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촬요연의] 참선경어(參禪警語) (2)

선전촬요연의

2008-01-02     석주 스님

(1) 처음 참선공부를 짓는 사람에게 보이는 경어

  공부를 짓는 자는 맨 처음 저 생사 번뇌의 마음을 파할 것을 굳게 마음먹고 이 세계나 몸이나 마음은 모두가 있는 듯 하지만 실로는 거짓 인연의 모임으로써 주인이라 할 것이 없는 것을 간파하여야 한다.  만약 사람마다 본래로 갖추어져 있는 큰 도리를 밝혀내지 못하면 이것은 곧 나고 죽는 마음을 파하지 못하는 것이며 이미 나고 죽는 마음을 파하지 못하였으면 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고 침범하여 들어와 이 몸이 찰나 찰나 죽음을 실현해 가거늘 어찌 이를 쫓아 없앨 수 있으랴. 이와같은 한 생각으로 문을 두들기는 기와쪽을 삼아야 한다. 문을 두들기는 기와쪽은 이것이 생사가 없는 문을 두들기는 수단이 되니 마치 맹렬한 불꽃 속에 앉아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힘을 쓰는 것과 같아서 결코 한 걸음일 망정 헛될 수 없으며, 한 걸음도 멈출 수 없으며, 또한 다른 한 생각도 낼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랄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때에 이르러서 다만 모름지기 맹렬한 불꽃을 돌보지 아니하고 또한 신명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다른 한 생각도 내지 않으며 또한 잠시도 멈추지 아니하고서 앞을 향하여 굳게 나아가 뛰쳐 나온다면 이는 가히 공부의 명수라 할 것이다.

  공부를 짓는데 귀한 것은 의정을 일으키는데 있다. 무엇을 의정이라고 할까? 인생이 나되 온 곳을 알지 못하니 온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지 못하니 갈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사의 관문을 타파하지 못하였다면 의정이 문득 일어나서 이것이 눈썹위에 들러붙어 쫓으려 하여도 달아나지 않고 떼어버리려 하여도 또한 떨어지지 아니하다가 하루 아침 홀연히 의정뭉치를 타파하면 생사라는 두글자가 이 무슨 쓸모없는 물건이냐 하게 된다. 옛 도인이 이르기를 <큰 의정에서 크게 깨치고 작은 의정에서 작게 깨친다. 의정이 없으면 깨침도 없느니라>하였던 것이다. 공부를 짓는데는 死자를 잡아 머리위에 붙여두고 죽은 것처럼 심신이 온갖 힘을 이곳에 기울여 다만 이 물건을 밝혀 내겠다는 한 생각이 현전하도록 하라. 이 한 생각은 하늘에 걸친 긴 칼과 같아서 이 칼끝에 다칠 수 없다. 만약 갈고 갈때는 칼이 흘러간지 오래니라. (呂子에 나오듯이 초나라 사람이 강을 건너다가 가지고 있던 칼을 배에서 물에 떨어뜨렸다. 그 사람은 급히 뱃전에다 무엇인가 새겨놓고 말하기를  <이곳은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 배가 멈추면 이 표시를 따라서 물에 들어가서 찾으리라>하였다. 배는 움직인다. 그러나 칼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칼을 찾는다는 것은 마치 이와같은 것이다.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면 장검과 같은 한 생각도 또한 여기 초나라 사람이 잃은 칼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공부를 짓는데는 무엇보다 고요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을 기한다. 고요한 경계에 탐착하면 사람이 활기를 잃고 가라앉아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며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이 動하는 경계는 싫어하지만 고요한 경계는 싫어할 줄 모른다.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개가 시끄러운 곳에 처해 있다가 한번 고요한 경계를 만나게 되면 마치 엿이나 꿀을 먹는 것과 같이 된다. 사람이 피곤하거나 권태로워 지면 잠들기를 청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고서야 어찌 깨칠 수 있으랴. 공부를 짓는데는 생각이 바르고 또한 굳어서 인정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자그만치라도 인정에 따라 응대한다면 공부는 향상할 수 없게 되리라. 다만 향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어느듯 세속의 흐름에 빠진 범부가 될 것은 틀림없다.

  공부를 짓는 사람은 머리를 처들어 우러러봐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어도 땅을 보지 않고,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며,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며,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어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천만인 사이에 있어도 한 사람을 보지 못하여 온 몸 내외가 오직 한 개의 의정덩어리가 된다면 이 사람은 가히 세계를 휘젓는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疑團을 파하지 못하였거든 마음을 쉬지 마라. 세계를 휘젓는다함은 무슨 말일까? 인간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큰 도리는 무량 겁내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요하여 아직 일찌기 동한 바가 없는 것이다. (계속)