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 내고향

禪의 古典 (31) [ 人天寶鑑]

2008-01-05     관리자

 [ 1] 증오지법사(證悟智法師)  

 증오지법사는 태(台)의 임(林)씨 아들이다. 어려서 부터 민첩했고 매우 총명하였다. 대개 책을 볼때 눈이 한번 지나가면 모두 외웠다. 의학이나 점복술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통달하였다. 하루는 절에 찾아갔다가 마침 관무량수경을 강설하는 것을 만났다. 그리고서 깊이 그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탄식하여 말하기를 [ 해가 지는  곳이 나의 고향이로다. 이제 이 설법을 들으니 가서(家書)를 얻은 것과 같도다 ]하고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맹세코 조사의 가르침을 닦는데 힘썼다.

 한번은 백년선(白連僊) 법사 회상에 머무르면서 변화를 갖춘 도리를 물었다. 선법사가 등(燈)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 성품을 여의고 일체 아님(非)을 끊었다. 본래 스스로 구족하며 이치를 함께 갖추었느니라. 육범사성(六凡四聖)이 보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은 이것이 곧 변화가 있는 것이다 ] 하였다. 지법사는 이말에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후 땅을 쓸며 청소하면서 법화경을 외다가 [ 지법상무성 불종종연기(知法常無性 佛種種緣起)] 에 이르러서 활연히 깨쳤다. 선법사는 말하기를 [ 그대가 큰 일을 해 마친 것을 기뻐한다. 법화지관(法華止觀)은 이것으로 요긴을 삼느니라. 그대는 능히 깨달아서 참으로 세밀하고 묘한 곳에 이르렀다.]하였다.

 이로부터 마음이 활짝 열려 많은 사람을 인접하였다. 잠은 五일만에 한번 잤고 나머지는 힘써 도를 닦았으며 오직 미치지 못한 것을 두려워 하였다. 동산(東山)에 들어가 24년을 지내는데 그사이에 제방 학도가 그와 변론하여 감히 당한 자가 없었다. 사는 평소에 걱정하기를 새로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론이나, 형상에 매달리고 글자나 문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한 종파의 경전을 가지고 학문을 삼고 다른 종은 업수이 여겨 무시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의 문도들에게 강조하기를 [ 부처님께서 진정진(眞精進) 을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지 않느냐? 이 일구(一句)가 향상의 기연이니라. 어찌하여 이일을 가장 급한 일로 삼지 않느냐] 하였다.

 그후 상축(上竺)을 맡게 되었다. 그때에 승상 진공(秦公)이 물었다. [ 지관(止觀)은 일법(一法)입니까? 이법(二法)입니까?

 [ 일법(一法)입니다. 이것을 물로 비유를 들면 잠잠히 맑은 것은 지(止)이고, 그림자를 밝게 비추는 것은 관(觀)이나 물은 오직 하나일뿐. 또 병(兵)과 같아서 부득이 하여 이것을 쓰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마음이 어둡고 산란한 까닭으로 이 병을 고치고자 지관의 약을 써서 그 심성(心性)을 구제하여 전일체(全一體)로 만들어 법계를 고요하게 하는 것이 지이고 고요하여 항상 비추는 것을 관이라 합니다. 만약 그 지를 오로지 한다면 다시 무슨 관이 있으리까. 공이 정당하고 홀(笏)을 반드시 하고서 묘당에 앉아서 군대를 움직이지 아니하고 천하를 흥왕하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요]하였다. 공은 기뻐서 말하였다. [ 스님이 아닌들 어떻게 불법의 묘한 도리를 알겠사오리까]      

 * 육범사성(六凡四聖)..........十계를 나눈 말이다. 육범이라 함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범부들이 사는 六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미(迷)의 세계다. 사성이라함은 성문, 연각, 보살, 불을 말함인데 이것은 깨달은 경계다.

