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염불 기도로 아들의 목숨을 건진 이야기

2008-01-12     이보현행

 [1] 감사한 오늘이 있기까지

   저의 나이 아직 67세로,  나이 자랑할 정도는 못됨니다. 그래도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저의 생애는 부처님을 믿기 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읍니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나 결혼하여 살림 살면서 그런대로 크게 궁색한 것 없이 지날때는 그때가 철없이 지내온 세월 같습니다.

   집안에 세 식구를  맞아들이고 영감님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병들고 재산이 손실되고 이런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부처님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의 새로운 생각이 시작된 것 같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렇게 염불하고 감사하고 지내고 있으면 지난 과거가 꿈과 같습니다.  가시덤불을 지내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저를  이끌어주시고 저를 보호해 주시는 부처님이 항상 계셨다고 생각이 되면서 감사한 생각뿐입니다.

   아침 4시에는 꼭 염불을 시작하고 기도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마는 저의 아들을 위하고 저의 여생에 보살도에 그르침이 없을 거와 불법이 세상에 크게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를 지내고 그런대로 몸 성하게 지내게 되고 또,   염불 속에서 기쁘게 살게 되는 것이 한 없이 감사합니다.

 [2]  아들의  백혈병

   제가 부처님을 믿게 된 후 많은 은혜를 입었읍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어려웠던 일,  그리고 부처님 만난 일을 말씀드리겠읍니다. 

  저의 나이 50때입니다. 저의 아들이 병이 났읍니다. 힘이 없어지고 얼굴은 하애졌읍니다.  처음에는 밥도 먹었는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기동이 어럽게 되어 갔읍니다. 본디 저는 소생이라고는 이 아들 하나 뿐입니다. 그때는 이미 자부를 봤고 손자가 두살 때입니다. 지금부터 17년 전 일이지요.   아직 약간의  재산이 있던 때였읍니다. 서울대학 병원,  세브란스 병원,  한의원 등,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진찰하고 치료를 받았읍니다. 그리고 최후로 중앙의료원에 입원했읍니다.  그러나 아무 효과를 못봤읍니다.  오직 수혈만을 계속하며 연명해 나가다가 드디어 중앙의료원에서도 퇴원하라고 했읍니다. 집에 가서 먹고싶은 것 먹이면서 기다리라는 뜻이겠지요.

   어미되는 제 속이 어떠하겠읍니까?  혹시나 해서 여러가지 약도 해봤고 심지어 점치고 묻구리 굿,  예방,  온갖 짓을 다 해봤읍니다.  아무 소용 없었읍니다.   미킨듯이 돌아다니며 내 아들 살릴길 없느냐고 묻고 다녔읍니다.  그 무렵 어떤 분이 절에 절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불법이라고는 듣지도 못했던 터이기에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쌀과 향초를 준비해서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 갔읍니다.  주지스님께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한참만에 하시는 말씀이 [아들 살릴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기가 어려울거요.] 합니다.  저는 아들만 산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 했읍니다. 주지스님이 일러주시는 아들 구하는 방법은 기도법이었읍니다.

   하루에 세시간,  독경과 염불하되,  계행 갖고,  착한 마음 먹고,  고기 먹지 않고 이렇게 하기를 백일간 하라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한달에 세번 부처님꼐 올리는 정성으로 헌공하는데 이 모두는 집에서 하면 된다고 했읍니다.  저는 그때 이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아들 살릴 수만 있으면 다 하겠다는 생각이었읍니다. 그래서 불자지송 책을 한 권 받아 가지고 와서 즉시 시작했읍니다.

   그때는 아들을 퇴원시킨 직후였읍니다. 아들의  병은 백혈병 이었읍니다.  퇴원때 피 두병을 수혈하고 나왔는데 이것은 아무리 오래 지탱해도 15일을 넘지 못하는 양이었읍니다.  저는 있는 지성을 다 했읍니다.  열심히 독경하고 염불하고 하루를 빼지 않고 지내갔읍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쓰러져야 할 때가 지나도 그만했읍니다.  오히려 차차 생기가 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아들도 나를 따라서 염불했읍니다. 그러는 중 한달 두달 석달이 지나갔읍니다.   아들은 완전히 힘을 얻었읍니다. 제가 한번은 관악산 연주대에 예배드리고 싶어하니 아들이 대신 염불기도하겠으니 다녀오라고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독경하고 저는 연주대 약사부처님과 나한님께 예배하고 돌아왔읍니다.  그러는 중 백일이 다 찼읍니다. 아들은 완전이 되었읍니다.  하루는 잠시 외출하겠다던 아들이 저녁에야 돌아왔읍니다. 알고보니 입원해 있던 중아의료원에 다녀온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은 죽었어야 할 사람이 돌아왔으니 놀랬을 것입니다.  크게 기뻐하시고 [ 이상하다.  이상하다.]며 여러가지 진찰과 실험을 했읍니다. 아들은 연3일안 병원에 나갔읍니다. 결국 의사선생님 진단이 병은  완쾌했고 [피를 일시에 1,000그람을 빼도 좋도록 됐다.] 하시며 웃더라는 것입니다.

[3] 부처님 은혜를 보답하고자

   저의 소원은 결국 성취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모자를 불쌍히 보시고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때의 저의 기쁨을 어찌 말하겠읍니까.   하루 하루 생기가 도는 아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부처님께 대한 고마움과 감격이 솟아 올라 왔읍니다.  염불하면서도 목이메여 염불을 중단하기를 여러 번이었고 나도 모르게 한없이 눈물이 흘렀읍니다. 생각해 보면 병이 나기 전 집안의 갈등과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이런 모든 것이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또 이런 병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나는 것이었읍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저는 부처님 은혜로 아들을 건졌읍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 은혜를 입고 불교를 믿는 것입니다.  이러는 동안 많는 상서를 봤읍니다마는 이를 다 말할 수는 없읍니다.  꿈에 경찰이 와서 집안에 있는 나쁜사람이라는 것을 잡아가기도 하고 꿈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일어서니 옆에 있던 돌벽이 열리면 한 노인이 [ 네소원 성취했다]고 위로해 주기도 했읍니다.  한번은 꿈에 버스가 집에 오더니 사람을 시켜 집안의 부정지물을 모두 실어가고 또한 도끼를 든 흉칙한 사나이를 잡아가기도 했읍니다.

   저와 완쾌한 아들은 부처님께 감사해서 정능 경국사에 가서 3일3야를 잠 안자고 기도  드렸읍니다.  그리고 지금껏 저의 성의껏은 부처님 일 받들려고 힘쓰고 있답니다.  그동안 아침 염불을 잊지 않고 있읍니다.

   그리고 도봉산 원각사,  신설동 죽림사,  양주 보현사 등 사찰 창건에 힘을 바치기도 하였고 법화경과 지송요경을 출판하였으며 이몸이 다하더라도 부처님 받들고 살아갈 결심을 하면서 지내고 있읍니다.

   저의 아들의 이름은 이 신구이고 그동안 조흥은행에 봉직하다가 지금은 서울 명동에서 인쇄소를 차리고 있읍니다.  누구 부럽지 않게 건강하고 마음 착하고 부처님 공경 잘 합니다. 부처님 은혜지요.

   이 모든 것이 부처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이제껏 저에게 커다란 영광을 주시고 저에게 광명을 주시고 이에 거듭 저를 인도하고 보호해 주시는 불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50때의 풍파와 고난에서 부처님을 만나 저는  살아난 것입니다.  그전에야 정말 철없이 지낸 것이지요.  그리고 저를 가르쳐 주시고 지도해 주신 스님들과 불자 형제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