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와 더불어 함게 가는 길(同事)

특집Ⅰ 보살은 이와같이 교화한다

2008-01-12     관리자

 1, 아난다와 백정의 딸

 아난다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면서, 부처님 임종때까지 줄곧 시봉해 온, 말하자면 수행(隨行)비서이다. 하루는 성(城)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길 옆의 우물을 찾아갔다. 마침 그 우물에는 한 아름다운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아난다가 물을 청하였다. 그러나 처녀는 신분이 미천한 백정의 딸이었기 때문에, 고귀한 사문(스님)에게 누를 끼칠까봐 사양하였다. 아난다는 말하였다.

『그 무슨 말씀이오. 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사문입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요.』이에 처녀는 크게 기뻐하며 물을 떠주었다.

 그러나 이게 탈이었다. 그 백정의 딸은 아난다를 잊을 수가 없었다. 홀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어머니에게 고백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아난다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어머니는 소문난 무당으로 주술(呪術)이 뛰어났다. 몇 번 만류하다가 딸이 병들어 눕자, 주문을 외고 굿을 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난다도 백정의 딸이 자꾸만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는 발길이 그 처녀의 집으로 향하곤 하였다. 인간적인 애정과 승려의 본분 사이에 방황하던 아난다는 마침내 부처님께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사연을 고하였다.

 부처님은 곧 백정의 집으로 찾아 가셨다. 계급차가 너무도 혹심했던  당시의 인도 사정으로 이런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세존(世尊)이시고 또한 왕자가 아니신가. 제자들이 굳이 만류하였지만 부처님은 끝내 뿌리치고 여인의 집으로 나아가 말씀하셨다.

『여인아,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
『부처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난다를 남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이소원을 이루게 해주옵소서』
『좋다. 그대의 소원을 이루게 할터이니, 나와 함께 가자. 사문과 혼인하는데는 그만한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냐』
 백정의 딸은 뛸듯이 기뻐하며 부처님을 따라 정사로 갔다. 어디까지나 시집갈 준비를 하며 날을 기다리던 처녀는 드디어 맘의 눈을 크게 뜨고 새길을 찾았다. 여인의 미칠 것같은 애정은 보다 깨끗한 구도의 열정으로 승화하여, 마침내 부처님교단에 입문하였다. 왕과 시민들은 부처님이 천한 무리를 받아 들인다 하여, 공양 거부로써 항의하였지만, 부처님은 조용한 침묵으로 끝내 움직이지 않으셨다.

 2, 크나큰 사랑 때문에

 원효 스님은 요석공주로 인하여 계율을 범하고, 스스로 소성(小姓)거사라 칭하며, 마을과 시장 거리를 누비며 살았다. 때로는 땅꾼들과 어울려 뱀을 잡고 때로는 주점에서 시정 잡배와 더불어 술마시고 노래하였다. 당시의 귀족 승단에서는 파계승이라 비난하며 축출하였다.

 만해 스님이 속가 살림을 차리고,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에서 승려의 결혼도 무방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여, 말할 수 없는 타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큰 인물 돌아가기가 무섭게 비 세우고 탑 세우는 일이 흥행하는 세상에, 스님의 무덤조차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만큼 구박이 심하다.

 그러나 한국불교사에서 원효로부터 만해에 이르는 저 파게승의 행열이 없었던들, 이 나라 불교가 무엇으로써 생명을 유지하였을까, 생각하면 두렵기 그지없다. 그들이 비록 파계하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분명 형제와 더불어 함께 살았고, 민중을 향한 크나큰 애정때문에 그들의 심혼을 불태웠다. 부처님이 체제와 여론에 굴복하여 백정의 집에 나아가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그를 어찌 부처라 일컫겠는가. 원효 스님이 서라벌 거리에서 춤추고 두웅박치며 노래하지 아니했더라면, 삼국의 백성이 어찌 한 겨레로 어울였겠는가. 만해 스님이 청정비구를 고집하여 산골을 박차고 나오지 아니했던들 ,한국불교가 민족해방사에 무엇으로써 참여하였겠는가.

 해마다 삼월이 오면, 한 용운 한 이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3, 일상적인 시민의 윤리

 동사(同事)가 무엇인가?「함께 함」이 아닌가. 형제로 더불어 함게 함으로써, 나와 이웃을 구제하려는 지극한 보살의 사랑이 아닌가. 동시에 이것은 이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업중생(同業衆生)으로써의 나와 그대의 일상적(日常的)인 시민 윤리(市民倫理)이어야 하는 것이다.

 저 거리의 평범한 중생들이 진실로 세상의 주(主)인 줄 알아 교만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주머니에 돈을 넣어두고서도 배달소년에게 몇 번씩이나『내일 오라』고 아니 하는 것이며, 큰 재벌이 나타나서 회관도 지어주고 방송국도 세워주기를 바라지 아니하는 것이며, 불교중홍을 위하여 국왕 대신을 기다리지 아니하는 것이며,『내가 깨닫고 성불한 다음에 중생구제 하겠다』고 스스로 속이지 아니하는 것이며, 더러운 꾸중물이 옷에 옮길가봐 시궁창을 피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민중이 고통하고 사회가 허덕이는데 거짓 삼매에 취하여 역사의 책무를 포기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우리가 갈구하는 바 해방(解脫)과 성불(成佛)과 니르바나가 어디 있는가, 나와 그대가 겸허한 동참 자(同參者)의 자리로 돌아가, 우리 사이에 일치하는 영역이 무엇인가를 찾아 서로 존중하며, 목소리를 반음(半音)쯤 낮추어  서로 경청하며, 가난한 주머니 일지언정 한 푼 두푼 모아 조그마한 조약돌 하나라도 소중히 쌓아가는, 이렇게 함게 하려고 열심히 땀 흘리는 지극히 가까운 일상(日常)속에, 진정 우리 모두의 부처님은 성취되어 가는 것 아닌가, 홀로 생각에 잠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