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녕사

한국의 고적/ 신라九山禪門址를 찾아서(9)

2008-01-04     관리자

 흥녕사는 폐사된지 오래이어서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없으며 옛 절터가 현재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수주면(水周面) 법흥리(法興里)에 남아 있다. 산호(山號)를 사자산(獅子山)이라 하고 신라 憲康王때 (875~886) 도윤(道允)대사가 개산하였는데 실제  도량을 창건하고 법문을 전한 이는 대사의 수제자인 징효(澄曉)대사로서 이 대사를 곧 사자산맥(獅子山脈)의 개산인(開山人)으로 추앙하고 있다.

 현재 옛 법당지를 중심한 일대는 경작지로 변하여 밭 갈 때는 기왓장이나 고려청자 등이 출토되며 사방에 주초석과 축대석 또는 장대석이 흩어져 있음이 보인다. 이 절터에서 서북쪽으로 동떨어진 곳에 징효대사보인탑(澄曉大師寶印塔)과 탑비가 서있고 이곳에서 동북쪽 산중턱으로 올라가면 현(現) 법흥사(法興寺)가 중창되어 있다. 법흥사에는 특히 적멸보궁이 설치 되었는바 여기에는 석조부도(石造浮屠) 一基와 석관(石棺)일좌(一座) 그리고 석실(石室)이 남아있어 주목된다.

 탑비는 비신(碑身)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완형(完形)으로 현재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형식은 귀부(龜趺)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신라, 고려시대의 전형적 석비(石碑)이다. 비문(碑文) 말미에 [ 天福九年歲在甲辰六月十七日立]이라 있으니 고려 혜종(惠宗) 六년(九四四)에 입비(立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문의 내용으로는 [ 龍德四年] 즉 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비문이 완성 되었는데 당시 신라말의 국가 다사시(多事時) 이어서 二기를 지나 천복(天福) 九년에 입비(立碑)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이 보인탑(寶印塔)에서 약간 떨어진 산기슭에 부도 일기(一基)가 있으니 필자는 수차 이곳을 답사, 유적 유물을 조사하여 이것을 징효대사의 부도인 보인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부도는 팔갈원당형(八角圓堂型)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옥개에 약간의 파손이 있을 뿐 각부가 완전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하대석(下臺石)은 팔각의 안상석(眼象石)과 복련대(伏蓮臺)로 이루어지고 중대(中臺)는 양주(兩柱)가 있으며 상대석은 양련(仰蓮)으로 측면을 장식 하였다. 탑신은 팔각의 고복형(鼓腹形)인바 각면에는隅柱 등 별다른 조각이 없고  다만 前 後면에 태조 양각(太彫 陽刻)으로 문비(門扉)가 모각(模刻)되었다. 옥개에는 전각마다 귀꽃이 장식되고 정상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팔각간석(八角竿石)과 보개(寶蓋) 보주(寶珠)를 받고 있는데 보개에는 전각에 귀꽃이 조각되어 있다.

 석실(石室)과 석관(石棺)은 적멸 보궁 바로 뒤의 높직한 축대위에 위치하였는데 석실은 봉토가 있어 석분(石墳)이라 할지 혹은 석굴(石窟), 토굴(土窟)이라 칭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석관(石棺)은 장방형(長方形)이며 뚜껑까지 있다. 석조, 부도 일기(一基)는 팔각원당형으로 상하 앙복련대(仰伏蓮臺) 위에 탑신을 안치하였는데 문비와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이 조각되었고 이들의 조성은 모두 고려시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