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道는 거문고 줄 고르듯이

알기 쉬운 불교

2008-01-06     관리자

  [1〕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자

  도를 구하는 사람이 닦아야 할 것이 네가지 있다.  자(慈)ㆍ 비(悲)ㆍ 희(喜)ㆍ사(捨)가 그것이다. 자(慈)는 사랑하고 가꾸고 키우는 것이다.  어버이가 자식의 모체가 되어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는 것처럼, 자(慈)를 닦아 가면 탐심을 끊게 된다.  비는 불쌍히 보고 돕는 것이다.  상대방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을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니 비를 닦으면 성나는 마음을 끊게 된다.  희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자기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니 희를 닦으면 자기와 남을 구별하고 집착하는 괴로움을 끊게된다.  사(捨)는 자기가 비록 착한 일을 하였다 하더라도 남에게 알아주고 보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은혜를 베풀고도 집착이 없고 원망스런 일을 당하고도 차별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여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또 많은 사람에게 다행스럽고 즐거운 기쁨을 주는 것을 대자(大慈)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없애 주고 괴로움에서 건져주는 것을 대비(大悲)라고 한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환희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대희(大喜), 모든 사람에 대하여 격의 없이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대사(大捨)이다.  이와같이 도를 구하는 사람은 자, 비, 희, 사의 네가지 큰 마음을 길러서 탐심과 성냄과 괴로움과 애착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마음이 더 나가기 어려운 것은 집을 지키는 개와 같고 착한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기는 숲속을 달리는 사슴과 같고 악심이 떠나기 어렵기는 돌에 쓰인 글자를 지우기 어려운 것과 같고 선심이 사라지기 쉽기는 물 위에 쓴 문자와도 같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2〕인욕선인

  옛날에 가리왕이 산으로 놀러갔다.  아름다운 동산에 이르자 많은 시녀들과 춤과 노래를 즐기며 한참 놀다가 왕은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시녀들은 무료하여 제각기 물을 따르고 꽂을 찾아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무밑에 선정에 들은 한 수행인을 발견하고 거기서 풍기는 거룩한 기품에 이끌려 모여들었다.  잠에서 깬 가리왕은 시녀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성이 나 찾다가 수행인을 둘러 싼 자기 시녀들을 발견하였다.  이를 본 왕은 노기가 치밀어 올라 칼을 빼어들고 물었다. 『너는 무엇하는 자냐?』『나는 인욕선인이요.』『그러면 이 칼로 쳐도 인욕하겠구나』하고 빼어든 칼로 수행인의 오른팔을 내려쳤다 팔은 칼을 맞은 나뭇가지처럼 떨어져 땅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수행인은 아무 말도 없다. 왕은 더욱 성이 나서 이번에는 왼팔을 내려치고 좌우의 다리를 내려쳤다.  그러나 수행인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 없고 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때 하늘에서 별안간 뇌성벽력이 울리고 주멱 같은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수행인의 몸이 이전과 같이 완전해 졌던 것이다.  왕은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수행인 앞에 엎드렸다.  수행인은 천천히 입을 말하였다. 『왕이여, 나는 당신에게 성을 낼 수 없오.  다만 당신의 죄를 불쌍히 생각할 뿐이요.  당신은 지금 쇠로 만든 칼로 나의 육신의 수족을 끊었지만 내가 깨달음을 이룬 날에 나는 자비의 칼로써 왕의 마음의 번뇌의 수족을 끊어주리다.』수행인은 지난날의 석가모니불의 모습이었다.

〔3〕공부는 거문고 줄 고르듯이

부처님 제자 슈라나는 부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그를 사랑하여 아무 고생 모르고 자랐고 그의 발바닥에는 털이 났었다고 전해지리만치 거의 부모의 무릎 위에서 컸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세간의 무상함과 부처님 법의 진실함을 알게 되어 크게 기뻐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출가하였다.  그의 발심이 순수한 만큼 정신도 또한 쉴 줄을 몰랐다.  얼마나 용맹스럽게 경행하였던지 그가 머물러 있던 땅에는 피가 흘러 있었다.  그의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용맹정진을 계속하였지만 아직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슈나라의 경행처 가까이에 오신 부처님은 슈라나의 정진 모습을 들어 알고 계셨다.  부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어 슈라나에 가까이 이르니 슈라나의 경행송경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괴로움과 슬픔과 피로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부처님은 슈라나가 이대로 가면 곧 퇴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슈라나에게 가서 말하였다. 『슈라나야, 너는 집에 있을때 무엇을 즐기고 있었느냐?』『예, 집에 있을때 즐겨 거문고를 탔습니다』『거문고 줄이 늘어졌을때 어떠하더냐?』『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그러면 줄이 되게 팽팽할 때 어떠하더냐?』『좋은 소리가 나지 않고 마침내 끊어집니다.』『거문고줄이 너무 캥기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아 적당하였을 때 어떠하더냐?』『아름다운 소리가 납니다.』『슈라나여, 도를 닦는 법은 거문고 줄과도 같으니라.  게을리 마음이 흩어지면 도를 얻을 수 없다.  또한 너무 긴장하여 심신을 과도하게 써도 도는 얻을 수 없으니라.  도닦는 사람은 완급 (緩急) 에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정도를 알아야 하느니라 하고 슈라나의 치우친 공부를 깨우쳐 주셨다.』 이 가르침을 들은 슈라나는 다시 마음을 새로이하여 공부를 지어갔다.  그의 마음에는 기쁨과 용기가 항상 잔잔했고 정신이 한결같게 나아가 이윽고 멀지않아 아라한과 (阿羅漢果) 를 성취하였다.

〔4〕마음을 비우라

  도는 형상이 없다. 도는 그것을 다만 안 것만으로는 이익이 없다.  도는 때와 처소에서 그 뜻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거울을 닦는 것과 같이 때가 벗겨지면 만상을 밝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탐욕을 버리고 청정을 지킬 때 도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생들은 죄를 짓기는 쉬워도 복을 짓기는 쉽지 않다.  도를 닦는 사람은 복을 짓기는 쉬워도 도를 행하기는 어럽다.  또한 도를 닦기는 차라리 쉬워도 도를 이루기는 어려우니 도를 말하기는 쉬워도 도를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