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

부처님 나라 순례기

2008-01-11     관리자

  [1] 밤열차의 풍경

나는 칼카타까지의 여행계획을 세우고 도중에 불교성지에 참배하기로 했다. 바틴다라는 도시까지 가서 서북선을 타야 했다. 인도인들은 여행할 때에는 반드시 이불을 들고 다닌다. 나도 담요를 말아서 그들 모양으로 휴대했다. 인도에서는 약 일주일 이전에 좌석을 예약해놓지 않으면 무척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간 역에서 좌석을 예약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할수없이 자유석을 샀다. 칼카타행 열차는 밤11시에 있었다. 정거장 대합실에는 이불을 펴 놓고 누워있는 사람들로 빽빽히 차있었기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인지 혹은 그곳을 숙소로 정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깊은 잠에 떨어진 사람, 체념한 사람의 슬픈 표정을 짓고 웅크리고 있는 사람, 노예로 팔려가기라도 하듯이 희망의 불빛이 꺼져버린 얼굴들, 그 들 사이로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경관이 간간히 지나다니고 있었다. 11시가 조금 지나서 연기를 시커멓게 뿜으며 기차가 들어왔다. 이 어찌된 일인가? 승강구의 문은 안에서 꽉 닫힌채 열리지 않았다. 마치 유리창 밖에서 매달릴 곳을 찾아 쏘아다니는 나방이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입구를 찾아 헤메었지만 끼어들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기차는 무심히 떠나버렸다. 다음 열차는 새벽 3시에 있단다. 이 짧은 순간의 허탈감으로 말미암아 나 역시 인도인의 절망속으로 침몰해버린 것 같았다.

 새벽 3시. 가까스로 차창이 열리는 틈을 이용하여 열차에 올랐다. 이곳 바틴다로부터 칼카타까지는 36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장거리 여행이라서 열차바닥도 좌석과 마찬가지로 앉았거나 누워서 간다. 짐꾸러미와 인간이 뒤범벅이 되어 있고 남의 발가락에 코를 대고 자는가 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얼굴을 밟히우는 수도 있었다. 성자와 악한이, 경관과 도적이 그리고 복음과 구걸이 서로 엉키어 한결같이 기차라는 생물의 더러운 내장과도 같았다.

  [2] 갠지스강의 聖浴

 이렇게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되어서 바라나시에 닿았다. 나는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 도중하차를 했다.이 도시야말로 인도의 모든 특징을 압축해 놓은 인도의 축소판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시에 갠지스강의 합류점으로서 힌두교의 최대 성지이기도 하다.

 나는 먼저 인도에서도 유명한 싼스크리트 대학에 찾아갔다. 왜냐하면 빤쟈비대학의 동료가 이곳에 유학하고 있는 티벳 승려를 소개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규모는 작았지만 가장 인도의 전통과 고전을 존중하는 대학이다. 싼스크리트어로 하며 힌두교의 고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곳으로써 교수도 학생도 마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곳 기숙사에 잠시 여장을 풀고 갠지스강변으로 나가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나체가 된 힌두의 성자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여기저기에서는 예배의 노래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거기에는 가두에서 외치는 상인들의 아우성도 뒤섞여 있었고 수많은 행인들로 붐벼서 마치 만국 박람회가 열려있는 것 같았다. 인력거와 통가가 분주히 왕래하는가 하면 소들이 한가롭게 교통을 차단시키고 길 복판에 서있기도 했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호객의 아우성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짖어대고 그 앞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걸인의 모습이 장엄하기도 했다.

 갠지스 강가로 빠지는 골목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치 복마전에 들어온 것 같았다. 골목이 하도 복잡하여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미궁 그대로 였다. 이곳은 성물을 주로 파는 시장인데 어쩌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혀를 디룽거리고 있는 깔리데비의 초상에 마주치기도 했다. 그 앞에는 동전이 쌓이고 향이 타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성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명상을 하고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시장은 곧 사원 속에 있었다. 그 미궁을 헤치고 빠져나오자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수많은 남녀가 성욕(聖浴)을 하고 머리를 감고 또 그물을 손으로 떠 마시는 것이었다.

  [3] 인도의 화장방법

 갠지스강은 힌두교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성화된 영혼의 모태이다.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갠지스강에서 이 성욕을 행하며 또 그것이 소망이다. 그들은 길고 긴 윤회의 길을 청정하게 하기위해 이 강에 와서 영혼의 때를 씻는 것이다. 죽은 뒤에도 화장을 하여 재를 이곳 갠지스강에 흘려 보낸다. 그때문에 갠지스 강변에는 약 5m간격으로 화장터가 즐비하다.

 인도에서의 화장 방법은 그대로 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서 시체를 태운다. 화부는 부지갱이로 휘저으면서 태우고는 바로 이 강에 뿌리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죽음과 삶이 다만 연속되는 지루한 여행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화장터 바로 옆에는 헛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않은 사람들이 죽음을 대기하면서 화장의 장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인도인들의 삶과 죽음은 하나의 테두리이다.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조할 것도 없는 만큼 시간관념 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곳 갠지스 강변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거드는 것은 세계의 여러곳에서 모여드는 히피족들이다. 어쩌면 히피족들은 그들의 고전을 이곳에서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갠지스강은 역시 히피족의 성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