 [2 ]  동산(東山) 능행인(能行人)     

 동산 능행인은 교(敎)와 관(觀)이 명백하여 오로지 힘써 닦았다. 한번 참실(讖室)에 들어가서 추위에도 더위에도 한결같기를 40년, 그래서 행인(行人) 이라고 불리웠고 그 이름은 강절(江浙)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스스로는 한번도 수행자라고 하지 않았다. 말하기를 [ 지자(智者)대사께서는 六시에 예불하고 四시(時)로 좌선하는 것을 수행의 향상된 의범으로 삼았는데 나는 별것이 없다 ]하였다.

 한번은 초암(草庵) 인(因)법사와 함께 가까이서 지냈다.  그의 일상이 단정하고 근엄하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 혹 병이 나면 다만 며칠씩 밥을 먹지 않았는데 그래도 일상의 선송(禪誦)을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그러는 중에 병은 저절로 나았다. 행인은 사람됨이 굳세고 결백하였다. 명리(名利)를 싫어하였다. 대개 물건을 얻었으면 곧 대중에게 나누어주고 조금도 남겨둠이 없었고 가진 것은 다만 헤진 누더기 뿐이었다. 여름에는 대껍질을 줏어모아 이것으로 겨울의 추위를 막았다. 그리고 자주 산에서 호랑이와 친하였어도 호랑이는 해치려 하지 않았다. 비바람 부는 깊은 밤에 무덤 사이에서 참선하여 심신이 안정하였고 조금도 두려워 함이 없었다. 그가 머문 절에 산신이 있었는데 그 산신이 그 지방을 교화하였고 행인과는 항상 통하는 바가 되었다. 그래서 혹 양식이 떨어지게 되면 절의 원주는 반드시 능행인에게 알렸다. 능행인은 잠시 기도 하면 다음날에 시주(施主)들이 문이 좁도록 밀어닥쳤다. 그래서 그절 승이 어찌된 까닭이냐고 물으면 시주들은 말하기를 [ 지난 밤에 집집마다 돌며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 절에 양식이 떨어졌다] 하기에 이에 우리들이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3]  장평숙(張平叔) 진인(眞人)   

 선도를 닦는 장평숙은 청허(淸虛)를 즐겼다. 단구(丹丘)에서 정여빈자(頂汝貧子)를 만났는데 그는 지고 있는 용마도(龍馬圖)를 평숙에게 내어보였는데 평숙은 그 뜻을 알았다. 용마도는 하늘의 운수를 적은 미래기(未來記)로서 그에 의하여 국가의 미래와 변천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평숙은 오래지 아니하여 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 나의 몸이 비록 단단하다 하나 아직 본각(本覺)의 성품을 밝히지 못했다] 하고 경전을 공부하였는데 능엄경에 이르러서 깨쳤다. 그리고서 오진편(悟眞篇)을 지었고 또한 선종가송(禪宗歌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서문 중에 말하기를 [ 능엄경에 열가지 신선이 있어 그 수명이 천만살이기는 하나 정각을 닦지 아니하면 과보가 다하매 환생하여 六도윤회를 받게 된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또 말하기를 [ 이 길에 뜻하는 자는마땅히 마음이 태허(太虛)하여 내외가 여일(如一) 하여야 한다. 만약 한 티끌이라도 새움이 있으면 곧 그르치게 된다. 이 도리는 참으로 말로 전할 수 없는 묘(妙)이다. 금강(金剛). 원각(圓覺)의 두 경을 밝게 알면 곧 금단(金丹)의 뜻이 저절로 밝아지니 어찌 도교와 불교를 분별할까 보냐 ] 하였다. 이로써 알지라. 평숙이 생사에서 뛰어나는 법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불법에 의지해서 마지막을 삼었다는 것을.   

 *   참실(懺室)   ...참회법을 행하는 집이다. 참회는 청인(請忍),용인(容忍)의 뜻으로 앞사람이 나의 죄 뉘우치는 것을 인용함을 청하는 것이다. 또는 회과(悔過)라고도 한다. 참은 지나간 허물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회는 과거를 고쳐 미래를 닦는다는 뜻이다. 

 [ 바로잡음] 전호 통권 32의 선의 고전 위산 우선사 章 끝머리의 [ 제가 이 산을 지키는 사람은 항상.....운운]한 것을 [제가 이 산을 지키는 것은 다름아닌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서입니다]로 바로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