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편이 되어 행한다(利行)

특지 Ⅰ 보살은 이와같이 교화한다

2008-01-05     관리자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데는 네가지 방법을 써서 그들을 포섭한다는 것이다. 布施, 愛語, 利行,同事 이것을 소위 四攝法 이라 하는 것이다.

 보시라는 것은 남에게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는 물질적으로 주는 것도 물론이지만 그 보다는 정신적으로 주는 것을 더욱 높게 펴강 하는 것이다.

 金剛經에도 이런 말이 있다.
『金 銀 琉璃等 七寶를 가지고 한없는 세월을 한없는 중생들에게 주는 공덕도 크기는 하지만 四句偈 하나를 受特讀誦 하는 공덕에 비한다면 티끌하나에도 겨눌수 없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유한의 공덕보다 무한의 공덕이 크다는 뜻이다.

 물질로써 남에게 주는 것을 재시라 하고 정신면으로써 남에게 주는 것을 법시라하는 것이며, 또한 진리의 원리를 통달케 하여 그 마음의 두려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무외시라 하는 것이다.

 무엇 한가지라도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을 보시라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남에게 이익과 기쁨을 주는 동시에 괴로움에서 허덕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것을 덜어주든지 이에서 영영 해탈토록 하는 일이라면 모두가 보시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어라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남을 사랑하는 말씨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하루에도 수십단어의 말을 쓰고 있는데 거의 남을 해롭게 하는 말, 욕하는 말, 모함하는 말, 시기와 질투하는 말,속이는말, 남의 잘못을 흉보는 말, 대개 이런 말들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남이 잘되기를 願하는 말, 남을 尊敬하는 말, 남을 칭찬하는 말, 정직하고 자비스러운말, 부지런히 배우겠다는 말들은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것이 중생세계의 현실인 것같다.

 말이란 마음의 표시이기 때문에 말이 악한 것은 곧 마음이 악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부드러운말씨, 남에게 이익되는 말씨, 남의 장점을 칭찬하는 말씨, 부처님의 사상에 부합되는 말씨, 어리석은 무리들에게 밝은 슬기를 넣어주는 말씨, 이러한 말씨로서 중생들에게 기쁨을 주며 광명을 주며 부처의 바른길을 가르켜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은 利行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행동으로써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원한 인류문화사에 있어 영원의 생명을 가지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추앙과 칭송을 받고 있는 성자 위인들은 모두가 전 인류에게 길이 행복의 큰길을 열어 주었으며 일체중생에게 이익을 남겨준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익이 아니고서는 결코 위인도 될수 없고 성자도 될수 없다는 말이다.
 애디슨이 전기를 발명하여 인류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에 위대했고 四溟스님이 殺身成仁의 정신으로 救國一念의 어려운 길을 걸으셨기에 위대한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

 이행을 떠나 보살이 있을 수 없고 이행을 떠나 부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근본정신은 自利利他에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도 자리에만 급급하여 타리를 도의시 하기 때문에 거칠어지고 매말라지고 심지어 인간성을 상실하는 막다른 골목에 까지 치달리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타 그것은 곧 자리가 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소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사라는 것인데 즐거움도 남과 같이 하고 슬픔도 남과 같이 할 줄아는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사회참여에 솔선하여 대중과 같이 同苦同樂하고 호흡을 같이하는 가운데서 行願이 이루어 지고 인격이 陶治薰唱되도록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四가지, 이것이 중생을 포섭 교화하는 보살의 수단이며, 방법이며, 또한 이행의 원리인 것이다. 남을 돕고 구제하고, 괴로움을 덜어주고, 고달픈 것을 편하도록 하여주고, 어리석음에서 헤어나 슬기롭고 밝음의 세계로 인도하느 거룩한 정신, 이것이 부처의 정신이요, 보살의 소원이요, 불자의 할 일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있어 보시와 애어가 다르고 이행과 동사가 다른 것으로 생각해서는 커다란 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이행이 없으면 보시, 애어, 동사가 있을수 없는 것이며 동사가 없으면 애어와 이행과 보시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四가지 가운데 어느 한가지 라도 그 속에 네가지가 다 들어 있는 것이며, 어느 한가지를 실행하자면 자연히 네가지가 동시에 같이 실행하는 것이다.

 이행이라는 이 한가지 속에 방법上으로 네가지를 나누어 놓았을 뿐 걸코 네가지가 따로 따로 분리될 수 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은 너무도 어리석고 너무도 어둡고 너무도 무지하다.
 어리석고 어둡고 무지한 이것을 밝은 슬기로써 깨달은 이것이 보살이요, 부처인 것이다.

 또한번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길을 올바로 걷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 사회에 이익을 줄수 있는 사람, 남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생각하는 사람, 성내지 않고 항상 고운 말씨로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이행의 길을 실천하는 보살이라고 생각했야 될 것이다.

 흔히 커다란 이행, 힘에 벅찬 이행만 利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내 힘에 알맞는 대로 작은 일 한가지에라도 그 정신의 뿌리가 利他에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훌륭하고 거룩한 利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