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현대인과 조상숭배

2008-01-11     관리자

1.현대의 유물주의적 성격

  현대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근세와 비하여 특징지워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물질주의적 경향을 지닌 세계관도 그 중에 큰 몫을 차지하리라. 우선 눈앞에 나타난 것만을 아는 것이다. 눈앞에 드러난 것 인식권내에 들어와 있는 것만을 존재로 보고 거기에 합리적인 이론과 가치를 세워간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우선 무시해 버린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제까지의 자기가 믿고 있던 지식이라는 무장으로 꽁꽁 묶었던 주견이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이론으로 연신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역시 미지의 문제에 대하여는 우선 부정해 놓고 본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이해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상이 존재한다.

  한식날이나 추석날 서울 청량리밖에 있는 망우리 묘역을 보라, 이 날이면 새벽부터 이 지역 묘역으로 시민들이 흘러 들어간다. 온갖 차량이 길을 메우고 큰 소동이다. 물론 망우리 주변 산은 사람들로 덮혔고......

  근래 묘지는 사뭇 아담해지고 깨끗해진 것을 넘어서 일부에 호화 묘지를 문제삼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미 가신 분들을 생각하고 그분들의 뼈가 묻힌 묘역을 찾아서 온갖 일들을 뒤로 미루고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공경을 드리는가 하면 가슴속에 묻혔던 생각들을 털어놓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푸념도 하고, 때로는 넋두리도 한다.

  여기 묘지에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현상적인 감각적인 현대인의 눈에 무엇이 보였다는 것일까?  거기에 작고하신 옛 어른들이 머물러 있고 대화하며 이 헌공하는 정성을 받는다는 것일까?

  대개들 죽으면 그만이라 한다. 그런데도 그만은 아닌 듯하다.

  현대인에게는 눈 앞에 열려있는 현실이 있고 그 밖에 어쩌면 또 하나의 차원을 달리하는 현실이 있는가 보다. 거기에 조상이 있고 고인들이 있고 시간을 넘어서 대화하고 마음을 교류하고 서로 이바지하고 돕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상 싶다.

  오늘날의 이러한 조상숭배 행사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2.조상숭배와 사회풍습

  우리주변에는 조상숭배와 관견된 행사가 퍽 많다. 삼일장, 오일장, 칠일장으로 치루는 장례식은 말할것도 없고 해마다 기일에 지내는 기제, 설날과 한식 추석날 등에 지내는 다례 그밖에  종교의식에 의한 천도법식도 여러가지이다.

  설날이나 추석날에는 직장을 따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귀향을 서둘러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소로 모여드는 것은 언제부터인지의 관례가 됐다. 명절날 부모님 앞에 형제가 항께 모인다는 것을 유방시절이 긴 한국인의 귀소의식이라 보는 것이지만 단순한 귀소의식의 발로만은 아닌 것 같다. 다들 집에 돌아가 모여서 무엇을 하는가를 생각할 때 또다른 것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제사다. 부모님 앞에 객지의 형제들이 모여 들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 고조,  조상앞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몇년전에 서울에서 있었던 것처럼 짓밟혀 줄을 위험을 무릎쓰고 고향에 돌아가서는 조상앞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또 묘소에 이르러 온 자손들이 모여서 정성들여 꾸벅꾸벅 절하며 그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시간을 떠나 조상과 함께 살고 있고 함께 대화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어 보인다. 수십년간을 타지에 가 있다가 돌아와 조상 묘소앞에 불효를 통곡하는 제일동포의 성묘단들의 모습은 우리들 한국사람의 의식깊은 뿌리에는 조상들과 함께 살아있는 것을 역력히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제사 조상숭배는 어떠한 심정에서 행하고 있는 것일까? 제사지내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가지각색이다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천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손된 정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 또는 자손된 도리에서 지낸다는 사람, 여기에는 도리라는 의무감도 천륜에서 시키는 도리도 있고 자식으로써 도리를 지켜야 할 남의 이목을 보는 도리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집안의 가례를 따라서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엔 한결같이 작고하신 부모에 대한 흠앙지정과 종교적인 의식일 때 고인의 명복을 비는 심정이 그 대개이다. 물론 조상의 은혜에 대한 감사 추모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잘되면 제덕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나 잘된것을 조상덕 잘못된 것을 자기탓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 사후의 혼을 두려워하는 심정이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하면 나쁜 반응이 있듯이 공경하고 받아들어야할 영혼들을 잘 모시지 않거나 가까운 집안의 영혼들을 위해주지 않으면 재앙이 따른다는 두려움에서 제사를 섬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영혼은 사람과 같은 생시의 감정과 논리를 가지고 있고 자칫하면 재앙을 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그 영혼을 달래고 구슬리는 방법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상 보는 바와 같이 현대인의 조상숭배 심리의 바탕에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는 것이다.

  얼마전 부산에서 부친의 유골을 모신 묘소에 묘비를 세우고 왔다는 분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부모의 사후를 모른다고 한다. 유골은 틀림없는 부모의 일부분인 까닭에 존경하고 숭배하며 가족과 자기의 후손으로 하여금 묘소앞에 모여서 가훈을 지키고 자손들을 교육시키는 한 장소로 삼는다고 하였다. 조상을 추모하고 같은 후손들이 그 밑에 단결하며 우애를 지키고 가명 빛내기를 다짐하는 장소로 묘소를 찾고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것은 현대인의 많은 사람을 흐르고 있는 제사에 대한 공통적 심리가 아닐까?

