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신비

부처님 나라 순례기

2008-01-04     관리자

 인도 동북부를 목적으로 했던 나의 여행은 칼카타를 끝으로 어언 끝나는 셈이다 나는 11월 14일 밤기차를 타고 비하르(Vihar)주의 수도인 빠트나로 향하여 떠났다 왜냐하면 육로(陸路)로 인도의 국경을 넘어 네팔(Nepal)로 갈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빠트나는 힌두교의 성지이자 교통의 요지이기도하다. 이곳에서 네팔에 가기위해서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차편으로 가자면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약 1시간 가량 북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기차로 국경까지 가야했던 것이다.

 국경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도시, 락소르에 도착했을 때는 밤12시가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예의 대합실에서 이불을 펴고 다음날 새벽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뜨거운 차 한잔을 사 마시고 마치 편안한 안방에서 하듯이 배를 깔고 업디어 고향에 편지를 썼다.

 인도쪽에서 카투만두행(行) 네팔의 버스 좌석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약2KM 의 거리를 걸어 국경에 이르렀다. 인도인과 네팔인은 아무 장애없이 마음대로 국경을 왕래하는데 제 3국인은 예외였다.  인도측 국경초소에서 간단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약 100M의 간격을 걸어서 네팔측 초소에서 입국수속을 했다. 다음에는 바로 옆에 설치된 간이은행에서 돈을 바꾸었다. 그리고 약 200M가량 걸어갔더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6시에 떠난다던 버스는 9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버스는 한없이 깊고 웅장한 산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이 장엄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런지 몰랐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은 풍경을 바라보고도 감상에 젖어 모든 감탄사를 다 희롱했으니 나의 경솔함이 뉘우쳐질 따름이었다. 나는 오로지 침묵을 하고 해발 7,620피트의 담망(Daman)고봉을 넘었다.

 바로 그때 하얀 눈을 머리에 인 히말라야 산맥이 신비스럽게 자태를 나타내었다 . 석양의 태양에 반사하여 엷은 분홍빛을 띠우고 있었는데 나의 황홀한 감정을 더욱 격앙시켜 주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고 다만 그 앞에 꿇어업디어 경배하고 싶었다. 대자연이 드러내 보여주는 가장 장엄한 메시지를 계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감격이야말로 나의 일생을 두고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밤 10시가 가까이 되어 카투만두시에 도착했다. 너무 어두워 도시의 윤곽도 인상도 갖어 볼 수 없었다. 나는 위치를 물어서 스망글라스 스님이 계시는 절에 찾아갔다. 인도에서 면식이 있었던 스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어 하루종일 버스에 시달린 피로를 풀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절구경을 했는데 경내에 간단한 의료시설을 구비하고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고 겸하여 학교도 운영을 했다. 불교를 앞세워 입으로만 불타의 사상과 가르침을 논하는 여느 불교국 보다도 사회에 보시하는 승가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았다. 불타의 생생한 손과 발이 되어 있었다.

 카투만두의 하늘은 파랗고 아름다우며 훤칠한 산들이 아름다우며 공기가 하도 싱그러워 하늘에 와 닿은듯 했다. 카투만두 시가의 건축물들은 모두가 지붕이 넓은 종탑(鍾塔)처럼 생겨서 고산지대에 숨겨진 동화의 나라와도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한 사원에 살아있는 여신을 모셔놓고 있다. 6.7세가량의 여자아이들 가운데서 코브라같은 무서운 짐승을 두려워하지않고 어느정도 전생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지혜가 뛰어난 아이를 뽑아 신전(神殿)에 넣어 살게하는 것이다. 그 신은 일년에 한차례 외출이 허락될 뿐 갇혀사는 형편이다. 그러다가 14.5세가 되면 풀려나오지만 일생을 독신으로 살게되는 것이다. 신비스러운 색채로 얼굴을  장식하고 있어서 소름이 끼칠만큼 신적(神的)외경을 느끼게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 배후에 그늘진 슬픔을 통해서 탄식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네팔에는 힌두교와 불교가 함께 성하고 있지만 서로 혼동될만큼 탄트리즘의 특질이 어느 쪽에나 짙게 스며있다. 특히 남녀의 성기(性器)숭배가 뚜렷하여 사원의 기둥이며 벽면에는 성교(性交)의 모습들이 그려져 신성시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탄트릭부디즘(Tantric Buddhism0이 형성된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이곳 히말라야 산록에는 또한 탄트릭,요가(Tantric Yoga)의 고장이기도 하다. 정신과 육체가 통일되는 하나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것이고 성(性)은 생명의 선비를 품고있는 샘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네팔인들은 도덕적으로 서구인들 보다 타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적으로 건전하고 씩씩한 것이다 그들은 키가 작지만  용감하기로는 인도전역에서도 이름난 종족이다. 그들은 영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서구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민족이다. 그들은 네팔의 자연처럼 상쾌하고 친절하며 부지런하다. 구르카(Gurka)칼[刀]은 곧 그들의 용감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네팔에는 자연이 전하려는 때묻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 그들은 정신과 육체를 쪼개지 않고 서구인들처럼 문명에 의해서 창백해지지 않았으며 교회(敎會)에 가서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정직한 것이다. 나는 마치 짜라뚜스트라( 니체의 저서에 나오는 聖者. 超人의 德을 가르침)의 고향이며 정신의 고향에 찾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물밀듯이 밀려드는 구미(歐美)인들이 이곳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네팔인들의 시각을 오염시키고 있다. 네팔인들은 가짜양주를 만들고 거짓말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지혜를 많이 뫃은 성자(聖者)를 종종 내려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