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승 불 교

불교의 근본사상

2008-01-12     관리자

 [1 ]대승불교의 출현

 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역사적 사실은 대승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운동의 전개다.

 서력기원을 전후하는 시기까지 불교교단은 무려 20을 헤아릴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파(部派)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부파 전성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파의 분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대략 백년쯤 되었을 때 부터 비롯되었다. 즉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의 두 파로 분열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양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각 분열하여 서력기원을 전후하는 시기까지 18 또는 20 정도의 부파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불교의 분열은 교리 해석의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지도급 장노(長老)들의 반목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이들 각 부파에서는 각각 자파(自派)의 권위를 높히고 자기들이 정통파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성전(聖典)을 편찬하기 시작했고 아비다르마(阿毘達磨)라고 불리는 불교교리 주석학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부파불교는 원시불교시대에 비해 오히려 번쇄적인 경향을 띄기 시작했고, 출가자중심, 율범중심의 불교로 변해갔다. 따라서 대중들은 저속한 미신적 신앙에 몰두하게 되어 점차 불교는 그 순수성을 잃어 가는 형상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반기를 든 불교혁신 운동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대승불교운동이다.

 불교혁신운동을 일으킨 대승불교의 이론가들은 자기들 자신의 불교를 대승불교, 즉 큰 수레(大乘)라고 표현하면서, 부파불교를 작은 수레(小乘)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에서 대중의 문제로 그 비중을 전환했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부파불교에 있어서 결코 남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관심의 비중은 명백히 개인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소승은 자기 본위의 이익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우선 스스로 이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빠져 나와 죄악적 행위를 끊어버리고자 세상을 버리고 한적한 숲속을 찾아 드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대승의 사상가들이 즐겨 사용한 말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상구보리, 즉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하와중생, 즉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요구 중, 상구보리를 중시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사상가들은 개인보다도 대중에게 더 비중을 두어야함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다시말해 상구보리보다도 하화중생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이상, 새로운 방법, 새로 운 사상을 낳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 ] 대승의 이상    

 개인보다도 대중의 구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대승불교에서는 새롭고도 이상적인 구도자상을 등장시켰다. 보디삿트바가 그것이다. 이 보디삿트바를 중국에서는 음사하여 보리살타라고 하고 또한 약하여 보살이라고 했다.

 보살은 원래 성도(成道)이전의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대승불교인들은 이 말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여 그것을 새로운 불교인의 이상상으로서 표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보살의 이상을 말함에 있어서 앞에서 말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두 개념을 내세웠다.

 위로 보리를 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그들은 보살의 자리행이라했다. 또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중생, 즉 살아 있는모든 생명을 구제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보살의 이타행(利他行)이다. 보살은 모두 이 두가지 행을 추구한다. 그러나 비중은 오히려 후자에 둔다.비록 잠시동안 자기의 깨달음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중생 구제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 그것이 보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구제에 비중을 두었던 대승 불교인들의 주장이 있었다.

 이와같이 대승 불교인들은 그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써 보살을 내세움과 아울러 새로운 행동강령을 제시하고 그 실천을 권고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소승불교가 계, 정, 혜 삼학(三學)만을 반복해서 가르치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보살의 수행도로써 여섯가지의 완덕(完德)의 길 즉 육바라밀(六波羅蜜)의 구족을 소리높이 외치고 나섰던 것이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많은 대중을 위한 善의 실천을 권고하는 소리였으며 자기 희생의 용기를 강조하는 외침이었다. 육바라밀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자비행을 뜻한다. 나보다는 남을 위한 보시행이야말로 이타행의 근본이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3] 대승경전의 성립      

 대승불교가 사상적으로 성숙해가고 있던 서력기원전 1세기로 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시기에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나타났다. 초기의 반야경, 유마경, 아미타경, 십지론과 A.D 3세기경에 나타난 중론(中論) , 4, 5세기의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에 의한 유식학 계통의 많은 저서 등이 그것이다.

 유부(有部)의 법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 법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空이라고 규정 한 것이 반야 공 사상이다. 다시말해 모든 사물이 다 실재(實在)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이론가들의 오류를 깨뜨리기 위해 반야사상은 등장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반야사상을 담고 이뤄진 것으로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6백권이 있고, 그 정수만을 간추린 금강경 , 가장 핵심적인 정수만을 짧게 간추린 반야심경등이 있다.

 대중의 구제를 강조하고 보살의 이상을 설하는 대표적인 경전인 법화경(法華經) 또한 대승경전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법계(法界) 즉 전 세계의 양상을 묘사하여, 뛰어난 세계관의 문학을 전개한 화엄경(華嚴經), 중생제도의 크나큰 서원을 그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는 아미타경(阿彌陀經)등의 정토삼부경 등이 모두 한결같이 새로운 신앙운동에 발맞추어 대승불교사상을 보다 깊고 넓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승경전을 기반으로하여 나아가아르쥬나(龍樹)의 사상적 활동은 부파불교의 오류를 결정적으로 논박하는 것이었고 또한 대승사상을 절대성하는 것이었다. 그의 저서는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21부 164권이나 되지만 그 중에서도 중론(中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은 유명하다. 용수 이후 승만경, 해심밀경 능가경 등이 나타났고 특히 해심밀경(解深蜜經)의 유식설(唯識說)은 270년으로 부터 480년 사이에 미륵(彌勒) 무착(無着), 세친(世親)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리하여 7세기경의 대승불교는 용수의 계통에 속하는 중관학파(中觀學派)와 무착과 세친의 흐름을 따르는 유식학파(唯識學派)의 두 가지 큰 조류를 형성하였다. 

 [ 4] 대승불교의 의의        

 부파불교의 전성시대였던 기원전후부터 일기 시작한 대승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운동은 부파소승불교의 오류를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이 대중의 구제였고, 그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인 인간상이 보살이었다. 대승 불교 사상가들은 새로운 목표를 내걸고 새로운 이상을 표방하며,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새로운 주장을 새로운 문학 형식에 담아 새로운 경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은 모두가 인간 본래의 제모습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종교적 열정에 의한 것이었다.

 타락된 인간, 고통스런 인생, 죄악으로 빚어진 인생을 의미하는 이쪽 언덕에서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해 가진 인간, 안락한 세상, 평화롭고 슬기로운 인생을 의미하는 저 쪽 언덕으로 가게 해 주는 수단은 수레다. 대승은 나혼자만을 실어갈 작은 수레가 아니라 모든 대중들을 함께 저 언덕으로 운반할수 있는 희망이 큰 수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