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주는 생활을 창조하자

특집1/주는 기쁨

2008-01-08     정준

인간은 공수래공수거하는 존재이다. 모체로부터 탄생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라. 관속에 누은 죽은 자의 모습을 보라. 그 두 모습에서 인생은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모두 아무댓가도 없는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받는 것이다. 주고 받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한다. 특히 받는 자의 입장을 취하기 보다 주는 입장을 취하는, 주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낌없이 나보다도 약한 자를 위해서 나눠줄 수 있는 도덕적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그리고 없으면 마음으로 사랑하고 시간이니 지혜를 나누어 쓸 수 있는 생각, 행동, 습관, 성격을 가진 자는 양심적 인간 도덕적 인간 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와 같은 위대한 어른들은 모두 이 일을 가르치고 이 일을 실천한 어른들이다. 그들에게는 물질이 없었다. 가난하다고 말할 정도로 표현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이 산 분들이다. 그러나 큰 마음,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인류를 구제하는 큰 것을 준 분들이다. 그분들은 받기보다는 많은 것을 주면서 사신 어른이었다.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아파하는 사람, 고적해 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우는 사람, 병든 사람, 모르는 사람, 배고픈 사람, 헐벗은 사람, 추워하는 사람,길잃은 사람 천재지변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서 그 처지와 사정에 맞게 적합하게 도와주는 행실을 할 수 있다면 이 일은 분병히 가치 있는 생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기독교에서는 자선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보시라 하고 유교에서는 적선이라 한다.

인간관계는 사랑, 자비, 어짐에 의해서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창조함으로 평화, 자유, 안전, 행복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란 주는 것 받는 것의 관계이다. 서로 서로 주기도하고 받기도하며 받기도하며 주기도하는 관계로 되어 있다. 주고받는 관계 받고주는 관계는 인간관계의 모든 형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경제적 인간관계, 정치적 인간관계, 과학적 인간관계, 문학적 인간관계, 예술적 인간관계, 종교적인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인간관계의 형태이다.

위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사로운 마음과 사랑의 마음으로써 이루어지고 사심없는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정직하고 순결하게 구현될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구현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주는 자가 있다는 것은 받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주는 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며 주는 입장을 취하기를 기뻐하는 생각과 행동과 습관과 성격이 생겨아 한다. 우리 국민의 성격이 주는 성격야 되어아 한다 받기를 좋아하고 주기를 싫어 하는 이기적 생각, 행동, 습관, 성격을 가진 국민성이어서는 안된다. 나의 가진 것 중에서 마음, 시간, 정열, 지혜, 학식, 기술, 물질 등등을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 사람에게 친구에게 국제간에 나누어 주는 것이야말로 도덕적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고 이 일이야말로 인류평화 개인의 자유 국가의 안전 가정의 행복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주는 자의 마음가짐에 두가지 태도가 있는데 하나는 이기적동기와 방법에 의한 주는 행실과 무사(無私)로움의 동기와 방법에 의한 주는 행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시를 바라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나서 주는 것은 보시라고 하지만 바라지 않아도 자진해서 베풀때에는 이를 보시바라밀이라고 부른다.」 라고 했으니 보시에도 순결한 사랑의 보시가 있고, 불순결한 보시가 있다. 그러므로 순결한 사랑 정직한 사랑 무사로운 사랑은 조건이 없다. 남을 도와줄 때 조건이 없는 사랑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불순한 동기로 보시를 하는 자의 경우에는 조건이 따른다.

명예나 지위를 생각하고 보시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명예를 얻는다는 조건, 지위를 얻는다는 조건에 의해서 보시를 행하는 경우가 너무도 흔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생각할 때 인간 관계가 날로 도덕부재 현상으로 타락함을 개탄 아니할 수 없다. 주는 운동을 전개하는 노력이 이곳 저곳에서 전개되고 있어 어느 곳을 가나 불편이 없는 세상 어느 곳에나 평화가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천당과 지옥에 가 보았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지옥에 가 보니까 음식을 긴 수저로 떠서 자기입에다 넣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담긴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허기진 배를 한 손으로 만지면서 수저를 입에 넣으려고 애만 쓰지 먹지는 못하며 고생하는 그 꼴이 과연 지옥생활이 이렇게 고통이 심하구나 하며 지옥에서 떠나서 천당에 가보니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화로운 표정을 하며 식사를 하는데 지옥에서 본 같은 음식과 같은 수저인데 음식먹는 방법이 자기가 자기입에 음식을 넣어서 먹는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남의 입에다가 음식을 담은수저를 넣어 주어서 쉽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즐겁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잇더라고 말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주는 입장을 가질 줄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지옥생활을 하는 것이요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 천당에는 고통과 번뇌가 없다고 한다.

주는 생활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주는 생활은 극락을 창조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근세의 우리 민족지도자들은 자기 것을 모두 남에게 주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었다.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고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게 주는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 실로 인간다운 인간이었고, 위대한 도덕적 인물들이었다.

주는 자로 살아야 한다. 마음을 주는 생활 정열을 주는 생활, 시간을 주는 생활, 지식과 기술을 주는 생활, 물질을 주는 생활을 하는 국민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잘된다.

기독교.불교.유교등 윤리 종교 창시자들은 모두「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 중에는 욕심장이가 많다. 이기심의 노예가 많다. 인간에게는 네가지 죄가 있다. 비정직. 비순결. 비무사. 비친애가 그것인데 욕심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주는 자의 입장을 취하면, 개인이 자유로워지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나라가 안전해지고 세계가 평화로워져서 사람있는 곳에 불행이 없고 사람있는 곳에 안락이 있을 것이다.

「주자.」주면서 사는 생활을 창조하자. 이것이 인생문제의 근본이며 문제 해답의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