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반야심경 강의 5

성전강의실(5)

2008-01-03     관리자

 마하 반야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 일채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 제법공상 불생불명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 수상행식 무 안이비설신의 무 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 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 노사진 무 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 삼먁 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 대신주 시

대명주 시 무상주 시 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 주 즉설 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三說)

 

다음에 제3의 멸고법은 方便般若에 의한 멸고법이다.

이것은 멸고법이라고 하기보다 적극적인 소망성취에 따른 反射的인 멸고다.

그것은 인간실상이 무상이며 무량공덕이라는 확정된 신념의 기초 위에서 현상적인 부자유를 마음에 두거나 그를 쫓거나 그에게 벗어나고저 하는 생각이 없어,  오직 자신이 목적하는 목표의 완전한 실현상을 구체적으로  確念한다.

이 完成像의   確定이 所望 實現의 模型이 된다. 

그리하여 이 완성상을 확정적 신념과 강렬한 집념과 끊임없는 追求行으로 뒤받침할때 漸次 그 소망는 현상 위에 현전된다.

이것이 법부의 소망 성취며 바라밀의 방편적 운용이다.

이 방편반야에 의한 소망 성취는 적게는 個個 고난의 해결과 현실적 소원의 성취에서 부터 사회와 역사를 변혁하고 지상에 평화와 번영을 구현하는 등 널리중생의 성숙과 국토의 정화를 위하여 활용되어야 한다.

이상 제 가지 멸고내지 소망의 성취법이란 필경 인간에 현존하는  [바라밀]의 공덕을 활용하고 범부적 현상 위에 바라밀의 片面을 露出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具眼之士는 수긍할 것이며,  또한 이것이 중생계에 있어서의 무한한 창조원리라는 사실도 알 것이다.

하여튼,  중생계의 창조라는 것은 크건 작건 그것이 현상계의 구체적 현실로 등장하는 데는 不和不識間에 이와같은 창조법칙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13]  바라밀 수용의 기초요건

   전철에서 반야운용에 의한 바라밀 공덕의 수용방법을 말하였거니와 이는 반야관이다.

   이 반야관에 의하여 소망을 이루고자 하면 몇가지 기초되는 행이 앞서야 한다. 이 기초행이  缺如된 바라밀 수행법은 사상누각이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설사 강력한 念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소망을 이뤘다 하더라도 곧 전복된다.   진리의 뒷받침이 없는 성공이란 幻夢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반야의 기초행인가?  다섯을 들겠다.

   제1,  보리심을 발할 것.  청정본심을 내는 것이다.  이곳에는 彼我가 있되 彼我가 아니다. 진정으로 일체를 사랑하고 그가 진리대로 성숙할 것을 원하고 그의 이익을 생각한다.

   제2,  불보살을 공경하고 또한 이웃들을 공경할 것.  그리고 감사할 것.  만약 불보살을 예배 공경한다 하더라도  부모형제와 이웃과 벗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이는 예경이 아니다. 겉모양의 예경이다. 불보살님 앞에 미움도 원망도 아무런 대립도 품지 않듯이 진정으로 형제나 벗과 이웃과 화목하고 조화하여야 한다. 대립으식이나 더우기 나쁜 감정이 있다면 소망은 이룰 수 없다. 소망을 이루는데 방해요인이 된다. 오히려 감사하여야 한다. 감사하고 공경하여야 한다.

   제3은,  보시할 것.  무엇이든 주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재물로 주고 지혜로 주고 힘으로 주고 진리를 전하는 것으로 주고 자비하고 부르러운 말로 주로 평화하고 온화하고 기쁜 표정으로 주는 것이다. 주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  준다는 것은 곧 나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므로 주는 것이다. 주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 준다는 것은 곧 나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므로 복이 들어오고 복이 솟아 오른다.

   주는 것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법을 전해주는 것이다.   一句 念佛 一條法語라도 그것은 최상의 보시다. 무엇으로도 비할 데 없는 무상공덕이다. 재물을 주는 보시는 유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법의 공능은 무한이다.

   제4,  眞言을 쓸것.  진언이라 함은 범어로 된 呪가 아니다. 실상의 언어를 의미한다.  그것은 자비한 말, 환희스러운 말,  아름다운 덕성을 찬탄하는 말,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  신념이 담긴 말,  밝고 희망적인 말이다.

   진언은 창조력을 가진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제5,  일심 염불할 것.  중요한 것은 일심이다. 본래 마음에는 이름도 빛깔도 형상도 없다. 이것이 청정일심이다.  정성 다하고 힘을 다하고 열의를 다하여 오직 일심으로 염불할 것이다. 여기에 소극적 생각이나 부정적 생각이나 고난이 어루대는 망상이 있으면 염불은 실패를 위한 염불이다. 이런 생각이 있는 한, 염불할수록 실패한다.

