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실패를 후생에도 괴로워하다 (4)

* 윤회의 실증

2008-01-03     관리자

 '파모드'가 1949년 여름에 모라다밧드에 다녀온 뒤에 곧 이어서 같은 해 가을에 모한브라더즈가 호텔을 경영하고 있었던 사하란풀(모라다밧드에서 북쪽으로 100마일쯤 떨어져 있는 도시)과 그 근방에 있는 산 속의 거리인 할드월이라는 곳에 이아이가 다니러 가게 되었다.

 사하란풀의 호텔에서 이아이는 그 곳에 있는 객실용으로 비치된 선반을 보고 "전에 내가 처칠 호텔에 비치해 두었던 것이야."하고 하였다. 이 선반은 틀림없이 처칠 호텔에 있었던 것을 파마난드가 죽은 뒤에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사하란풀에서 이 아이는 파마난드와 가까이 지내던 의사와 그리고 돈을 빌려준  야스민이라고 하는 사람을 분간해 냈다. 의사에 대해서 이 아이는 자진해서 손가락질하며 "이 분은 의사인데 나의 오랜 친구"라고 말하더란다. 또 야스민보고는  "당신은 나에게 갚을 돈이 있어"라고 말하자 야스민이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메헤라 식구들이 청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채무를 시인하였다. 채무의 금액에 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으나 채권.채무 사실만은 밝혀진 것이다.

 할드월에서 파모드는 승합마차의 마부를 찾아내 가지고는 "야! 타우지"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였고 파마난드의 단골 의사를 알아내기도 하였는데 챠드메헤라에 의하면 이 의사의 이름을 부르더라고 한다. 이 거리에는 파마난드가 자주 묵었던 여관이 있었는데 파모드는 그 여관에서 파마난드가 즐겨서 묵었던 방을 알아내더라고 샨마교수는 증언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방에 관해서는 아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 여관의 종업원들에게 확인시켰던 바 그것이 사실과 합치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사하란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하고 넘어갈 것은 파모드가 늘 "사하란풀에도 가게, 호텔, 영화관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이 말은 1949년에 이 소년이 사하란풀에 가기 전에 하고 있었던 말이다. 그러므로 메헤라의 가족들과의 접촉이 있은 뒤 메헤라의 어느 누가 알려 주었을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사실상 증거 가치는 희박하다고 보아야한다. 이상으로 파모드가 전생에 관하여 기억하고 있었던 지식에 관하여서는 1차 소개를 마친 셈이다.

 이제는 그의 감정, 취미, 기호, 소망 등의 면에서 밝혀진 전 인물인 파마난드와의 동일 인물성에 관하여 기술하여 보자.

 파모드가 1949년 여름에 메헤라의 가족과 접촉을 시작하기 전에 보여 주었던 전 인물 파마난드와의 동일인물성 즉, 가게나 비스킷트에 관해서 이상하리만큼 큰 관심을 보인 일이라든가, 파마난드의 죽음에 관계된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카드음료수와 목욕에 대한 병적인 공포등에 관해서는 이제까지 말해온 대로이다.

 이 아이가 5살에서 6살 때까지 사이에 여러번 모라다밧드에 다니러 갔었는데 그 때마다 메헤라의 가족들과 만날 때에는 언제나 파마난드답게 언동하였다. 즉 아내에 대해서는 남편답게, 자녀들에게 대해서는 아버지답게 말하고 행동하였다. 또한 모라다밧드에 다니러 갔다가 돌아 올 때가 되면 가기 싫다고 울곤 하였다.

 어떤 때에는 자기 집을 뛰쳐 나와서 비사우리 정거장까지  간 일도 있었다. 그래서 데리고 집에 돌아오게되니 "사하란풀에 가려고 하였다. 그곳에 가서 가게일을 돌볼 생각이었다"라고 파마난드 다운 말을 하더라고 한다.

 이 아이의 고독벽이 어렸을 적부터 눈에 띄게 두드러졌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커서는 학교에도 가기 싫어 하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글자를 배워야 모라다밧드에도 혼자 갈 수 있지 않니?"라고 타일러서 학교에 가게 하였다. 그러면 이아이는 가끔 "나는 글 안 배워도 좋아, 가게나 하고 있으면 된단 말이야"라고 하면서 학교가기를 싫어하였다. 가게야 말로 이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것이다.

