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에 대하여

특집 Ⅰ 출가

2008-01-04     관리자

 출가란 편안하고 한가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요, 따뜻하고 배부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요 도업(道業)을 이루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출가는 심신(心身)이 다함께 출가하여야 한다.

 출가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안식처요 사랑의 보금자리라 할 만한 자기 가정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나가는 것을 출가라고 하겠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농촌의 청년과 처녀들이 서울이 살기 좋고 일자리가 많이 있다는 부황한 말을 듣고 농촌을 떠나서 서울을 향하여 올라오는 것도 출가의 하나요, 참답게 살던 주부가 가정의 빈곤과 불화로 인하여 아무 말도 없이 가정을 버리고 나가버리는 것도 출가에 속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학생이 분에 지나친 요구를 하다가 어른에게 꾸중을 듣고 집을 나가는 것도 출가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나가는 사람도 고생이 막심하겠지만 집에 남아있는 사람의 고충도 여간이 아닌 것이다. 신문지상에 사람 찾는 광고를 보면

「막연하게 고생만 하지 말고 하루속히 돌아오너라. 너 때문에 집안이 난가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애기가 보채는 꼴을 볼 수가 없어요. 아버지도 개심하고 다시 그러지 않는다고 하시었어요.」
「네가 돌아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여 줄 터이니 고생만 하지 말고 하루속히 돌아오너라.」

 사진을 내고 나이와 이름을 밝히고 현상금을 걸고 사람을 찾는 광고에 이러한 애절한 문귀가 써 있는 것을 볼 때에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또 집을 나간 사람도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니 출가는 인생의 비극인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부모를 하직하고 처자를 버리고 아주 세상 생활을 떠나서 중이 되는 출가이겠는가? 불교의 종단으로서는 도제가 늘어나니까 좋은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속가의 가정으로서는 비극인 것이다. 그나마 옛날 중국의 양개(良介) 화상 사친서(辭親 書)의 내용과 같이 신심이 장하고 불교에 이해가 깊은 그 어머니의 너그러운 이해와 출가도중생(出家度衆生)의 서원이 깊고 각오가 굳은 그 아들의 결심과 같은 출가는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일시의 호기심이라든가 절간생활이 호화롭고 한가하다는 안일을 취하여 출가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고인들이 말씀한 거와 같이 출가는 편안하고 한가한 것을 구함이 아니요, 따뜻하고 배부른 것을 구함이 아니요, 도업(道業)을 이루어서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사미수계의식(沙彌受戒儀式)에 보면 부처님께 출가를 발원하되,
 대성존에게 귀의하옵는 것은 능히 삼(三)도<지옥아귀축생> 고를 빼주고,
 또는 모든 중생과 같이 무위락(無爲樂)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歸依大聖尊(귀의 대성존) 能拔三途苦(능발삼도고)
 亦顯;諸衆生(역현제중생) 普入無爲樂(보입무위락)

 또 국왕에게 허락을 구하는 송에는, 위로 네가지 중한 은혜를 갚고 아래로 삼(三)도고를 건지려고, 출가하여 착한 도를 닦고자 하오니, 국왕께서는 불쌍히 허락하여 주소서.
 上報四重恩(상보사중은) 下濟三途苦(하제삼도고)
 出家修善道(출가수선도) 國王哀聽許(국왕해청허)

 이러한 것이 있고 또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데는,
 삼(三)계 가운데 굴러다니다가는
 은정애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은혜를 버리고 무위도에 드는 것이,
 참으로 은혜를 갚은 것인가 합니다. 
 流轉三界中(유전삼계중) 恩愛未能脫(은애미능탈)
 棄恩入無爲(기은입무위) 眞實報恩者(진실보은자)

 또 다시 부모에 간청하는 송귀에,
 가령 은정애정에 걸려 한집에 살더라도,
 때가 닥치면 목숨이 마쳐 이별하는 것이라.
 이러한 무상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내가 이제 해탈을 구하는 것입이다. 
 假使恩愛久共處(가사은애구공처) 時至命終有離別(시지명종유이별)
 見此無常須臾間(견차무상수유간) 是故我今求解脫(시고아금구해탈)

이러한 것이 있다.

 또 머리를 깎는 송귀에는,
 보전의 주인이 되어 꿈속에 있을 때에,
 무명의 풀이 몇 해나 무성했던가 이제 칼날을 들고 머리를 깎아 내리니,
 한없는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네. 
 寶殿主人曾作夢(보전주인증작몽) 無明草茂幾多年(무명초무기다년)
 今向金剛鋒下落(금향금강봉하락) 無限光明照大天(무한광명조대천)

이러한 글이 있다.

 그리고 중의 이름을 받는 송귀에는,
 장하도다 대장부여,
 세상이 무상한 것을 요달하고
 속세간을 버리고 열반세계에 나가니,
 회유하고도 헤아리기 어렵도다.
 善哉大丈夫(선재대장부) 能了世無常(능요세무상)
 棄俗就泥O (기속취이O)  希有難思議(희유난사의)

 또 가사를 받아 메는 송귀에는
 장하도다. 해탈하는 의복이여,
 다시 위없는 복밭의 옷이로구나.
 내가 이제 이마로 받아서 몸에 걸침이여,
 세세생생이여, 항상 입어지이다.
 善哉解脫服(선재해탈복) 無上福田衣(무상복전의)
 我今頂戴受(아금정대수) 世世常得被(세세상득피)

 이러한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과 미륵불과 십(十)방 제여래와 십(十)방 제보살과 석범제천 중을 청하여 육사(六師)를 삼고 그 다음에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등 오계를 받아서 지키기를 다짐하고 중이 되는 것이다.

 속인으로서 출가를 하는 데는 이러한 의식의 오계를 받고 또 팔을 불로 지져 뜨는 맹서를 하고 중이 되는 것이다. 어린 사미가 아니고 성년이 된 사람으로서 말귀를 알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무상을 각오하고 이러한 수계의식을 거쳐서 중이 되었다면 그 감격한 것을 이루 입으로 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염불을 배우고 불경을 배워나갈 때는 신비한 감상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가승도 일종의 생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금욕생활을 하다가 보면 다시 세상이 그리워지고 이성에게 마음이 끌릴 수도 있어서 몸은 출가 하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나가 있기가 쉬운 것이다. 이것을 일러서 몸은 출가하여 승복을 입었으나 마음은 출가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출가한 재가신자가 있으니 이네들은 몸은 비로 세상에 있으나 마음은 항상 산에 가서 있고 절에 가서 있기 때문에 재가 생활을 하면서도 삼보에 귀의하여 불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하고 염불을 하고 독경을 하고 참선을 하는 이가 있다. 이러한 신자가 오히려 아무 말썽이 없이 수도를 잘하는 것이니 거사 오계만 받고 재가생활을 하는 이들이다. 이것을 일러서 심출가(心出家)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