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출가(出家)

특집 Ⅰ 출가(出家)

2008-01-04     관리자

 그는 삶의 문제를 삶의 향유에서 해결하려는 길을 택하지 않고 삶의 온전한 초극을 통해서 해결하는 길을 택하였다. 삶과 죽음의 운명을 근원적으로 뛰어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고다마 싣달타는 약 2천5백여년 전 북인도(北印度), 지금의 네팔 근처에 위치한 카필라성의 왕자로 출생하였다. 그의 출생에 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경전을 보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운명을 지녔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당시 인도의 관습에 따라 친정에 돌아가서 아기를 출산하려고 길을 떠났다. 수레가 녹야원 기슭에 당도하였을 때 마야부인은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놀란 시녀들이 무우수(無憂樹)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주위를 옷으로 가리웠다. 마야부인은 곧 아기를 출산하였다. 이렇게 해서 싣달타는 궁전이 아닌 사슴동산에서 출생하였다. 불행하게도 마야부인은 싣달타를 낳은 지 칠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에 싣달타는 그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의 손에 의해서 길리워졌다. 그의 이모는 정성을 다해서 아기를 길렀다. 그러나 싣달타는 영영 그의 생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고 생모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볼 수가 없었다.

 본시 사색적이었던 싣달타는 자라면서 외로움을 느꼈고 외로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더 깊은 사색과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는 그의 생모가 그리웠고 또 생모가 너무도 가엽게 느껴졌다. 그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인도에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농사를 권장하는 경운제(耕耘祭)라는 국가적 행사가 있었다. 소년 싣달타도 그의 아버지를 쫓아서 행사에 참석하였다. 강렬한 햇빛아래 여윈 농부와 소가 힘겹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농부가 쟁기로 밭을 일구자 거기서 벌레들이 짤리워져 나왔고 이것을 본 새들이 다투어 그것을 먹었다.

 하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 싣달타에게는 이것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커다란 충격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였다. 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서로 잡아먹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인가!

 소년 싣달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일체 중생의 회피할 수 없는 운명성을 절감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홀로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겼다. 가뜩이나 생모의 죽음에 대해 커다란 연민을 느끼고 있었고 또 죽음의 문제에 고뇌(苦惱)하던 싣달타에게 삶의 비극적 실상이 느껴지자, 그는 앞뒤가 꽉 막히는 듯 한 괴로움을 느꼈으리라. 뒤늦게 왕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한 정반왕은 사방으로 그를 찾아보았다. 결국 나무아래 조용히 앉아있는 그를 보고 크게 기뻐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의 너무도 경건한 모습에 불안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의 출가를 예언한 아지타 선인(仙人)의 말이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궁에 돌아온 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어떻게 하면 왕자로 하여금 출가할 뜻을 버리게 할 수 있는가 하고. 어떤 신하가 말하기를 모든 세속락을 즐기게 하면 아마도 출가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를 옳게 여긴 왕은 곧 세 개의 궁궐을 지었으며 그곳에 아름다운 소녀들을 배치해 놓았고 기이한 꽃과 짐승들을 길러 그 속에서 마음껏 유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과연 이것은 얼마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싣달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의문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속적 쾌락은 그에게 즐거움을 주기 보다는 고뇌를 더하여 주었다. 그의 나이도 어언간 스물아홉이 되었고, 아름다운 부인 야소다라로부터 라후라라는 아들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였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기 위해서 궁문 밖을 나가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또 한번 큰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즉 늙은이와 병든 자와 죽은 자를 보게 된 것이다. 지금껏 그의 곁에는 언제나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있었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 억눌려진 채 있었고 이것이 분출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 사건을 만나면서 더 이상 궁극적 의문이 억제될 수가 없게 되었다. 그의 출가의 결심은 굳어졌다. 최후로 그는 출가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그는 그가 걸어야할 길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오랜만에 기쁨으로 충만 하였다. 그는 기쁜 모습으로 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에 어느 다락방에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그 처녀는 자기도 모르게 찬탄하였다. 「저와 같은 아들을 둔 어버이는 행복하리라. 저와 같은 지아비를 둔 아내는 참으로 행복하리라」싣달타는 곧 그에게 가서 자기의 목에 건 목걸이를 선사하였다. 그 처녀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싣달타의 기쁨과 그 처녀의 기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처녀의 행복은 세속적 욕망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것이었고, 싣달타의 행복은 세간을 근본적으로 뛰어날 길을 얻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싣달타는 궁에 돌아와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한밤중이 되었다. 조용히 일어나서 마부 차익이를 깨웠다. 그리고 길을 떠날 차비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최후로 그는 아내의 방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아내는 아들 라후라를 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싣달타의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가여운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드디어 그는 말을 타고 성문을 뛰어넘었다. 말도 그의 뜻을 아는지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뛰었다. 성으로부터 멀리 왔음을 확인한 싣달타는 말에서 내려 그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리고 그의 몸을 장식한 여러 가지 보물을 모두 떼어서 마부에게 주었다. 왕자의 복색도 벗어 주었다. 이제 그에게는 세속적인 모든 꾸밈이 벗겨져 나갔다. 그의 마음은 참으로 시원하였다. 그의 몸에서 번거로운 장식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세속에 대한 모든 애착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모든 미움과 사랑이 그를 더 이상 얽어 맬 수 없게 되었다. 천상이든 천하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이 되었음과 동시에 천상천하에 구속될 것도 없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는 외롭고 외로운 길을 홀로 걸었다. 그는 외로움을 관연(關緣)속에서 해결하려한 것이 아니라 더욱 철저한 외로움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또한 그는 삶의 문제를 삶의 향유에서 해결하려는 길을 택하지 않고 삶의 온전한 초극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통해서 삶을 회피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운명을 근원적으로 뛰어 넘는 길을 택하였다. 그는 삶과 죽음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 드리는 길을 택하지 않고, 이 운명과 철두철미하게 대결하는 길을 택하였다.

 그는 중생에게 가능한 길을 택하지 않고 전혀 불가능한 길을 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택한 길에서 결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고 그가 택한 길에서 완전히 승리함으로서 전혀 불가능한 길을 가능한 길로 만들어 놓았다. 또한 그가 열어 놓은 길은 그만의 길이 아니요, 일체 중생의 길이였다. 이것이 인간 불타가 보인 출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