔바람소리 내지 귀뚜라미 다람쥐가 법을 설한다. 그러하거늘 어찌 선량한 우리의 형제 다정한 우리벗, 따뜻한 우리 가족, 자비하신 우리 스승님들이 어찌 법을 설하지 못하실까. 그 모두가 법문의 열쇠를 손아귀에 쥐고 자비한 법을 설하고자 우리 둘레에 와 계시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