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

특집1/주는 기쁨

2008-01-08     황해진

우리는 부모.형제,이웃.국가사회와 여러 선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왔으며 또한 많고 적고간에 서로 주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나의 것이 주는(減) 듯이 보여지는 주는데서 오는 기쁨이 오히려 받는데서 오는 기쁨보다 더 큰 보람으로 느껴지는 것을 근일에 와서 유난히 새로와 진다. 기쁨도 느끼는 차원이 있는 듯 나의 수요를 만족시키거나 나의 수요의 안전을 보태주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은 오히려 깊은 마음의 영혼이 기뻐하는 것인가도 한다. 감각적 만족에서 오는 기쁨보다 정신적 만족을 주는 기쁨 같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오늘날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우연히 일이 아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사랑 넘치는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것은 다시 말할 여지가 없다. 그 밖의 자연현상. 태양. 공기 등 여러 조건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고도 있다. 우리의 성장과정에는 부모님과 자연현상이라는 환경 외에 형제와 이웃으로부터 받은 정신적 물질적 은혜는 또 그 얼마일까?

먼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텔레비전이나 라듸오를 통하여 들을 수 있고 천만리나 떨어져 있는 벗들과 대화가 가능하며 거리에 구애없이 왕래할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은 그 모두가 지혜스러운 선조들의 희생적 노력의 덕택이며, 우리는 그 은혜를 이 자리에 앉아서 고이 받아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조건들은 그 모두가 선인들로부터 물려받고 또한 이웃형제들의 협동으로 오늘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와 이웃에게 보탬이 되고 선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에 비하여 우리가 받고 있는 이 현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몇 평생을 두고 두고 보답하려 하여도 갚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들이 받아쓰고 있는 것 중에는 정신적인 것도 있고 물질적인 것도 있다. 그 중에 우리를 이 지상을 배회하는 영리한 동물에서부터 인간이라는 신성하고 존엄스런 가치를 누리는 오늘을 있게 한 진리의 선각자의 은혜는 또 무엇에 비할까? 또 지상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태양이라면 인간을 성스러운 인격으로 끌어올리는 성자들은 과연 태양의 은혜로는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에서 성자로 승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부처님과 많은 조사 성인들께 거듭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다. 팔만사천 법문을 열어주셨다. 그리하여 동물적 인간에게 진리와 주체적 주인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다. 그중에서도 보시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데서 가장 높은 진리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인 것을 나는 믿고 있다.

아낌없이 집착없이 내어놓는 것이다. 저에게 참된 보람이 되고 기쁨이 되도록 물건이고 지혜이고 힘이고 능력을 가리지 않고 그 모두를 내어 놓는 것이다. 저는 받아서 기쁠 것이다.

도움을 입어 기쁠 것이다.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기쁠 것이다. 그러나 주는 이 편에서는 그보다도 더 큰 기쁨이 있는 것이다. 저가 기뻐하는 기쁨이다. 저가 고통에서 벗어난 기쁨이다.

저가 진리 앞으로 한걸음 닥아선 기쁨이다. 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괴로움과 기쁨이 함께 흐르는 기쁨이다.

보시의 기쁨이야 말로 진정 인간의 기쁨이며 보살의 기쁨이다. 내가 내가 아니고 저와 함께 있는 것이다. 저와 더불어 나는 형성되고 나 가운데 저와 나는 함께 있는 것이다.

기쁨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법의 즐거움이란 것을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주는 기쁨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한가닥을 나는 짐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하늘, 이 땅, 이 강산, 이 조국, 이 겨레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을 영유하며 머나먼 미래까지를 설계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외부 집단으로부터 침략이 가해오거나 자연적 재난이 덮쳐 오거나 사회적 혼란이 생활을 위협하거나 개인의 자유와 활동이 구속을 받을 때 우리의 조국은 우리 앞에 뛰어나와 우리를 보호한다. 평등한 자유와 향상된 생활수준의 보장 문화적 창조활동의 보장 경제적 발전의 보호 그 모두 위에 조국의 힘은 밀접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으로부터 받은 혜택은 또한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다. 한 말로 생존의 근본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조국에게 받은 은혜와 우리가 조국에게 받친 충성과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조국의 은혜에 대한 보답은 이것이 병역의무를 다하거나 납세의무를 다한 것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공공시설의 혜택은 입고 적기에 또박또박 사용료를 냈다고 다 되느 것도 아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는 사고 방식은 그것이 국가에 대한 권리 주장과 상부하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것을 주장한다. 국가는 나에게 혜택을 주고 의무의 이해를 요구하거나 하는 나하고 이해 대립관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가 아니며 국가는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대상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조국의 전통을 주체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킬 주체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권리의 신장도 그 가운데 있고 조국의 영예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국가와 내가 대립존재가 아닌 하나인 나로서 무한한 전통을 계승하며 펼쳐나가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국가에 바치는 충성은 커다란 나의 자연스런 발로다 하겠다.나라에 바치는기쁨은 조국이 인정하는 영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커다란 참 나를 긍정하고 실현하는데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이웃이나 형제에게 우리의 충정을 준 기쁨도 그 바탕에는 우리의 개아를 넘어선 커다란 자기가 참자기를 발휘한데서 오는 기쁨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그 차원을 달리한다. 물질적 감각의 만족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고 참된 인간정신의 환희이다. 찰라찰라 변멸무쌍한 육체적 개아의 기쁨이 아니고 영원한 진리와 더블어 함께 한 참생명의 기쁨이다.

주는 기쁨이야 말로 영원한 인간의 기쁨일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