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의 산아조절론 (4) 인간승리를 위한 서장

불교인의 산아조절론 (4)

2008-01-07     광덕스님

 --  佛敎人의  産兒調節論   (4)

   그러기에 중생인 한 설사 고급 영이라 할지라도 淫性이 있는 것은 면할 수 없다. 다만  고급 영일수록 음욕이 淡薄하다는 것뿐이다.

   [음욕이 담박]하다 함은 무슨 뜻일까? 애정에 있어 감각적인 충동이 적다는 뜻이다.  감각적인 출동이란 물질적 결합에의 강렬한 충족욕이며 자기실현에의 강력한 습성화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의 말슴에 동일한 욕계천의 천인이라 하더라도 음욕이 담박한 정도에 따라 高級天에 주하게 되고 애정결합의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 수긍이 간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인격형성에도 감각적인 애정결합에의 욕망이 담박할수록 [인격의 고결]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도야에 있어 진리의 자각과 진리에 卽한 덕행의 훈습이 절대 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음욕의 절제] [음심의 담박화] [본능의 자제]는 특히 중요한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증력이 뛰어나더라도 본능을 억제 못하거나 성도덕이 문란하다면 그는 이미 인간형태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7. 산아조절론

(16) 오늘날의 산아제한을 점검한다.

   이상에서 논한 바를 거듭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인간의 본실상은 불성이라는 절대적인 무한자성원만체이지만 미혹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본지를상실(착각)하고 현상적이며 감각적인 대상과의 관계에서 자기를이식하게 된 것이 범부 중생이다.  이들은 물질적인 것에 탐착할 수록 더욱 깊이 자기 상실에 떨어지고 품격은 저열화된다. 따라서 범부 중생의 본질은 미한 영성이며 이 영성이 인간육체를 얻는 것이 현상 인간이다. 이 지상에 고급 영성인 인간을 탄생시키려면 동위영성으로서의 인간(부모)의 품격이 고결하여야 한다.  품격의 고결은 靈識의 明淨을 의미하며 그것은 물질과 감각에 담박하고 지혜와 덕성이 원만하다.

   대강 이상으로 요약된다.

   여기까지 온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산아제한]에 대하여 불가불 할말이 없지 못할 것이다.

   1,   산아 [제한]이어야 하는가?

   이 지상이라는 인간계는 靈人 즉 인간령의   降生이며 그의 수행장이다. 그러면 이땅에 受生하는 령인을 제한하여야 할까?  물론 이 땅에 수생을 원하는 영의 입장만을 생각하면 무제한 지상 인간학교에 입학을 허용하여도 좋을지 모른다. 일부다처로 千子萬孫을 두는 것이 큰 선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靈] 자신에게도 아직 지상 수행이 적합하지 않는 영도 있으므로 영 자신을 위하여 선택은 필요하다.  또한 영이 생활할 이 지상의 행복과 聖化를 위하고 또한 [靈]을 가족이나 사회인으로 받아들일 이 사회의 여건, 특히 그의 부모의 경제상태 아동교육 환경 및 부모자신의 개인적 수행여건 등을 고려한다면 降靈調節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일방적 [제한]만은 아니다. 불임여성에게는 임신을 지도하거나 우생학적 견지에서 아예 단산을 권장할 사정도 있기 때문이다.

   2,  경제적 사유가 산아조절의 유일한 이유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산아제한의 이유로 드는 것에 식량문제와 경제성장의 둔화 그리고 가정 경제력에 알맞는 자녀두기 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육체가 아닌 령성이며 그의 본질이 佛性임을 생각할 때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식량증산의 방법도 [맬더스]의 이론을 뒤엎을 방도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실지 일본이 2차대전 후의 극심한 식량난에서 증산에 힘써 한때 생산과잉상태에 다달았고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까지 생산억제를 했다. 식량문제가 인구조절의 유일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수한 고급령의 수생과 인간 지성의 개발 결과로 代替食糧이나 새로운 식품이 개발되어 인간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은 환상적인 억지만은 아니다.  또한 개인 경제력에 알맞는 출산이라면 능력따라 10인도 20인도 좋다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밖에 공해증대니 산업상비군의 증가로 인한 실업 위협이니 근본적으로 지구상에  賦存된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필경에는 자원고갈로 인한 인간 부흥력 결손이니 등등으로 인구억제의 이유로 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 때문에 산아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들 주장에 따를면 결국 여성은 [사람기계]가 된다. 시장정세와 코스트에 따라 조업단축이나 생산중단을 하는 기계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인간유물화의 견해며 중대한 인간모독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그 이유를 아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도 一言한 바와 같이 이성과 능력의 무한성을 신뢰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여기서 볼 때 미리 공포증에 걸려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은 없다.  상호의 이해와 협동으로 유무를 상통하고 새로운 자원개발에 힘쓰고 인간품성 향상에 서로가 협동한다면 인류의 장래가 어두운 것만은 결코 아니다. 사실 위기공포 의식의 축적이 현실적 위기공포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성실한 인간의 협동 노력은 새 자원의 개발,  무공해산업의 발달,  산업의 자동화  촉진,  등으로 생산을 증가하고 인간을 많은 노동시간에서 해방하며 인간 여가를 과학연구,  종교,  독서,  미술,  운동경기,  기타 예술창작 등으로 인도하여 인간생활은 보다 행복과 풍성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인구조절의 이유를—  인간의 영적의식의 향상을 위한 본능자제와 이 지상에 탄생할 인간의 고급화(?)를 기도함으로써 지상에 평화와 번영을 도모한다는 데 주된 이유를 발견한다.

