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유마경의 보살사상

특별기획 :유마경의 세계

2008-01-10     관리자

 유마경 문질품에 [어리석음과 탐심으로부터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나의 병도 치유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생사에 들었고 생사가 있는 곳에 병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이 병을 떠날 수 있으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어 그 아들이 병들면 그 부모도 병들고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의 병도 낫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중생이 병을 앓을 때는 보살도 병을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습니다. 또 이 병이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났는가 하면 보살의 병은 무량한 자비로부터 생겼습니다.] 고 되어 있다. 이것은 유마경에 나타난 보살정신을 단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중생과 부처의 세계를 동격으로 올려 세운 유마거사는 누구이며 무량한 대비심이 바로 중생의 병을 관찰하는 소인으로 본 사상은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인가. 그 사상의 배경이 될 유마경 성립의 과정을 잠깐 살펴 보고 그 사상의 깊이를 보고자 한다.

 이 경의 원명은 [비마알라키르티 . 니르데샤. 수우트라]이다. 비마알라키르티란 거사의 행화를 통하여 이루어진 경이므로 그와같이 이름하게 되었다. 한역된 유마힐은 그 음역이나, 의역하면 무구칭 . 정명이라하여[때묻지 않은 ][명성이 높은] 등의 뜻이 있다. 이 경은 반야경 다음으로 이룩된 초기 대승경전 가운데 부처님이 교설한 것이 아니라 대승적 보살사상을 가진 거사 유마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을 대표하여 대승적 육바라밀사상, 더 나아가 십대수삼원 사상이 승만부인에 의하여 이룩된 승만경과 함께 공 . 불이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것이 유마경인 것이다.

 세존께서 열반한지 1백년의 오랜 세월이 흘러가자 계율 중심의 출가교단과 혁신계통인 대중부로 나누어져 제각기 자기들의 교설이 정법 정설임을 강조한 나머지, 이에 대한 논쟁은 이설과 이의를 제공하게 되어 12부로 나뉘게 되었다. 이들 각 부파는 스스로 자파의 정통성을 견지하려 하였고, 또한 그 정통적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파에 유리한 해석을 가하게 되어 새로운 경전을 편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각 부파마다 부처님의 교설을 펴내어 일대 교학의 장관을 수놓기는 하였으나 이 모든것이 번쇄하고 분석적인 교리였으므로 불교에 접하는 대중들에게는 난해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출가교단의 교조주의, 권위주의에 반대한 교도들이 부처님의 참뜻에 돌아가야 함을 주장하는 운동이 전개되어 불교를 쉽게 이해하고 신앙하려는 일반인들로부터 호응을 크게 얻게 되었다. 이러한 대승적인 불교운동은 붓다를 역사적 인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상적 존재로 보아 직접 인간이 신앙하는 믿음의 대상이 되고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초인적 대각자가 부처임을 확신시키는 데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을 과거 인행시에 수행하던 구도자 보살로서 등장시켜, 그 구도의 원초적인 원력은 바로 중생을 제도하는데 그 역점을 둔 것이다.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의 너그러움을 보살의 너그러움으로 이해하여 중생이 앓으면 보살도 앓고 중생이 치유되면 보살이 보살의 바른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밝혔다.

 보통 종교는 이원적 조직 또는 수직관계의 상황에 놓이게 함이 상식이지만 유마의 구원적 종교관은 수평적 관계에 위치하려는 불이의 사상을 전개하는데 힘을 쏟았다고 하겠다. 이것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무아사상의 연기법을 바르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마경이 당시 불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은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이 마음 놓고, 거리낌 없이 유마거사를 문병 할수 없었던 사실이다. 부처님의 직제자가 되어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른 분들이 문병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유마가 공. 불이. 무자성의 법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마경은 부파불교가 자아중심적 교리에 집착하여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는 비종교적 활동을 하는 것을 되돌려 사회적 인간적 측면에서 완전하게 내려와 중생과 구원자가 함께 호흡하는 사상을 전개한 대폭탄적인 선언으로 발전한 경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마경의 공관을 이해하고 공의 실천으로 체험한 용수가 [절대의 평등에 들어간다(입불이)고 한 것은 진리의 거룩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수행을 시작한 보살은 아직 일체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절대 평등의 가르침을 듣고 그 외형만을 보고 그것에 집착하게된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이 절대하고 평등한 가르침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경우가 있다.

 부처님은 이 두 가지를 부정하고 중도를 설파하였다. 다시 말하면 둘도 아니며 둘아닌 것도 아닌 것이다. 하나의 공함에 의하여 둘도 아니며 둘아닌 것도 아닌 것을 간파 하였을 때 참으로 둘 아닌 모습도 버리게 된다. 이것이 곧 길이며 깨달음의 결과인 것이다.]고 하였다. 이것이 유마경 성립의 역사적 이유인 것이다.

 다음 보살사상을 살펴보면 즉 인간이 가깝게 가지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독선적 자기를 떠나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아상이나 아집의 자기로서 생활하는 습벽이 붙어왔다. 이 습벽의 치유방법은 무자성의 고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안된다. 무자성이란 이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기기 이전이나 생긴 이후 그 존재의 속성을 깊이 보면 자기란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에 의하여 조화된 존재인 것이다. 그 조화된 조직의 생성에서 조화가 파괴되고 조직의 파멸이 오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유마경에서 말하는 것은 조화의 본질을 뿌리깊게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 근본적 파악이 없이 지말적 존재의 현상을 갖고 생활하기 때문에 생의 참모습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것과 같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참다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자와 대비의 마음으로 일체에 관심을 갖고 힘없는 사람, 병든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 아니 모든 인간에게 근원적인 관심에서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고 제시된 방법을 함께 실천하는 사람이 구원의 보살인 것이다. 유마는 이러한 구원의 보살핌의 길을 출세간 세간의 구별없이 직절하게 실현하려고 애쓴 재속적 구도자였다. 재속적 수도자이면서 출세간 그것을 불이의 세계에 옮겨 놓고 모두가 하나의 원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극히 강조하고 실천한 거사였다.

 오늘날까지 유마의 정신이 길이 빛나고 있는 것은 집착, 편견 등의 세속적 얽매임에서 해탈한 무아. 불이의 변증법을 실천하게 한 것이다. 유마는 인간의 본질을 구원하려고 노력한 대승보살의 화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