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인정 人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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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7     어효선

 해방 전 일제 시대에는 거지가 많았다. 철사를 꽤어 손잡이를 한 깡통을 들고, 너덜너덜 해지고 갈갈이 찢어진 누더기를 입고 헌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끼니때마다 집집마다 다니며, 문기둥에 기대서서 「밥좀줍쇼—,네—.  밥좀줍쇼—,네—」

하고 구걸하는 때투성이 남자 거지. 해진 옷을 누덕누덕 기워 입었지만, 그 옷이 깨끗하고 꿰진 고무신을 신은, 세수하고 다니는 여자 거지는 양푼에 보자기를 덮어 들고는 아는 집 찾아오듯 안마당으로, 성큼 들어서서, 부엌문 앞에 와 선다.

 밥상을 차리다가, 아니면 설겆이를 하다가, 구걸을 오면, 그냥 돌려보내는 일을 거의 못 보았다.

  남자 거지에게는 먹다 남은 밥이랑 반찬을 폭폭 쏟아주고, 여자 거지에게는 맛 변한 김치 한통 맛 없는 된장 따위를 떠다 주기도 하고, 쌀 한 공기를 퍼 주기도 한다.

「아침 먹고 치웠어요, 다른데나 가 보우.」

하고, 부엌에서 내다보고 그냥 보내려고 하면, 할머니가 쌍창을 열고는, 「가엽다, 뭐라도 조금 줘 보내라.」고 한다.

할머니는 추위를 안 타셔서, 겨울에도 대청 마루끝에서 상을 받을 때가 많았다.

「밥좀 줍쇼—,밥좀 줍쇼.—」 거지가 중문깐에 들어서서 구걸을 하면,

「이리 들어와.」

하고, 번번이 불러 들여서는, 잡숫던 밥 그릇을 푹 쏟아 줘 보내고는 수저를 놓았다.

  그 때도 겨울이었다. 발 벗은 아낙네 거지가 달달 떨며 들어섰다.

  마루 끝에 앉았던 할머니가, 신었던 버선을 얼른 벗어서 내주었다.

「에그, 저 발이 얼마나 시릴꾸, 쯧쯧...,..」

  거지가 왔다 가면, 「내 배가 부르다고 가엾은 사람 못 알아 보면 못쓴다. 내 집에 구걸 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냐면 안돼, 뭐든지 조금 줘 보내야지.....」 이런 말씀을 가끔했다.

  나이 먹은 거지보다 어린 거지를 더 동정했다. 나이와 부모가 있느냐고 묻고나서 훈계도 했다.

「이목구비가 멀쩡하고, 몸이 튼튼한데 왜 구걸을 하고 다녀, 저 배우갯장(동대문 시장)안에서 유과전하는 뚱뚱이 아니? 그 사람이 어려서 거지였어. 우리 집에 자주 왔었지. 거지를 하다가, 잡화상에 더부살이로 들어가서 밥만 얻어먹고 허드렛 일을 했지. 그러다가 주인의 눈에 들어서, 점원 노릇을 하더니만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그 옆자리에다 유과전을 차렸어. 나도 그 집 물건을 팔아 줘. 남보다 더 받질 않아 가게가 점점 늘어 가더니 지금은 부자가 됐단 말야.」

어린 거지가 돌아간 뒤, 혼자말 처럼

「어린거지를 업신여겨서는 안돼. 앞날이 창창해서, 뭐 될는지 모른단 말야, 음지가 양지된다구,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는 거야. 잘 사는 것도 그렇지, 만석군이도 하루 아침에 망하는 걸. 거지 조상이 거지는 아냐.」 하곤 했다. 내가   먹을 것을 남에게 주고 내가 입을 것을 남에게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배 부르면 남의 배고픈 것 모른다고 한다.

  지금은 깡통을 들고 다니며 밥을 구걸하는 거지는 없다.

  사지가 성치 않은 이가 가겟집을 다니며 돈을 달란다. 주인은 동전을 마련해 놓고 오는 대로 군 말 않고 한 푼씩 집어 준다.

  걸어 다니기 어려운 병신은 대개 육교 위에 있다. 양은 양재기 하나를 앞에 놓고 앉아서, 하루종일 절을 한다.

  그러나 대개는 바쁜 걸음으로 지나쳐 버린다. 같이 가던 사람이 아는 이를 만나 애기하는 동안 마침 그 거지 옆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옆의 한사람, 스물에 한 사람쯤 낯을 찡그리고 호주머니를 뒤져 돈한 푼을 양재기에 넣고 간다. 그들은 늙은이가 아니면 여성이었다.

  동전이 쨍하고 양재기에 떨어지는 순간 그 찡그렸던 얼굴 확 펴진다.

  그냥 지날칠뻔 했다가 지켜 본죄로 나도 동전 한 푼을 넣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까 본 동정하는 얼굴들을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고학생인 듯한 학생이 호소문이 적힌 때묻은 종이쪽지를 논아주고는 원망스런 말투로 한바탕 호소 연설을 한다. 그리고는 볼펜 따위를 내민다. 값을 말하지도 않고, 묻는 이도 없다. 대개는 고개를 가로젓고 그 때묻은 종이쪽지를 돌려준다. 어쩌다가, 얼마를 내주는 이가 있다. 볼펜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고학생을 볼 때마다, 떼묻은 호소문 쪽지를 논아주고 호소 연설을 한바탕하고 그러지 말고, 숫제 「고학생입니다. 정가 이십원입니다. 같은 값이면 제 걸 팔아 주십시오.」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정을 하고 싶어 해야지, 강요당하는 것은 불쾌하다. 강요된 동정이 아니다. 불쾌한 동정은 하고 싶지 않다. 많건 적건 크건 작건 주고 싶어서 주었을 때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는 기쁨을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주고 사서야 될 말인가, 딱하다, 가엾다, 불쌍하다 그래서 보태줘야겠다, 도와 줘야겠다, 보태줬다 도와줬다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인정이 아닐까?

  사십여 년 전, 할머니가 잡숫 던 밥그릇을 쏟아 주고, 신었던 버선을 벗어주고는 기뻐하고 만족해 했을까?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그렇게 선뜻선뜻 내주었을까? 사실 동정을 받았다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까닭 없이 받은 선물은 유쾌치 않은 것이다.

  사랑과 사람이 인정으로 얼키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정이 오고 갈 때 불화 .시기 . 반목이 없는 평화 이해 협동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인정 없는 부자, 인정 없는 형제, 인정 없는 친구, 인정 없는 이웃은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