   오늘날 세계는 궁핍과 자원고갈이 지배하는 이른바 [미래시대]이 문턱에 서 있다고들 야단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는 인간의 지성과 능력을 신뢰하고 이해와 협동 노력으로 [인간신성,  인간영달]을 향한 신념과 노력을 굳혀가야 할 것이다.

      3.  피임방법의 몇 가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피임 방법은 대체로 다음 몇가지다.  (대한 가족계획 협회나 가정보건 상담실에서 행하고 있는것)

   여자에 대한 영구피임방법으로는 난관 결합수술이 있는데 일부를 절제하고 나서 그 끝에 묶어 두는 방법,   또는 난관을 도중에서 묶어 버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원리는 난관을 도중에서 묶어 난소에서 난관으로 올라온 난자와 자궁에서 난관으로 진입해 오는 정자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반영구적 피임법으로는 [루우프]가 있다.  루우프 피임법은 자궁내 장치로서  자궁내에 루우프를 삽입하여 장기적인 피임을 기도한다.  이 방법은 자궁내에서 난자와 정자를 격리시켜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설혹 만나서 수정되었더라도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게 하고 또한 수정란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이 방법은 우리 정부가 권장하여 여성들 사이에 성행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일시적 피임법으로는  홀몬제를 먹거나 주사를 맞는 방법인데 이것은 여성홀몬과 꼭같은 약을 먹음으로써 난소에서 난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을 배란을 억제하여 임신되지 않게 한다. 이것이 먹는 피임약인데 정부기관에서 무료로 악을 주면서 적극 권하고 있다.   다음에 남자에 대한  피임방법으로 대개 두 가지가 행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정관절제법이다.  이것은 고환에서 생산된 정자의 수송로를 절단하는 방법이다.   수정관만을 절단하는 것이므로 남성 홀몬이나 정액은 정상상태에 있어 생리나 생활에는 지장이 없고 다만 씨없는 수박처럼  임신만이 안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콘돔법이다.  이것은 정자 주변에의 접근을 봉쇄하는 방법이다.

   이밖에도 국소 피임제인 발포성 정제 등이 있고 자궁 내용물을 뽑아내는 이른바 월경조절법이란 것도 행해지고 있다.  또한 종래의 루우프 장치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알자 T니],  [카퍼 T]가 새로 등장하여 실험을 거치고 있다고 들린다.  이들은 루우프의 개량이거나 루우프와 약제를 병용하는 것이라 한다.

   이상의 방법을 살펴보면 모두가 성행위의 안전보장과 수태의 억제를 목표로하고 그중 어떤 방법은 수태상태에 있을지도 모를 상태에서 이를 제거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임신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전연 고려가 없다느니보다 오히려 무식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수정란의 자궁착상 현상만으로 파악한다.  겉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한갖 성행위의 부산물시하는 노골적인 인간 모멸 사상이 이곳에 깃들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관리가 과연 이러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는 철저하게 유물인간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러고서는 인간은 고급동물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존엄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은 修辭以上의 것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불성이며 靈性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독자들은 이와같은 오늘날의 그릇된 인간 생명관이 자인하는 근거를 아시리라.  그것은 범부의 인식구조상의 왜곡의 탓이다.  유현적 형상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범부로서 이런 유물편견을 갖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편견은 진리가 아니다. 허위다.  거기에 진실과 행복번영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임신중절은  살인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참아 눈뜨고 못 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산아조절이나 낙태에 대한 풍조나 방법을 볼 때 여기에는 衆生迷妄相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

   첫째로 인공중절과 낙태의 문제.   독자는 이미 태아는 생명이며 인간이며 그 집안에  수생한 가족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명분으로 중절이 허락된다는 것일까?  그것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다. 중절은 살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체에서 완전히 분리한 연휴부터가 사람이라든가 독립호흡  이후부터가 사람이라 한다는 것은 [인간육체] 사상이나 유물주의에서나 살인범 수사상의 편의에서 하는 소리다.

   가정의 경제사정으로 가정이 잘 살기 위하여 낙태한다면 자식의 생명을 끊고 잘 살기를 기도하는 부도덕은 야수에도 없는 일이다.  더우기 자유며 특권이라는 구호로 데모가 횡행하는 보도를 접할 떄 인간미망과 타락의 극을 보는듯 하여 한심스럽다기 보다 처량하고 측은 스럽기 짝이 없다.

   인간이 이같이도 타락할 수 있는가?  이같이도 잔인할 수 있을까?   이것은 유물주의의 亡靈이 덮인 중생의 착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