 3.불교인의 조상공경

  불교는 원래 올바른 가르침을 실천하여 올바른 지혜를 이루고 이 지혜에서 성불도를 실천하는 종교이다. 그러기때문에 어디까지나 현세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종교이지 사후사람이나 사후세계는 별 문제가 될 수 없다. 또 한사람이 죽은후 어떻게 사는가에 대하여도 그것은 현세 어떻게 지었는가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거기에 무엇을 보탠다고 하는 것은 근본교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범부들은 사후에 생전 지은 바에 따라 六도를 윤회하게 되므로 윤회의 과정에서 고통을 덜 받도록 공덕을 짓고 불보살께 기원을 드리는 것은 자비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에서 또한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의 윤회와 자비정신은 조상숭배와 관계될 때 거기서 필연적으로 조상을 위한 천도법식이 나오게 된다. 생전에 닦지 못했던 공덕을 살아남은 사람들이 현세에서 닦아주고 그 공덕을 죽은 사람에게 돌려서 그의 명복을 빈다는 방식은 오늘날 불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영혼천도의 기본격식을 이루고 있다.

  불교행사로서 영혼천도 조상공경은 여러가지가 있다. 7월 15일의 우란분제, 사후의 七제, 그 밖에 기일에 기제라는가, 명절의 다례라든가, 수시로 추모법식을 갖는다.

  그 내용인즉 불보살의 헌공, 염불, 독경, 보시작복, 설법, 공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헌공은 불보살께 행하여지는 것이지만. 설법, 작복, 공양 등은 일반대중이나 만인에게 직접 행해지기도 한다. 염불 독경은 그 공덕이 망인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게 하는 것이고, 설법도 역시 망인의 미망을 깨드려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법을 베풀어 공덕을 짓는 것이고 작복, 시회(施會)등도 그 공덕을 영혼에게 회향할 뿐만 아니라 영혼 자체를 위로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식의 의미를 살펴보면 몇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는 망인의 사후 복을 더해 주고 그의 지혜를 열어주는 일이고, 둘째는 가족이 함께 선조와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망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고, 셋째는, 이와 같이 망인이 복되고 가족과 자손이 순화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베푸는 공덕으로써 현세의 살아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불교에서의 조상숭배 의식에는 조상은 죽지 아니하고 금생을 이어 새로운 수행의 생애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망인이 의지하고 있는 경계가 현세 인간과 불보살의 공덕세계와 통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생도 사도 없다. 다만 하나의 외로히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 망인이 있고 그를 감싸주는 자비심과 추앙의 생각들이 있으며 그 위에 불보살의 거룩한 위신력과 광명이 비추어지며 그속에서 하나의 망령이 개오(開悟)를 진행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4. 조상공경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그 형식은 어떨런지 조상숭배가 광범하게 행해지고 있다. 과연 그 의미한 것이 무엇일까? 우선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는 추모와 존경이다. 가까운 육친의 죽음을 당했을 때 그 마음의 공허는 형용할 수가 없다. 이 슬픔과 아픔은 추모로 바뀐다. 그리고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저들을 생각하고 감사한 생각도 내며 존경심도 내며 그에게 어떻게던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제사와 천도를 위한 작복, 즉 명복을 닦아주는 천도를 하게 된다.

  둘째는 조상과 한몸이라는 의식에 젖어 혈족의 동체의식으로 승화한다.

  사람들은 부모없이 자기 몸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다 안다. 부모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되어 수많은 먼 조상의 피가 비록 그것이 아무리 연하게나마 우리 몸에 이어져 흐르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살아있는 나의 생명, 지금의 나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먼 조상과 같이 하고 친족 형제와 더불어 함께 한다. 조상앞에 머리숙여 그 앞에 모이는 제사에서 현대인은 어쩔 수 없이 혈족일체 관념이 되살아나는 것이며, 깊은 공동체의 관념이 새로와진다. 서로 공경하고, 서로 아끼고, 보살펴주는 동족의 우애가 짙어진다.

  셋째는 감정의 순화를 들겠다.

  현대인의 감정을 흐르는 복잡한 줄거리...... 거기서 불가불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이러한 갈등, 억압감정 불평불만 슬픔과 또는 증오 등은 현대인의 마음밭을 황폐하게 할 뿐아니라 가지가지 병고와, 사고와, 분규를 끊임없이 산출한다. 그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대립감정이나 증오는 당자의 정신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부모에 대한 감정, 조상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 - 부조화는 결정적이다. 그 조상이 살아계시는 부모이든 돌아가신 망인이든 차이 없다. 필자는 현세에 있어서 부모님 공경이나 사후 순화를 유지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조상에 대한 공경은 바로 오늘의 산사람의 마음의 깊은 곳에서 부터 정화해 주고 거기서 큰 공덕이 솟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부모님 제사상 앞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행실을 정돈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한다는 것은 확실히 현대인의 조상공경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는 정신 건강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중시하는 바이다. 부모님제사 소홀히 하고 그 앞에서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내지 않는 자에게 결코 복이 올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