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茶室)

2008-01-03     관리자

   ♣ 지난 5월 27일이 음 4월 보름, 올해의 하안거 결제날이었다. 안거는 부처님께서 정해 주신 특별수행의 기간이다. 출입 왕래를 끊고 한 곳에 머무르며 오직 도를 구하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 불법은 원래로 학문이 아니고 이론이 아니다. 철저한 깨달음의 종교이고 행(行)의 종교이다. 그런 만큼 안거수행의 핵심도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핵심이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불교도 안거 정진으로 법맥이 계승되어 온다고 하여도 큰 망발은 아니리라. 안거 정진이 없는 곳에 깨달음도 깨달음의 행도 있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안거 정진은 물론 출가한 스님들의 수행 규범이다. 재가불자들은 그 수행을 외호하는 것이 안거의 참여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정을 지키고 사업을 지키고 사회를 지켜 가자니 안거 정진이란 어림도 없다. 그러나 부처님법이 깨달음의 가르침이고 깨달음의 행이고 일체 중생의 길일진대 재가불자가 어찌 이 대열에서 제외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예부터 이 안거 기간을 온 불자의 수행기간으로 삼아 온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재가불자가 비록 안거에는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출가 수행자를 외호하며 정진에 동참한다. 그리고 안거기간을 특별기도 기간으로 삼아 힘따라 수행한다. 이것은 우리 한국불교의 내력이고 길이 후일에 물려 줄 귀중한 법도다. 우리 모두 마음을 가다듬자. 음 7월 15일까지의 석 달을 우리 모두의 진지한 성장의 기간으로 삼자. 아침 한 시간을 앞당겨 일어나서 염불 독경 기도하자. 좌선도 좋다. 오직 진실한 자기의 면목을 밝히기 위하여 깨달음의 가르침을 힘써 닦아가자. 우리들의 수행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결실로 성장하고 한국불교의 전통의 축적으로 결실되며 깨달음의 꽃을 꽃피울 밝은 미래를 기약할 것이다. 출가 스님들의 정진 한결같음을 기원하며 불자 모두의 보리가 크게 성숙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경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마갈타국에 계실 때인데 어떤 부락에서 탁발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많은 스님들이 부처님을 앞뒤하여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에 큰 산불이 났다. 불꽃은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갔다. 이것을 본 스님 가운데는 놀래어 허둥대는 사람이 있었다. 불길이 퍼져서 위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맞불을 지르자」소리 지르며 맞불 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맞불이란 산불 꺼본 사람은 아는 일이지만 불이 붙어 오는 반대쪽에서 불길을 끊어 놓고 미리 그 지대에 불을 놓는 것이다. 그래서 불길을 거기서 멎게 한다. 그런데 그때의 비구는 맞불을 질러 타고 나면 그 자리로 피신하고자 하는 비상수단의 맞불이었다. 이것을 보고 있던 동료비구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해를 보지 못하는가, 달을 보지 못하는가, 바다를 보지 못하는가, 수미산 밑에 있으면서 수미산을 보지 못하는가,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왜들 허둥대느냐? 다들 부처님 곁으로 가자.』
   그래서 멀리 있던 비구들은 모두 일제히 부처님 곁으로 갔다. 산불은 여전히 맹렬한 위세로 쫓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사납게도 번져 오던 불길이 부처님 계신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이르자 꺼지고 말았다. 마치 물속에 던져진 횃불을 연상케 했다. 다들 안전을 기뻐하며 부처님의 공덕, 부처님의 신통력을 찬탄했다. 경에는 부처님의 설법이 이어진다.
   부처님, 저때는 현신인 부처님을 뵈올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재난을 당하면 어떤 부처님을 찾아갈까? 부처님은 원래 법신이라 하셨다. 항상 머무는 몸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어느 곳인들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있을까. 다만 부처님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한 것뿐이다. 부처님은 오고 가는 거래가 없으시다. 어려움을 만나기 전에「나무불」하고 부처님 곁에 함께 있자. 부처님 국토는 원래로 재난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