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나라 순례기] 종교의 고향 인도

2008-01-07     김구산

 한 나라의 수도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뉴델리에서 처음에 받은 인상을 양극단이 충돌없이 공존하며, 시간이 딱 멎어 버린 뜨거운 공간 속에 고대와 현대가 함께 전개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성자와 악한이 나란히 앉았고 영주와 노예가 그 관계를 천국과 지옥 보다 더욱 멀게 하며, 무릇 종교는 아주 완전하게 죽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는 공양을 받는가 하면 인간은 굶어 죽는 수가 많다. 일반적으로 인도인의 얼굴에는 체념과 권태가 그 표정을 지워 버린 듯하여 삶과 죽음이 긴장 없이 조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기나긴 윤회의 과정에 지쳐있는듯 하면서도 영원한 세계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인도는 모슬렘과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천년간의 노예생활을 겪었다. 그런만큼 인도는 모파스가(街)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고대불교 및 힌두교 사원의 벽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새겨진 파편과 불상 및 힌두교의 신상(神像) 등이 대부분이고 아기자기한 보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곧 운반이 가능했던 문화재며 미술품이면 남김 없이 약탈해 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만 폐허화되어 버린 궁전이며 성체들이 넓은 벌판에 거대한 공룡의 형해(形骸)처럼 버려져 있었다.

 거리를 붐비게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다양성이 발견된다. 거의 나체가 되어 힌두교를 상징하는 쇠창을 손에 들고 걸어 가는 산냐시(힌두교의 성자)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천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에 얼굴이 없는 괴물처럼 보이는 모슬렘의 여자교도며 머리를 삭발했으면서도 뒤통수에 한줌의 머리칼을 남겨서 묶고 다니는 로드크리슈나(힌두교의 일파)의 승려들이며 머리에 터번을 쓰고 무성한 수염을 기른데다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는 씨크교도들이며 또 공원등지에서 신통술을 시험해 보이는 요기들이 있는가 하면 온몸에 화살을 꽂고 양쪽볼을 단검으로 꿰뚫고 고행을 하며 결식을 하기 때문에 성자인지 걸인인지 분간할수 없는 존재가 있고 혹은 쑥대머리의 장발을 하고 가슴에는 부적을 매달고 거지꼴로 떼를 지어 다니는 순례자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불교의 승려들만은 눈에 뜨이지도 않고 그 신도들도 마치 레지스땅스의 지하당원들 모양 인도의 표면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나는 인도인 친구인 치마氏 집에 여장을 풀고 뉴델리의 지도를 공부한 다음 이삼일이 지나서 뉴델리의 마하보디 · 쏘사이어티(大覺會)를 찾아갔다. 그것은 거대한 힌두교의 대리석 사원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법당이어서 셋방처럼 초라했고 스님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주지스님은 사팔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인도의 불교현황과 몇 사람의 불교학자들의 이름을 소개 받았으나 불교는 힌두교의 교세에 눌려 맥을 못 추리고 있는 형편임을 알았다.

 나는 인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빤쟙주(州)의 고도(古都) 빠티알라시(市)의 빤쟈비 대학에서 연구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뉴델리에서 일주일 머물다가 북쪽으로 약 6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갔다. 인도는 농업국인데다 빤쟙주(州)는 특히 세계 제일로 밀의 곡창이다. 또한 역사상 최후까지 영국의 침략에 저항한 씨크의 왕국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씨크교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원래 무사계급으로 성격이 적극적이고 호전적이어서 그들의 수효는 전 인구의 2%밖에 안 되지만 인도사회의 각계각층에 침투해 있고 상당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씨크교는 구루 · 나낙(Guru Nanak)이라는 성자로부터 구루고빈드씽(Guru Gobind Singh)에 이르기까지 10代의 성자를 통하여 완성된 종교로서 와해구루(Wahe Guru)라는 범신론적(凡神論的)절대자를 신앙하며 명상헌신(獻身)을 종교적 수행으로 삼고 있다. 그 교도들의 이름 끝에는 모두가 씽(Singh)이라는 성을 달고 있는데 이것은 <사자>라는 뜻이며 사자와 같은 용기를 상징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투쟁과 순교로 점철되어 지고 있다. 지금도 무사다운 정직성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씨크교도들은 남과 구별되기 위해서 다섯 가지 것을 지녀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의 머리글자가 모두 K자로 시작되기 때문에 5K라고도 불리운다. 즉 ① 머리와 수염을 보존해야 하며 ② 머리에 빗을 지녀야 하고 ③ 오른손 팔목에 쇠고리의 팔찌를 끼어야 하고 ④ 반드시 빤스를 입어야 하고 ⑤ 몸에 칼을 지녀야 할 것 등이다. 빤쟈비 대학도 바로 그들의 이념과 재단에 의해서 설립되었고 특히 이 대학의 종교과는 북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하다. 여기에는 종교별로 여섯 개의 전공으로 분화되어 있는데 힌두교, 불교, 자인교, 모슬렘교, 씨크교, 기독교(구교와 신교를 포함)등이다. 나는 이곳에서 연구교수의 대우를 받으며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로 했다.

 인도에서는 철학과 종교를 별개의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우주와 인생의 법칙과 원리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곧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Religion>이라는 말과 인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종교로서 <Dharma>라는 말과는 그 어원과 개념이 다른 것이다. <Dharma>란 법(法) 혹은 원리라는 뜻으로 자아를 <통하여>진리자체로 환원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인에게는 종교가 삶의 원리와 기술을 습득케하는 가르침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헤서 인도의 사상을 신비주의(Mysticism)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라 하겠다.

 빤쟙의 하늘은 파랗게 맑고 아름다웠다.

 나는 대학 기숙사에 숙소를 정하고 차츰 친구도 사귀고 인도인 가정에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어느듯 모든 인위적인 가치와 허위의 탈을 벗고 깊숙히 인도인의 의식내면에 잠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