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와 신통력(神通力)

2000-11-24     관리자

[경계(境界)와 신통력(神通力]

수행을 하게 되면 알지 못하는 여러 경계가 펼쳐지는 수가 많은데, 하지만 이것은 모두 마
경(魔境)이라 모두 허망하고 삿된 것이니 이런 경계에 너무 혹하지 말아라고 예로부터 눈
밝은 분들은 설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신통력>과 <경계>를 구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경계>는 허망하고 삿된 것일지 모르나, 진정한 <신통력>은 우리가 무시하거나 하찮은 것
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유가론에는 섭중생계의 구체적 내용으로 <신통력으로 중생을 인도하라>는 계가 나옵니다.
즉 중생을 구제함에 있어 신통력이 필요할 때는 신통력을 써야 하고, 신통력을 쓰지 못해
중생을 못 구하면 결국 계를 지키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 구제를 하신 모습을 보면 신통을 쓰는 대목이 참 많이 나옵니다. 예컨데
사촌 동생인 '난다'를 출가 시킬 때도 부처님은 신통력을 쓰셔서 난다의 여성에 대한 애착을
끊게 합니다. 난다는 출가하라는 형님인 부처님의 말씀에 마지못해 머리를 깎기는 하나 결
혼할 여성인 '순다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 합니다. 이 때 부처님은 난다
에게 신통으로 순다리보다 더 아름다운 천녀를 난다에게 보여 줌으로써 미(美)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경계는 수행 중 누구나 겪을지 모르나 신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는 피동적
이나 수행은 능동적인 것입니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신통은 신(神)들린 분들이나 일부
초능력자들이 보이는 그런 수준이 아닌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신통은 그야말로 일체를 아는
것이요 일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예를 들면 전생을 보더라도 최면이
나 초능력자는 불과 한두 생 이전 밖에 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숙명통은 그야말로 모든
생을 한 눈에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조금 능력이 생기더라도 이 정도의
경지가 아니라면 <내가 신통을 한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를 말아야 합니다.

신통은 여법한 수행의 결과입니다. 가령 음욕을 완전히 끊지 못하면 신통은 나오지 않는다
고 합니다. 또 四선천 이상의 삼매에 들 수 있어야 비로소 신통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므
로 내가 비록 수행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런 신통을 할 수 없으면 그런 경지까지 이른 것
은 아님을 솔직히 인정하고 더욱더 보리심을 발해야 합니다. 경계를 신통으로 알고 신통을
하시는 분을 비웃고 멸시한다면 수행을 잘못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 보면
신통을 못하는 것은 참으로 수행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이나 신통(?)
챦았으면 몇 십 년 수행 했네 하지만 신통 하나(?) 못 얻었겠습니까!...

우리가 신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내 복을 닦거나 내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중생들
중에는 너무나 무명이 깊어 도저히 신통을 보여 주지 않고는 발심하지 못할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신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신통을 보여 드려서라도 보리심을 발하게 해
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 은혜를 진정 갚는 길일 것입니다(예수님이 처음에 기적을 보이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불자님들! 우리 모두 끝없는 정진으로, 그 어떤 중생도 나를 만나 구제받지 못하는 중생이
없게 되기를, 시방세계 가득한 모든 불보살님께 발원 드려 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