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 어느 벗 이야기

지혜의 샘

2008-01-03     안동림

 내 절친한 소설가 한 분이 요즘 불교에 심취하여 평생에 불교 소설 한편을 써보고 죽는게 소원이라 한다.

 그를 만나기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불교 이야기 뿐이다. 반야가 어떻고, 화엄이 어떻고, 대승이 어떻고, 선이 어떻고 얕은 냇물 소리처럼 시끄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턱없이 넓고 큰 불타의 가르침 잎에서 자기는 한갖 미아가 된다고 겸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렇듯 심취한 그는 집의 안방에 조그만 불상(佛像) 하나를 모시고  손수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정서하여 액자에 넣고 머리맡에 걸어둔 채 외운다. 그것도 모자라 어느 스님이 독송한 「심경」「금강경」의 취입 레코오드까지 튼다. 이웃 아주머니가 웬 스님이 오셨느냐고 찾아와 묻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그에게 하필이면 우울증이라는 고약한 병이 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툭 하면 전후좌우를 잊은 맹열한 신경질의 태풍을 온 집안에 몰고 오는가 하면 또 그것과는 정반대로 솟구치는 자살충동을 견디기가 어려워 술로 달래는 일이 가끔 있다.

「도대체, 부처님의 한없이 큰 수레에 탄 사람이 어째 그 모양인가, 불교를 말하지 않는 사람만도 못하지 않느냐, 앉으나 서나 이 세상 모든 것이 공이요 미망임을 깨우쳐  주는 가르침 속에 산다면서 무슨 그런 병으로 괴로워한다 말아냐, 입만 불교에 가 있고 마음은 진흙구덩이에 있으니 너야 말로 구두선(口頭禪)이요 목탁 소리는 요란한데 본당에 부처님은 안 계신 꼴이 아니냐」하고 호되게 쏘아 붙인다.

 그러면 「그래, 내 의지박약이야」하고 힘없이 기묘한 대답을 한다. 요령부득의 말이지만 애써 하려 해도 안 된다는 뜻이리라고 나는 새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가, 차라리 저 승복을 입고 염불을 외우며 산사에 살면서도, 남달리 옹졸하고 탐욕스러우며 독선적인 일부 승도, 염불 보다 잿밥에 솔깃하는 그들 보다 훨씬 진지한 구도자의 모습인지 모르겠다. 

 추운 자에게 옷이 고맙듯이 마음이 아픈 자에게 불광은 더욱 절실할 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