 또 이 아이가 비스킷트 가게 말고도 다다, 버마, 돌미야 등과 같이 알 턱이 없는 회사의 이름을 대기도 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인도의 유명한 비스킷트 제조회사인 것이다.

 그의 전생의 인물인 파마난드와의 동일 인물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것은 3살에서 7살까지의 사이였는데 그 뒤에도 역시 동일인물성은 줄곧 나타나곤 하였다.

 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이 아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경건한 종교적인 성격을 띄우게 되는데 그것 역시 파마난드의 성격과 같은 것이다. 또 이 소년은 파마난드의 생애 이전, 종교적 고행자로서의 수행 생활을      한 그 전생에 관해서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말한 일이 있다. 소년으로 큰 뒤에 재미나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었다.

 이 소년이 소년기에 들어선 뒤에 파마난드의 아들 하나가 결혼하였다. 이 소년이 자기 어머니로 부터 이 이야기를 듣더니 "왜 나는 그 결혼식에 부르지 않았지?" 하면서 언짢아 하더라고 한다. 신랑의 아버지인 자기를 결혼식에 참석시키지 아니 한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1961년으로부터 수 년 동안 파마난드의 딸인 프렘라타가 모라다밧드보다 비사우리쪽으로 더 가까운 부단이라고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은 일이 있다. 이 소년은 프렘라타에 대하여 아주 강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비사우리의 이 어린 아버지를 자주 찾아 오지 않으면 몹시 걱정에 잠기곤 하였다.

 이 여자에 대한 그의 애정은 파마난드로서의 애정이었으므로 아버지의 딸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버지다운 애정의 태도였다. 이 때 이 소년의 나이는 17살 이었다. 딸로 보아서는 이 어린 아버지의 태도가 거북하게 느껴져서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난 것이니까 이제 나와는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하여 억지로 그 태도를 고쳐 주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가게 일에는 대단한 재능을 발휘하였었는데  이런 일도 있다. 친척 중에 작은 가게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서 그 가게를 주인 출타 중에 보아 준 일이 이었는데 어찌나 멋있게 가게를 보아 주었던지 언제나 그 주인이 가게를 비울 일이 생기면 꼭 이 사람에게 가게를 맡겼다.

 20살쯤 되었을 때에 내가 직접 만난 일이 있는데 그 때에 이사람은 손금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파마난드의 취미이기도 하였다. 파마난드의 미망인에게 확인해 보았더니 파마난드는 그 형수의 손금을 보아서 그 이의 죽는 해를 알아 맞춘 일도 있다고 한다.

 이사람이 어렸을 적에 병적으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던 카드음료수와 목욕에 관한 그 뒤의 이야기를 계속하여 보자.

 그가 카드음료수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공포심은 그 뒤에도 계속 되었지만 17살 쯤 되어서 부터는 딴 음식에 섞어서는 먹을 수 있게 되었고 19살 때에는 카드만 먹어도 괜찮게 되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인도 사람들의  말과는 다른 말이다. 목욕은 19살 때 부터는 공포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람의 경우를 보면 전생의 기억이 후생의 인격  발전에 장해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렸을 때에는 양친이 보기에는 몹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 되었었다.

 그런데 학교에 간 후부터는 동급생에게 뒤져서 2년이나 낙제한 일이 있을 정도이다. 대학 진학시에도 한 번 실패한 뒤에 민간 파이롯트 학교에 입학 하였으나 등록금이 비싸서 그것을 단념하고 1969년에 우타푸라데쉬주의 토양보존국 순시사무원으로 취직하였다.

 가게 운영에 관해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딴 방면으로 진출한 것은 가게의 경영이 그 당시의 인도의 정세로 보아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여하간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은 평균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1971년에 토양보존국의 사무실에서 이 사람을 보았는데 이 사람의 생활상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게 된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성장기인 4살에서 7살 까지의 사이에 너무 강한 전생의 기억 때문에 현실생활에 대하여 정신집중이 안되었었던 데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사람의 가족들도 역시 그렇게 보고 있었다.  *  (이안스티븐슨. 미국 버지니아대학 정신의학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