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果說이란

지혜의 샘

2008-01-08     관리자

 어느 해던가 제주도 친구로부터 풍란 몇뿌리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이슬비를 맞히고 바람을 쏘여 주는 등 딴엔 정성을 다했으나 풍란은 한뿌리만을 남기고 죽어 갔다. 마지막 한뿌리를 살려 보려고 분을 갈아주고 바람과 햇볕을 알맞게 맞을 수 있는 뜨락의 돌 위에다 풍란분을 옮겨 놓았다.
저녁때 분을 집에 옮겨 놓을량으로 뜰에 나갔더니 뜻밖에도 풍란은 짓이겨져서 우물가에 던져져 있었다.
우리집의 장난꾸러기인 어느 견공의 짓이라고 금방 알 수 있었다.
개를 탓하기에 앞서 의지로라도 기어코 살려보려고 애써온 한개의 생명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풍란의 운명이라도 생각했다. 그날 돌 위에 내다가 놓지만 않았던들 그같이 무참한 꼴로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풍란은 오래도록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요즘 송아지만한 토사견이 다섯살박이 귀여운 어린 생명을 무참하게 물어 죽인 사건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무던히도 아프게 하고 있다.

 한뿌리의 식물에도 생명을 느낌으로써 인간은 자연계의 생명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돌에도 빌고 나무에도 빌고 해와 달에도 빌고 별에게도 빌어대는 것은 옛 우리의 조상들만이 아니고 현재에도 그러한 우리 이웃이 적지 아니 있는 것으로 안다.
인명과 그 복을 그러한 자연계를 향해 빌어야 하는 사람들은 그만치 우연히 닥쳐 올 화를 겁내고 있는 것이다.

 그날의 그 토사견의 만용은 참으로 그 어린 목숨과 그 아이의 부모는 물론이고 그 이웃에게까지도 기막힌 참사와 재앙의 화신이랄 수가 있겠다. 요즈음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윤회설과 인과설을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된다. 만상(萬象)을 사람의 손에 붙이신 신은 이러한 참혹한 사건을 우리 인간이 묻는다면 정말 어떠한 대답을 주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