    본래 일심은 무상이건만 凡情은 끊임 없이 무엇인가 잡고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를 극복하려면 一心本無相과 공덕무상을 믿고 오직 일심으로 염불할 뿐이다.  염불법은 여러가지 있으나 여기 말한 것이 기본이다. 처음 염불하는 이에게는  日觀法을 권한다. 태양이 자신 생명 내부에 빛나고 있는 것을 생각으로 지켜보면서 염불하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日沒觀과  흡사하다.

   이 염불이 행복과 성공을 부르는 근본 동력이다.  그러므로 하루도 빼지 말고 염불을 철저히 하고 그러기 위하여는 기도 시간을 정하여 일과로 삼는 것이 좋다.

   위 오행은 그 본질이 바라밀體性을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至誠과 진실을 다하여 수행하면 이는 즉시 바라밀본지에 자기를 확립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자신은 불보살의 위신력에 歸一되고 바라밀이 가지는  위덕은 그가 수행하는 반야관에 따라 자신 위에 실현된다.  이것이 최상의 기도성취의 법칙이다.

   현실상의 불안과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과 승리를 이루려는 자는 마땅히 오행과 반야관을 깊이 배울 것이다.

 

 [14] 거두는 말

   이상  立義分에서 반야심경 대의는 露呈 되었다. 이 장을 맺으면서 약간의 정리를 가해 본다.

   첫째  관자재보살은 진여 불성의 無相示現이며 그의 현신은 대비원력의 權現이다.  그가 수용하는 경계는 자재무애 大智大悲 원만구족 [바라밀]의 국토다.

   둘째,  [바라밀]에서는 오온이라는 일체존재,  일체현상이란 아예 없는 것이다.

   셋째,  모든 삶은 오온적 현상에 사로잡힘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가 [바라밀]이며 만인은 그의 主宰者다.

   네째,  오온은 원래로 없는 것이다.   이는 관자재보살이 실증하였다. 그러므로 만인은 누구나 실로는 일체 고액에서 해탈된 무구청정의 자유인이며 관자재보살과 같이 관자재하고 일대오온을 夢幻浮雲과 같이 逍歸할수 있는 無上의 권위자다.

   다섯째,  범부는 오온부운에 사로잡혀 한계와 속박과 고뇌를 씹는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반야의 지혜로 오온 迷雲의 無實虛妄性을 照破하고 실상본지에 착실히 말을 붙여 대자유 해탈성을 발휘하여 우리와 사회와 역사 위에 자성의 빛나는 내실을 구현하여야 하겠다.

 

 3,  破  邪  分

 [1]  파사분의 골격

   立義分에서 이미 이 경의 대의는 제시되었다. 즉 [반야]대지에 의하여 現前한 波羅蜜의 청정광명지에는 오직 무량청정공덕인 관자재의 위덕과 일체고액에서 해탈하는 공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온이라는 일체현상이란 없는 것이다.

   여기 파사분에서는이 파라밀이 가지는 파사적인 공능을 상세하게 설파한다.  즉 바라밀이 지닌 영원,  청정,  원만의 節對屬性을 闡明(천명)하고 여기에는 오온과 육근,  육진,  십팔계,  십이연기법 등이 원래로 없음을 밝히고 내지 이러한 현상적인 존재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처하여 건립된 교법인 고,  집,  멸,  도의 사재법까지도 없음을 선언한다.

 

{경  문}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은지라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상은 나(生)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이런고로 공에는 색이 없으며  수상행식이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안계도 없고 내지 의식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다. 고집멸도 없고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是 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內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內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2] 파사분의 성격

   바라밀 본지에는실로 가히 얻어볼 한 물건도 없음은 앞서 살핀 바이다.  그것은 유무 분별이전의 實相 本地이기 때문이다.  이 실상지에는 실로 무애 자재 해탈 원만 구족이 無相인채로 자족하다  그러므로 이 이외것이 있을 수 없으며 생각할 수조차 없다. 凡情이 느끼고 헤아리는 일체質碍나 존재나 그로 인하여 생긴 관념속성이나 가치가 있을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자재무애 원만구족 본자해탈의 바라밀실상—   이것이 관자재보살의 立脚處인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이제 이 실상광명으로 [波羅蜜]을  顯前시킴에 있어서 먼저 범정의 최측근인 오온 등  합전을 비춰보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