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의 창가에서

수필

2008-01-10     서돈각

  어느 불교학자의 글에서 읽었다. 석존(釋尊)이 재세시의 일인데 세 사람의 탁발승이 탁발을 마치고 어느 거리를 따라서 세존이 계시는 정사로 빨리가고 있었다. 노을진 저녁 거리는 사람도 많고 수레도 많았다. 스님들도 번화가를 누비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이름난 아가씨가 곱게 단장하고 시녀와 같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아가씨쪽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길은 하나뿐이었으므로 세사람의 스님도 그냥 걸어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마주쳐 가게 되었다. 그때의 스님들의 거동은 세 사람 각각 다른 것이었다. 한분의 스님은 멀리서 아가씨의 모습을 보자마자 어둠 속에서 뱀의 몸에 닿아서 놀라 피하듯 그 얼굴을 돌리고 숨도 죽이듯 비켜 지나갔다. 또 한분의 스님은 아가씨가 있는지 귀신이 나타났는지 도중에서는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 듯 시원하게 지나갔ㄷ. 그리고 남은 한분의 스님은 멀리 아가씨의 걸음을 알게되자 이를 한참 쳐다보고 또 지나쳐 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동안 뒤돌아보는 것이다. 거리에서 이 꼴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그 스님에게 시선을 모았다. 俗人이라면 몰라도 청정무구(淸淨無垢)를 존중하는 비구가 미인과 마주쳐서 정신없이 보고 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사음계(邪淫戒)를 犯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스님의 기막힌 태도에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속삭이는 것이었다. 발을 멈춤으로서 도반보다 늦어진 것을 알고 빨리 뒤따라가는 것일까 생각하였더니 그러한 것에 아무런 구애를 하지않고 조금도 다름없는 걸음거리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정사에 돌아가서는 세 사람은 세존앞에 나아가서 돌아 왔다는 인사를 드렸다. 세존께서는 천안력으로써 그들이 거리에서 일어난 일을 이미 알고 계셨으므로 다음같이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오늘 거리에서 미인으로 소문이 나 있는 아가씨를 만났다. 그때에 너희들은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로써 이를 맞이하고 이를 보냈는가?" 라고. 스님의 한분이 곧 답하기를 "저는 이러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는 것에 의하여 이때까지 수행한 마음이 더러워질까 두려워서 눈을 감아 보지 않고 숨을 죽여서 지나갔습니다. 이리하여 마음도 몸도 깨끗이 지킬 수 있었습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씀을 올렸따. 다른 한분의 스님은 의아스럽게 "아름다운 아가씨라니!" 라고 반문하고는 "저도 가다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고뇌와 迷속에 신음하는 불쌍한 생물로만 보입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한꺼풀 벗기면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 아가씨를 만났는지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라고 말씀을 하였다. 세번째의 스님은 "너는 어떠냐?" 라고 하시는 세존의 물음을 받고는 "확실히 만났습니다. 거리에 소문이 날만큼 아름답고 맑은 아가씨였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아가씨구나 하고 한참 뒤돌아 봤습니다" 라고 조용히 대답을 하였다. 세사람의 각각 다른 답은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비치었을까, 특히 마지막 스님의 답에는 적지 않은 동요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세존의 존안(尊顔)에는 티끌만한 움직임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제자들은 세존의 입에서 어떠한 답이 나오시는 것인지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존은 스님들에게 크게 동의한다는 뜻을 보이시고는 是라고도 非라고도 하시지 아니하고 묵묵히 좌석에서 일어나시었다.

  이 글에서는 그 전거(典據)가 밝혀져 있지 아니하였고, 과문(寡聞)한 이사람도 그 전거에 관하여 아는바 없다. 나는 가을의 창가에서 푸른 하늘에 오가는 흰 구름을 보면서 이글 속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존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무언속에는 <각자의 가슴에 손을 대어 깊이 생각하라>고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눈을 감고 숨을 죽여서 아름다운 것, 모든 쾌락을 피하여 수행하는 태도에는 추상과 같은 엄숙함이 있다. 모든 감각, 관능을 제압하여 오로지 보리만을 추궁하는 모습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러한 길은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아라한(阿羅漢)의 길이다. 일절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니 자기속에 불성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타인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산천초목 모든 것에 부처를 보게된다. 따라서 미인도 없고 추한 것도 없게되어 우주가 일체로 된다. 미인을 만나든 왕후를 만나든 아무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사는데는 오랜 수행과 사색을 거친 깊은 체험이 필요하다. 自他의 대립을 타파하면 된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자기와 타인, 나아가서 우주와 일체로 되어 천의무봉(天衣無縫) 자연법이(自然法爾)로 사는 길도 우리 범부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인을 만났을 때 뒤돌아 보는 길도 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사는 길로서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운다. 미인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고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겸허하게 이를 존경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과 자기가 놓여진 처지에 만족하여 짧은 이 인생을 과부족(過不足)없이 명랑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